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Monday, February 18, 2013

Valid Catholic Mass comment


Private opinion is not a "declaration." Brs. Dimond attend Eastern Rite Mass of Trent & receive Sanctifying Grace in a valid Sacrament. Eastern Mass uses the same "una cum famulo tuo Papa nostro" that priests of SSPX offer. Brs. Dimond avoid what they think are invalid Ordinations of SSPX, but SSPX ordinations & all Sacraments ARE VALID! It's a mystery. They could attend SSPV, CMRI, TRENTO or THUC Mass but think wrongly that Pius XII lineages were jettisoned by the Invisible Vicar, Our Lord!
· 응답 대상: HetmanWojtek (댓글 표시)
 
 
http://www.youtube.com/watch?v=C7UDB9C1A8A 

North African can be lighter than typical Italian comment

  • stutterfly21
    Sure you have been there, you havent been to Tunisia or Algiers and Morocco. Berbers are originally white, look at Zenedine Zidane he's Berber from Algeria IN North Africa, He can be lighter than many typical Italians or Spanairds. The Romans called North Africa "white Africa" just look it up, Although today alot of ve been mixed with Arabs from the Arabian penninsula thats why they are Darker.
    · 4 응답 대상: ooIooOOooIoo (댓글 표시)
     

 http://www.youtube.com/watch?v=H3eDUf4DgrU








Sunday, February 17, 2013

English Expression: I'm surprised you don't know this. I thought it was common knowledge


Cont. I'm surprised you don't know this. I thought it was common knowledge, but I suppose people 'know' what they see, and now that 'lions hunt hippoes', people think they choose to. See David Attenboroughs wildlife series from 8 or so years ago. He said this, then.
·
http://www.youtube.com/watch?v=StqUPoy7mrY 

Saturday, February 16, 2013

there is no offside offence if a player receives the ball directly from a corner kick, goal kick, or throw-in comment

Regardless of position, there is no offside offence if a player receives the ball directly from a corner kick, goal kick, or throw-in. However, an offside offence may occur if a player receives the ball directly from either a direct free kick or an indirect free kick.
check for the rules bro :) its not offside,
· 7 응답 대상: Kajan Lawe (댓글 표시)
 
 
http://www.youtube.com/watch?v=882QxJ4fHdE 

금동반가사유상.....백제것인가? 신라것인가? (2)

