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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20, 2011

최강의 용병 구르카(Gurkha)

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에 작은 체구의 동양인들이 용병으로 배속된 일이 있었다.
그들을 본 영국장교는 "저따위 야만인들이 이런 전쟁에서 뭘 할 수 있어! 참호나 파라고 해"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영국군 장교는 자신의 막사를 나오며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막사 바로 앞에 금방 잘린 듯한 독일군 병사들의 목 십여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장교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용병들이 밤사이에 몰래 나가서 잘라온 것이였다. 그들이 바로 네팔 구르카 출신의 전사들이었다.

태평양전쟁중, 총알이 거세게 날아다니는 치열한 전투속에서 구르카족 한명의 하사관이 날아오는 총알 사이를 뚫고 일본군 참호로 돌진하였다.
잠시후, 그 하사관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별다른 상처없이 참호속에 있던 일본군 24명을 쿠크리 나이프로 썰어서 나왔다고 한다. 그 시체중 어떤것은 머리부터 가슴까지 철모채로 잘려있었다고 한다


구르카족의 역사
본래 구르카 족은 네팔의 중부 및 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강건(剛健)한 농경민으로 목축도 겸하고 있다.
원주지는 인도 중부였으나, 힌두교도라는 이유로 14세기경 이슬람교도에게 쫓겨 북쪽 네팔로 이동, 그곳의 지배 민족이었던 네와르족(族)을 정복하고 이들과 혼혈(混血)하게 되었다.
파리어(語)를 사용하며, 힌두교의 네팔 전파에 공헌하였다.
1767년 네팔 전역을 정복하고 나라야왕국을 건설하였는데, 그후 이 왕국의 쇠퇴를 틈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보낸 원정군을 격퇴한 것도 구르카족 병사들이었다.


구르카족이 전쟁터에 참여하게된 계기
히말라야 산속에 살고있던「구르카」족이 영국군에 복무하기 시작한 것은 멀리 18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를 정복한 영국군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하 지만 이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단지 싸우기 위해 태어난 민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네팔의 소수 산악부족 구르카와의 전투에서 영국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잘 훈련된 군대와 최신식 소총을 박살내어버린 이 '야만족'들의 무기는 어이없게도 활과 돌팔매, 그리고「쿠쿠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네팔 전통단검뿐이었다.

" 강한 적은 친구로 만들어라"라는 말이 있고, 이 전투 이후의 영국군이 바로 그런 대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영국은 바로 부족들과 계약을 해서 청년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갔다고 전해진다. 이 사납고 호전적인 타고난 전사들에게 높은 급료를 주고 영국군으로 영국군의 용병에 고용해 버린 것이다.
구르카 전사의 전설은 이때부터 전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전쟁터에 참여하게 되는 구르카 용병들
1 차대전에서 구르카 용병들은 세포이군단(영국군에 배속된 인도인 부대)의 일원으로 참가한 이래, 2차대전에서는 총 25만의 대병력으로 확충된 구르카 용병들이 영국군의 일원으로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특히, 구르카족 용병들의 쿠크리에 목숨을 잃은 독일군의 수는 웬만한 대공급의 피해와 맞먹는다 할 정도로 악명을 높이게 된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게 된 구르카 용병들. 태평양의 버마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맞서 싸우게 된다. 영국군과 싸운 일본군은 정글전은 당연히 자신들의 독무대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국군 지휘관들조차 "일본군을 잡으러 정글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상어를 잡으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실토했으니까.....

그런데 일본군이 이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이 정글전의 우위를 여지없이 뒤집어 버린 것이 바로 구르카용병들이다. 쿠크리 한자루를 들고 소리없이 정글속을 누비고 다니며 귀신같이 일본군의 목을 따가는 구르카 용병들은 그야말로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때, 버어마전선의 「임팔」전투에서 구르카대대의「디마푸르」중사는 쿠크리 한자루로 24명의 일본군의 목을 잘라 영국 최고훈장인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은 영연방 최고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쿠크리에 얻어맞은 일본군 병사는 머리에 쓴 철모와 두개골이 어깨뼈까지 두쪽으로 쪼개져 있기가 일쑤였다." 이들 구르카와 함께 싸운 어느 영국군 병사의 술회다.

태평양전쟁 종결후 한국전쟁에 참전하게된 구르카대대.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1개 사단을 전멸시켜 버리는 분전을 과시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이 적이 아닌 아군이라는 점에서 다행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구르카가 온다!"는 말 한마디에 포트스탠리를 수비하던 아르헨티나군 전체가 손을 들고 투항해 버렸다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구르카용병들이 강한 이유라면?
원 래 구르카족은 그 한사람 한사람이 군사훈련을 시킬 필요도 없이 투사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알다시피 네팔은 지금도 세계 최빈국중 하나이다. 한 양동이의 물과 한줌의 땔감을 구하기 위해 맨발로 눈덮인 히말라야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그들의 일상생활은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원들이 받고있는 고도의 군사훈련보다도 훨씬 더 가혹한 것이며,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의 심폐기능과 체력은 도저히 후천적인 군사훈련으로 얻어질 수 없을만큼 뛰어난 것이다.

거기다 이들이 열살을 전후하여 성인식을 치르면서 한자루씩 소지하게 되는 쿠크리 단검은 그들의 용기와 명예의 상징이다. 이 칼을 빼어들면 반드시 피를 묻혀야 한다는 그들의 계율은 그들의 적이 이 칼에 대해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원초적인 공포심리를 가지도록 만들어 놓았다.

"쿠크리를 한번 보여달라고 간청하는 영국인 동료를 위해 칼을 뽑아든 구르카 병사가 그 칼로 자기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피를 묻힌 후에야 다시 칼집에 꽂았다"
.......... 한번 칼을 뽑으면 피를 볼때까지 절대 칼집에 넣지 않는다라는 구르카족의 어찌보면 섬뜻하게 들릴 유명한 이야기다.

이 런 무서운 구르카족이 오늘날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바로 영국군에 입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2~3년에 한번씩 영국군의 모병장교가 현지를 방문할 때는 네팔 전역의 구르카 청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사내아이들은 열살을 전후할 무렵부터 영국군 병사가 되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고 신체를 단련하기 시작한다. 한달 급료가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고향에서의 거의 일년치 수입에 해당하고, 장기 복무를 마치고 나면 영국 시민권을 얻을수도 있는 이 기회야 말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며 출세인 것이다.
토속신앙과 결합된 불패의 신념, 거친 환경속에서 잘 단련된 신체, 거기에다 고도의 현대무기와 군사훈련이 결합되면 그야말로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인간병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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