금동반가사유상이 갖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우선은 반가사유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알아보는것이 중요하다 할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교의 메시아"인 미륵보살은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인 셈입니다. 그리고 '사유'란 고뇌하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 반가사유상은 과연 어떤 고뇌에 빠져 있는것일까요? 사유상의 출현은 출가하기전의 태자의 신분이었던 '싯다르타'가 인간이 갖는 4가지 고뇌, 즉 生老病死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고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4가지 고뇌속에서 번민하던 '싯다르타' 태자는 무엇을 느꼈기에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일까요?
 그 것도 턱을 괸것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가 얼굴과는 닿은듯 만듯 정말로 손가락 전체도 아닌 점으로써 뺨과 닿아있으며, 고개는 약간 숙인채 얼굴에 담고 있는 미소....한마디로 오묘하다고 표현되는 얼굴표현에는 나름대로의 중생 구제의 방법에 대해 수만가지의 말을 뱉어낼것만 같습니다. 즉, 오랜 고뇌의 기간을 거쳐 드디어 중생구제의 방편을 알아냈다는 미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왼 무릎위에는 한 쪽 발을 올려놓고 있는데 엄지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어 구부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 잔뜩 힘을 주고 있읍니다만, 미사려구를 구사하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이 모습이 달리 보이는지 발가락의 구부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합니다만, 자연스럽다는 말은 힘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지만 그냥 힘을 주지 않고 오른 발을 왼 무릎에 올려놓으면 전혀 지금의 모습은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결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은 자세히 보면 입가의 살포시 웃는 모습과 어울리게 지그시 내려깔고 중생을 굽어보듯 하는데 바로 미소와 더불어 이런 눈매가 미륵보살로서의 위엄을 한껏 갖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대해 최순우 선생은  "이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초월한 것이며.......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아(閑雅 :막을수 없는 아름다움)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숨을 내쉬게조차 한다....서양인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최고로 여겨 '영원한 미소'라고 예찬하는데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나란히 놓는다면 모나리자의 미소 정도는 당장 안색을 잃을것임에 틀림없다" 고 하였습니다. 아주 점잖게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치켜세웠지만 다른말로 이야기 하자면 모나리자도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면 울고 간다는 말 정도로 해석을 하면 될것입니다. 이 반가상의 머리에는 도교사상에서 나온 삼산관이 얹혀있어 간단하게 "삼관미륵"이라고도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상의 출처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이 반가사유상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시기는 1912년 입니다. 당시 이왕가박물관(일본인이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에 대한제국의 황제칭호를 깔아뭉개기 위해 조선 임금의 가계를 <왕가(王家)>로 낮춰 부르게 되었습니다)이 이 반가사유상을 입수할때는 중계인이 '경주 근처의 폐사에서 가져왔다'고 하였기에 신라의 작품으로 알았었으나 한일합방 이전부터 우리 나라의 고적을 조사해온 일본인 학자 이네다(稻田)가 '1910년 충청도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바람에 신라것이냐 백제것이냐를 놓고 헷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미술사>의 저자인 세키노(關野貞)는 "조산 삼국시대의 조각"에서 두 구의 미륵반가사유상을 고신라의 유물로 단정하여 '후치가미 사다스케가 총독부에 기증한 것으로 출처가 확실하지 않으나 경상도에서 발견한듯 하다'고 기록하여 경상도 출토설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후 1915년 바로 이네다의 충청도 출토설이 나오게 되는데 이 때는 그체적인 높이(2자9치7푼)가 제시되어 백제계의 반가사유상으로 인정하기에는 나름대로의 신빙성이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금동, 석불, 마애불 등 모두 32구의 반가사유상이 있지만 1945년 이후에 우리의 손으로 발굴된것 이외에는 반가사유상이 고구려의 것인지 또는 신라나 백제의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애석하게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불상이 고가에 거래되었지만 그 출처에 대한 추궁이나 법적 책임이 두려워 대부분은 오랜 동안을 숨겨 두었다가 내다 바는 악덕 골동품상(거의 일본인)들로 인하여 유물이 갖고 있는 족보가 멸실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네다의 주장대로 이 반가사유상은 충청도 지역에서 올라온 백제계의 반가사유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돌아가신 김원룡, 최순우 두분은 이 불상이 백제의 작품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있는 두 구의 불상이 어디것이냐 하는것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없고 갑론을박 하는데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더 애써 원산지를 찾는 작업을 추진하는 일이 발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국보 1호로 지정된 목조금동반가사유상 때문입니다. 이 불상은 비록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우리 국보 83호인 '삼관미륵'의 복제품이나 마찬가지로 쏙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불상은 일본의 고류지(광륭사)에 소장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불상의 원적이 어디냐에 따라 이 불상의 원적도 덩달아 원적 변경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일본에 있는 이 목조반가사유상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이다" 또는 "한반도 사람이 건너가서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 만들었다(대부분의 일본학자 주장)"는 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는데 주로 우리 학자들은 위의 두 가지 학설을 추종하고 일본의 학자는 자존심 때문인지 자기네 조상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목조반가사유상이 있는 고류지에 있는 또 다른 반가사유상입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국보 1호로 지정된 반가사유상보다 후대인 7세기 말엽부터 8세기 중반의 비조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똑 같이 일본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지만 언뜻 보아도 똑같은 목제임에도 국보 1호보다 상당히 조형미가 떨어지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아마도 국보 1호를 본뜬 불상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조각 기법이나 제작기법이 국보 1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것을 사진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불상은 당연히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거나 한반도의 불상을 모방한 불상이라는 말 조차 꺼내지 못하고 일본의 비조시대의 제작품으로 인정을 하고 만것입니다.
 그런데,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백제계의 불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한 학자가 동국대학교의 황수영 박사였습니다. 황수영 박사는 1959년 이 불상의 출처에 대해  원래 이 불상이 경상도 지방에서 출토되었다는 세키노의 발언을 주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불상이 이왕가박물관에 판매시 거래된 금액은 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2900원이었는데 중간의 악덕 상인들이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 부터 구입을 했기에 원산지는 알 수 없는것 처럼 했기에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출토가 되었는지 잘 모르게 되었지만, 최초에 이 불상에 대해 언급한 세키노의 말 처럼 "경상도"지방에서 출토되었다면 신라 땅 어디에선가 이 불상이 있던 자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경상도 신라땅을 수소문하여 이 불상이 정말로 신라의 옛 절터에서 나왔는지를 찾아보기로 한것입니다.
 황수영 박사는 제자인 정영호박사(현 단국대 박물관장)와 더불어 경주지역에서 수소문한 결과 드디어 원래 이 불상이 있었던 절을 찾게 되었습니다.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옷칠이 된 위에 회분을 칠하였는데, 대부분의 목불이나 금동불은 칠을 하기전에 옷칠을 하는데 원 소유주는 옷칠 위에 다른 칠을 하지 않고 회분을 칠했던 것을 근거로 하여 수소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불상이 세간의 이목을 받게되자 경주 오릉 근처에 있던 불상이었다는 소문이 떠돌게 되었고 이소문을 접한 두 사람은 1964년 경주 남산의 산방谷에 있는 산방사라는 절의 할머니가 당시 4원(또는4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판매를 하였다는 사실과 원래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수차례 방문하여 노보살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여 분명 신라의 불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아직도 이 불상의 족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까요? 한동안은 <미술사학>에 이 문제에 관한 연구 논문이 게제되고 맞느니 틀리느니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원래 그 장소에 있는것을 본적도 없을뿐만 아니라 단지 노보살(이 노보살은 그후 사망하였음)의 증언에 의존한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타당성을 입증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입장이었고,  불상의 양식이나 형식의 정확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라계다 백제계다를 말한다는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신라계라는 확신을 가진 황수영 박사, 정영호 박사측은 신라의 불상으로 보고 있으며, 김원룡박사, 최순우 선생 등의 계열은 백제계의 불상으로 보는 것이며 두 학설간에 뚜렷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위대한 모나리자의 미소가 울고가게 할만한 이 위대한 공예품은 그저 <삼국시대>의 작품으로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출처가 애매모호한 반가사유상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하고 이에 대한 연구 논문이나 발표논문은 찾기가 힘든 지경이 되어버리고 만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에 이 불상은 우리 나라에는 부지기수로 많아져서 미처 제대로된 연구가 나오기도 전에 온통 사찰에 범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용화사상을 주로 하여 미륵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법성종계열에서 중국으로부터 대량으로 미륵반가사유상을 수입을 해 왔기 때문인데, 우리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는 매우 흡사하지만 전문가의 눈이 아니라면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교한 불상이 중국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 우리 나라에 유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땅 속에 묻어두고 거름을 주거나 화학 성분을 부어 1~2년을 묻었다가 마치도 오래된 금동불에 녹이 슬은 모습으로 수입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중국인들은 이런 모조품을 만들어 우리 나라에 수출할 생각을 다 하게 되었는지 기가막힐 따름이지만 이런 문제는 제가 직접 중국을 방문하여 확인을 해볼 요량이며, 그 불상이 단순하게 비슷하게 만든것이 아니라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음은 궁금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불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겻들인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http://blog.aladin.co.kr/mindbook/493519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백제에서 온 것 아니면 신라에서 온 것?

홍윤기의 역사기행]<79>교토 교류지 '보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

'한국의 미소'가 살아있는 우리의 고대 불상 앞에 유럽인들이 몰려들어 찬사를 연발하고 있다고 한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 중심가의 보자르 예술센터에서는 10월9일부터 '한국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부처의 미소―1600년 한국 불교예술'이라는 주제로 '한국 불교미술 특별전'이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 우리 불교 미술품 중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은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하 '금동반가상',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바로 이 한국의 '금동반가상'과 빼닮은 쌍둥이격 불상이 일본에도 있다. 일본 교토의 고류지(廣隆寺·교토시 우즈마사 지역)에 있는 일본 국보 제1호인 '보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하 '보관반가상')이 그것이다. 이 두 불상은 생김새가 서로 거의 똑같거니와 각기 머리에는 모자인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한국 국보 제83호 '금동 반가사유상' ◇일본 국보 제1호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
현 재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금동반가상'은 몸체를 청동(靑銅)으로 만들어 금을 입힌 '금동'의 불상인 데 반해, 일본 고류지의 영보전(靈寶殿)에 있는 '보관반가상'은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소나무 조각상이다. 일본문화재위원회는 1951년 6월 9일, 이 '보관반가상'을 일본 국보 제1호로 정했다.

리쓰메이칸대학 사학과 하야시야 다쓰사브로(林屋辰三郞) 교수는 "고류지에서는 국보 제1호 보관반가상 덕분에 재정이 생겨 먹고 살게 됐다"('京都' 1962)고 할 정도로 이 사찰의 주된 수입원이 되고 있다. 현재도 보관반가상을 구경하려면 5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일본 고류지 영보전의 '보계반가상'
적송으로 만든 보관반가상은 고대 한국에서 왜나라에 보내줬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 보관반가상이 고대 신라와 백제 중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의 많은 학자는 "신라에서 건너왔다"고 했다. 그러나 신라가 아닌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저명 학자들도 있다. 필자는 그간 수집해온 역사 연구 사료들을 가지고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기로 한다.

우 선 적송 보관반가상의 신라 도래설이다. 미술사학자 미스자와 스미오(水澤澄夫) 교수는 다음처럼 지적했다. "서기 603년에 아스카의 왜 왕실에서 성덕태자에게서 보관반가상을 모셔다 교토 고류지를 처음 세운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 진하승, 6∼7C)는 신라계 사람이다. 고류지의 미륵상이 신라 양식이라는 것만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수긍이 간다"('廣隆寺' 1975)고 했다. 미술사학자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교수도 "적송 보관반가상은 신라에서 보내준 것이며, 서울의 덕수궁미술관(일제 치하,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필자 주)에 있는 금동반가상(90㎝, 한국 국보 제83호)과 똑같다"('法隆寺' 1978)고 밝혔다.

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도 그의 저서에서 고류지의 적송 보관반가상은 신라 불상이라고 다음과 같이 썼다. "현존하는 미륵반가상의 양식은 신라계의 것이라고 하며, 신라에서 보내준 불상이라는 것을 전해주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歸化人' 1965)고 했다. 히라노 구니오(平野邦雄) 교수 역시 '하타씨의 연구'(秦氏の硏究, 1976)에서 신라 불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종래의 신라 도래설의 적송 보관반가상에 대해 신라가 아닌 백제에서 보내준 보관반가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백제 도래설도 아울러 살펴본다. 도쿄대학 건축사학과 오타 히로타로(太田博太郞) 교수와 도쿄교육대학 미술사학과 마치다 고이치(町田甲一) 교수는 공저에서 "보관 미륵보살 반가상(불상의 높이 84.3㎝, 소나무 한 둥치로 조각함)은 고류지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스이코천황(推古, 592∼628 재위) 11년(603년)에 백제에서 헌상(獻上)했다고 한다. 하타노 가와카쓰는 이 불상을 성덕태자로부터 물려받아 이 절(고류지)의 전신(前身)이었던 하치오카데라(蜂岡寺)를 지었다고 한다. 이 불상의 실제 제작은 7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생각되나, 그 양식은 한반도에서 전래한 것으로서, 지난날 경성(일제 하의 서울, 필자 주)의 이왕가박물관(당시 서울시청 앞 덕수궁미술관, 필자 주)에 있었던 청동제의 반가상을 극히 닮고 있다"('國寶·重要文化財案內' 1963)고 했다.

이처럼 오타 히로타로와 마치다 고이치 교수는 현재 일본 국보 제1호인 적송 보관반가상은 고류지에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백제에서 헌상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렇게 밝히면서도, 이 글의 뒷부분에 가서는 슬며시 백제가 아닌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는 등 앞뒤가 맞지 않게 매듭을 지었다. 요컨대 중요한 사실은 고류지의 역사 책에 '백제에서 헌상했다'고 하는 대목이다. 고류지에 전해오는 역사 책은 아마도 '고류지연기'(廣隆寺緣起)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사찰에서는 필자가 지난날부터 누차 '고류지연기'를 보여줄 것을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

역시 적송 보관반가상의 백제 도래설을 주장하는 고니시 아키오(小西秋雄)씨도 보관반가상은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류지에는 귀화 인의 자손 하타노 가와카쓰가 조선에서 건너온 불상을 성덕태자에게서 물려받아 603년에 고류지를 세웠다. 이곳 영보전에는 유명한 반가상 두 체가 있다. 그중의 보관반가상은 적송을 재료로 만든 반가상으로서 백제 말기에 백제로부터 일본으로 전래한 불상이라는 게 거의 확정적이다"('廣隆寺の彌勒菩薩' 1962)고 했다.




◇두 체의 한국 고대 미륵상을 보유한 일본 고류지 영보전
고 니시 아키오씨가 밝힌 것처럼 고류지의 영보전에는 또 한 체의 일본 국보인 머리에 상투를 튼 모습의 '보계반가상'도 모셔 있다. 이 보계(상투)반가상에 대해 오타 히로타로 교수와 마치다 고이치 교수는 공저(앞 책, '國寶·重要文化財案內')에서 보계반가상은 신라에서 건너왔다고 했다. 즉 상투 '보계반가상'(불상 높이 66.4㎝, 녹나무 한 둥치로 조각함)은 앞의 상과 똑같은 형식의 것으로서, '사전(寺傳)'에서는 신라에서 헌상했다고 한다. 보계를 드높게 틀어올렸기 때문에 머리에 관을 쓰지 못한 데서 앞의 상과 구별하여 '보계미륵' 또는 그 용모로서 '우는 미륵'(泣き彌勒)으로 속칭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가죽제로서 특이한 예이다"고 했다.

고니시 아키오씨 역시 다음처럼 보계반가상의 신라 도래설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는 불상'이라고도 불리는 것이 '보계 미륵보살 반가상'이다.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듯이, 스이코 31년(623) 신라에서 대사인 나말지선이(奈末智洗爾)를 일본에 보내와 헌상했다고 하는 불상으로 이 불상의 재료는 녹나무이다"는 점이다.

이처럼 고대 한국에서 전래한 반가상은 만든 곳이 각기 백제와 신라로 상반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13세기 후반에 일왕이 직접 썼다는 다음과 같은 역사 기록이다. 616년인 "스이코여왕 24년 5월3일, 여왕이 병환으로 쓰러지자 쇼토쿠태자는 여러 곳에 가람을 세우도록 서원(誓願)하였으며, 성체(聖體)와 똑같은 불상을 소원하자 그해 7월에 신라왕(진평왕, 필자 주)이 금불상을 보내주었다. 높이 2척이며 하치오카데라(蜂岡寺, 고류지의 최초의 사찰 명칭, 필자 주)에 안치했다"(今上皇帝 '一代要記' 1278∼1287)고 했다.

여 기서 말하는 서기 616년 7월에 신라왕이 보내주었다고 하는 '금불상'은 고류지 영보전에 있는 일본 국보가 된 두 체의 고대 한국 반가상(금불상)들 중에서 어느 쪽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일찍이 저명한 불교미술 사학자 미나모토 도요무네(源豊宗) 교수도 두 반가상에 관해 일제 말기에 쓴 저서에서 국적은 지정하지 않은 채, "두 미륵상(보관반가상 및 보계반가상)은 스이코 시대(592∼628)에 조선에서 건너온 나무 조각상이다"('古美術見學' 1944)라고만 단정했다. 금불상이라는 것은 나무 불상에다 도금한 것을 금동불상으로 오해했던 것.

문헌 제시를 마다하는 현재의 고류지에서는 두 반가상의 국적에 대해 과연 무엇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고류지에서 직접 편집해서 팔고 있는 책자('廣隆寺' 제작 便利堂. 발행연도의 표시도 안 함, 500엔으로 판매 중)에서는 '보관반가상'에 대해서는 국적 표시 없이 그저 '국보1호'만 크게 내세우고 있다. 반면에 상투 모습의 '보계반가상'에 관해서만은 사진(14×23㎝)과 함께 "백제에서 갖다 바쳤다"고 다음처럼 쓰고 있다.

"(국보)―백제국에서 온 공헌불(貢獻佛)로서, 앞의 미륵상(국보 제1호 보관반가상, 필자 주)과 똑같은 아스카시대(592∼628, 필자 주)에 만든 것이다. 그런데 본 불상은 눈이 크고 가늘고 길게 덮이는 눈이며, 입술을 당기고 있어서 울상처럼 보여 '우는 미륵'으로도 불린다.

이 불상도 또한 손발과 의상 등의 조법(彫法)이 뛰어나며 안정감 넘치는 빼어난 기교를 보이고 균제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자에서 국보 제1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적송 보관반가상은 책 전면의 큰 사진(18×23㎝)을 내고, 일본의 '국보 1호'라는 것만 자랑할 뿐이다. 어떤 이유인지 이 적송 보관반가상이 백제나 신라 그 어느 쪽에서 건너왔다는 출처에 관한 언급은 없다.

두 반가상의 국적에 관한 기록이 엄연히 고류지 역사책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고류지에서 직접 편집해서 팔고 있는 책자('廣隆寺' 500엔, 발행연도의 표시도 안함)에서는 적송 보관반가상에 대해서만은 전혀 백제나 신라 등 국적 표시 없이 그저 '국보 1호'만 크게 내세우고 있다. 오타 히로타로 교수 등이 상투를 튼 "보계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사전'(寺傳)에서 신라에서 헌상했다고 한다"고 했으나, 현재의 고류지 발행 책자에서는 "백제국의 공헌불"이라고 내세우니 옛날 '고류지연기'라는 사전(寺傳)을 사찰 관계자가 잘못 읽었다는 것인가.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일본 학자들이 두 불상은 각기 한반도에서 보내왔다는데 어째서 적송 '보관반가상'에 대해 '국보 제1호'만 내세우며 백제이거나 신라 도래 표시는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지 차제에 고류지 관계자들에게 굳이 묻고 싶다.

하기는 일본의 저명한 교토 향토사학자 다나카 시게히사(田中重久)씨가 그의 저서('彌勒菩薩の指' 1960)에서 고류지는 "조선인의 절, 우즈마사의 고류지"라고 지적하면서, "조선의 불상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까지도 아스카시대에 만든 것이 돼버리고 만다"고 비판하고 있을 정도이기도 하다. 독일의 신(新)칸트파 철학자였던 빌헬름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t, 1848∼1915)는 "역사는 과학이다"라고 주창했다. 역사의 고증은 결코 누구도 숨길 수 없는 일이다.

Friday, February 15, 2013

미륵불상이 유독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된 배경 백제의 녹나무 ‘상투 미륵상’과 신라의 적송 ‘보관 미륵상’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
⑪ 교토의 명찰 '고류지' 세운 진하승 장관
신라공예 극치 미륵불 봉안… '日국보 1호' 우뚝

 ◇신라 적송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신라에서 바다를 건너 왜로 온 진씨 가문의 발자취는 오늘의 교토땅과 밀착되어 있다. 그 상징적인 명소가 교토의 고류지(廣隆寺)이다. 사찰 고류지는 교토시의 서부 지역 우스마사(太秦) 거리에 있다. 교토역 앞의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완행버스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찾아가기도 쉽다. 고류지에는 신라 적송으로 만들어진 일본 국보 제1호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고, 역시 국보(지정번호는 없음)인 백제 녹나무로 만든 ‘보계(상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어 매우 유명하다.

보관 미륵불상은 서기 616년 신라 왕실이 왜나라 왕실로 보내준 불상(‘부상략기’)이다. 이 신라 불상은 1951년 6월9일 일본문화재위원회에서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됐다.(廣隆寺, 1970년 발행)
◇홍윤기 한국외대 교수
그런데 한 국내 학자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보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일본 국보 제1호가 아니다”라고 나선 일이 있다. 하지만 도쿄교육대 미술사학과 마치다 고이치(町田甲一) 교수는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신(新)국보 제1호’로 유명하다”(大和古寺巡歷, 1992)며 51년 당시 신국보 제1호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또 신문 기사에도 다음처럼 적혀 있다. “고류지는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지정 제1호)을 본존 불상으로 삼고 있으며, 교토에 건립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京都新聞, 2004년 5월1일자 27면)
왜곡된 시각은 또 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노히라 슌스이가 쓴 책 ‘日本人はビックリ!韓國人の日本僞史’(일본인은 깜짝 놀람! 한국인의 일본 거짓역사)에도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일본 국보 제1호가 아니다. 꼭 닮은 한국 국보 제83호(서울 용산 국립박물관 소장)와 비교해 우월감을 누리기 위한 한국인들의 주장으로 ‘일본 국보 제1호’라는 것이 ‘정설’로 오늘에까지 알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에 자랑삼는 이 신라 미륵불상이 유독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된 배경이 있다. 그것은 매우 귀중한 문화재들이 소실되는 화재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1949년 1월26일 나라땅 호류지(법륭사)의 금당벽화(7세기 초 고구려 담징 스님 제작)가 원인 불명의 화재로 소실됐다. 이듬해인 1950년 7월2일 교토의 긴가쿠지(금각사)도 방화 사건으로 불타 버렸다.(‘일본사연표’ 일본역사학연구회편, 1968) 이에 당황한 일본문화재위원회는 서둘러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 철저한 보호 대책을 세우게 됐다.
현재까지 다른 일본 국보에 대해서는 지정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다.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일본 최고의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또 95년 1월17일 일본 고베 지역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문화재 당국은 국보 제1호의 안전을 위해 불상 아래쪽 바닥에 지진 피해 예방대책으로 이른바 ‘내진대(耐震臺)’를 설치했다.
◇고류지 경내의 연혁비. 진하승을 엉뚱하게 중국인으로 바꿔놓은 비문.
교토의 명찰 고류지는 스이코여왕(592∼628) 시대의 재무장관 진하승(秦河勝, 6∼7C)이 서기 603년 11월 몸소 세운 사찰이다. 그 당시 진하승 장관은 백제 왕실에서 왜 왕실로 보내준 백제 미륵불상을 모셔 사찰을 세웠다. 그런데 이를 신라에서 보내주었다며 ‘신라 불상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규슈대 불교사학과 다무라 엔초(田村圓澄)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고류지의 두 국보 목조 미륵불상은 모두 신라에서 보내준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백제 미륵불상은 백제 왕실에서 녹나무를 가지고 조각한 것으로, 미륵불상의 정수리에 큼직하게 상투를 튼 모습의 ‘보계’가 이색적이다.
603년 창건 당시 사찰은 호코지(蜂岡寺)로 불렸으나 뒷날 고류지로 개칭됐다. 진하승 장관이 신라인 호족들의 본거지였던 교토땅 우스마사에 사찰을 세운 과정은 다음과 같다.
“쇼토쿠 태자는 만조백관에게 ‘우리의 존귀한 불상을 누가 모셔 가겠소’라고 했을 때, 진하승 장관이 ‘신이 모셔가겠나이다’라고 진언해 불상을 모셔다 호코지를 세웠다”(‘부상략기’). 처음 명칭이 호코지였던 지금의 고류지에 전하는 ‘고류지연기’(緣起)에는 불상은 “미륵상이로다”라고 전한다. 이 미륵상은 현재 고류지에 봉안돼 있는 또 하나의 일본 국보로 백제 미륵상인 보계(상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며 애칭은 ‘우는 미륵상’이다. 백제 유래라는 가장 오래된 근거는 15세기 문헌([山城州葛野郡楓野大堰鄕廣隆寺由來記])이다.
◇일본 ‘국보 제1호’의 글씨가 써 있는 고류지 정문 좌측 게시대의 사진 액자.
고류지의 본존불인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본래 신라 제26대 진평왕(579∼632 재위)이 보내준 미륵상이다. 일본 역사책은 “스이코여왕 24년(서기 616년) 7월 신라에서 나말죽세사(奈末竹世士)를 파견하여 불상을 가져다 바쳤다”(‘일본서기’)라고 적고 있다.
똑같은 해 같은 달의 ‘부상략기’는 ‘일본서기’와 사뭇 다른 내용을 보여준다. “스이코여왕 24년(서기 616년) 5월3일 여왕이 병환으로 누우니, 태자는 여왕의 쾌유를 서원하여 조정의 고관들에게 제 고장마다 절과 탑을 세우라고 명했다. 7월 신라왕이 높이 2척의 금불상을 보내 기증하자 이 불상을 호코지(고류지)에 안치하였다. 이 불상은 때때로 빛을 번쩍번쩍 발광하는 이적을 보였다.”(‘부상략기’).
또 다른 주목할 자료도 있다. “스이코여왕 24년 5월3일 여왕이 쓰러지자 쇼토쿠 태자는 여러 곳에 가람을 세우도록 서원하였으며, 성체(聖體)와 똑같은 불상을 소원하자 7월 신라왕이 금불상을 보내주었다. 높이 2척이며 호코지에 안치했다.”(今上皇帝 ‘一代要記’ 1278∼1287) ‘일대요기’의 저술자 금상황제는 일본 제91대 고우다왕(1274∼1287 재위)이다. 현대 일본의 사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국보 제1호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신라로부터 전해왔다(水澤澄夫 ‘廣隆寺’ 등)고 말한다.
◇고류지의 옛날 풍경 그림.
미술사학자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교수는 “적송 미륵불상은 신라에서 보내준 것이며, 서울의 덕수궁미술관(지금은 국립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상(90㎝, 한국 국보 제83호)과 똑같다”(法隆寺)고 밝혔다.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오랜 세월 탓에 몸체에 도금됐던 금빛이 퇴화 박락하여 지금은 붉은 적송의 빛깔이다. 진평왕의 큰 따님은 슬기로웠다는 덕만공주로, 뒷날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재위)이다. 이웃 왜나라의 첫 여왕인 스이코여왕의 신병을 불력으로 치유토록 돕느라 미륵불상을 보내준 진평왕은 신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 왕위 승계를 고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선덕여왕은 스이코여왕이 서거한 지 4년 뒤 옥좌에 앉았다. 고대 교토에 고류지를 세운 진하승은 당시 이 고장 최고의 부호이며 호족 진씨 가문의 지도자였다. 막강한 재력으로 스이코여왕(592∼628 재위) 왕실 재정을 돕는 장경(藏卿)인 재무장관도 지냈다. 쇼토쿠 태자 역시 진하승 장관을 존중하며 서로 절친했기 때문에 진평왕이 친히 보내준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고류지에 봉안하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서기 603년 최초로 백제의 보계(상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모시고 고류지가 건립됐고, 이어 서기 616년 신라 진평왕이 보내준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사찰에 봉안됐다고 정리하는 것이 옳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의 고류지에 백제의 녹나무 ‘상투 미륵상’과 신라의 적송 ‘보관 미륵상’이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류지 영보전 전경.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는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가리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정한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지금까지 본 일이 아직 없다”(篠原正暎 ‘敗戰の彼岸にあるもの’)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상들을 초월하는 가장 뛰어난 불상이라고 찬양했다. 일본의 한 대학생은 도취한 나머지 불상과 입맞춤하려 느닷없이 달려들었다가 그만 미륵상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소동을 빚었다고 한다. 손가락은 다시 보수됐고, 그 후부터는 승려 한 분이 불상 앞에 늘 지켜 서 있다.
현재 고류지 경내에 세워져 있는 사찰 연혁 비석(1971년 건립)에는 ‘신라 미륵상’이라는 표시가 전혀 없다. 이 사찰 발행의 유래 책자 등도 신라 미륵상임을 밝히고 있지 않다. 더구나 연혁비는 “진하승은 진시황제의 후손이다”며 터무니없게도 중국인설을 내세우고 있다.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성씨는 진씨(秦氏)가 아니고 영씨(瀛氏)이며 이름은 정(政)이다. 진씨 가문 연구의 권위인 이노우에 미쓰오 교수는 “진씨는 신라에서 도래한 사람들이다”(井上滿郞 ‘渡來人’)고 단정했다. 비석도, 유래책자도 바로잡아야 한다.
홍윤기 한국외대 교수 senshyu@yahoo.co.kr
(다음주에 계속)
2006.10.10 (화) 17:23

Nadal criticized criticised a move to enforce the 20-second rule between points at grand slams.

The Spaniard also criticised a move to enforce the 20-second rule between points at grand slams.


http://www.bbc.co.uk/sport/0/tennis/21436925

Rafael Nadal calls for fewer hard court tournaments

Former world number one Rafael Nadal says too many tournaments on hard courts will limit players' careers.

Nadal, 26, who last week made his long-awaited comeback on the clay in Chile following a knee injury, will play in the Brazil Open this week.

"Hard courts are aggressive on the knees, back and ankles," said the seven-time French Open champion.

The Spaniard also criticised a move to enforce the 20-second rule between points at grand slams.
Continue reading the main story   

    “Can you imagine football players playing on cement?”

Rafael Nadal

Nadal returned to competitive action at the Chile Open, where he lost in the final, after seven months out of the sport.

He had suffered from tendonitis in his knee since his dramatic second round five-set defeat to Czech Lukas Rosol at Wimbledon in June.

Nadal said the number of hard court tournaments on the ATP tour should be reduced.

"That is a theme among the players and doctors," he said.

"To make a change like that (reduce the amount of hard court events) it won't be possible in this generation but I think that the ATP has to work to think of how to lengthen tennis players' careers.

"Can you imagine football players playing on cement?"

Nadal also says that ATP chiefs need to reconsider their decision to try to speed up the game by enforcing the 20-seconds between points rule at grand slams.

"Rule changes should be made to improve the sport," he said.

"I don't think the players in the dressing room are happy with the new rule and we'd like it to be modified and that the referee interpret when you can take longer rather than it be something mathematical.

"People want to see long rallies and hard-fought points. Twenty five seconds is not enough."


http://www.bbc.co.uk/sport/0/tennis/21436925

Rafael Nadal believes hard courts ‘too tough’ on players’ bodies, says ATP needs to do more for long-term health of players

 Rafael Nadal believes tennis players need a break from grueling schedule and cement-like courts.

SAO PAULO - The ATP was not doing enough to protect players’ health and the increase in hard-court events will lead to long-term injuries that will affect players after they retire, Rafael Nadal said Tuesday.

“The ATP worries too little about the players,” said Nadal, who was in Brazil to play his second tournament after a seven-month layoff from a left-knee injury. “It should care more for them.”

The 11-time Grand Slam winner said he doesn’t expect major changes anytime soon, but it’s time tennis officials start thinking about ways to help improve the players’ long-term health.

“For future generations, it would be good to see a less aggressive tennis life,” he said. “Not only because of what happens during your career, but also because of what happens after your career, about how is your body when your tennis career is over.”

Nadal said because of the way tennis was played, he doesn’t “think it will be possible” for him to be a recreational athlete after his professional career.

The 26-year-old Nadal said hard courts were “too tough” on players’ bodies and made it difficult to avoid injuries. Tennis was the only major sport where players had to play on cement, said the greatest clay-court player of the Open era.

Rafael Nadal is back in action last week in Chile after seven-month absence.

“This is not a subject for the players, it’s a matter for doctors,” he said. “The ATP has to start thinking about ways to lengthen the players’ careers. I can’t imagine football players playing on cement, I can’t imagine any other sport involving aggressive movements such as tennis being played on such aggressive surfaces such as ours. We are the only sport in the world making this mistake and it won’t change.”

Nadal also criticized the ATP’s attempt to strictly enforce the 25-second rule between serves, saying it will not benefit the sport.

“People like to see great rallies, long matches, and for that to happen, the 25 seconds are not enough,” he said. “If the ATP wants a sport which is faster but doesn’t take into consideration a lot of strategy or great rallies, then it’s right doing this. I think the players in the locker rooms are not very happy with that rule.”

Nadal, who lost in the final of his first comeback tournament in Chile last week, said he wasn’t worried about wins and his main focus was to regain rhythm on the court.

“I need time, I need weeks of matches and practice,” he said. “I’m not prepared to think about titles yet, I’m thinking day-to-day. After so many months without playing, it’s hard to think about titles.”

He was to play his first-round doubles on Tuesday and his first singles on Thursday.

http://www.nydailynews.com/sports/more-sports/nadal-atp-players-health-article-1.1261917

졸렬의 아이콘 나달 하드코어 대회 더 줄여라!

갤로거         빈2 [ctg**(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조회수795
       
제 목         나달이 투어에 하드코트대회가 너무 많다고 말했던데
   




무릎에 부담이 많이 가는 하드코트대회가 너무 많아서 선수들 커리어에 지장을 준다고 말했네요.


당장 하드코트대회를 줄이는건 불가능하겠지만 ATP는 선수들 커리어를 더 연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될거라고도 말하고...

그리고 빠른 경기진행을 위해 도입된 슬램대회에서의 20초룰이 시간이 너무 짧다고도 인터뷰.


나달이 예전에도 이런 말을 했던적이 있나?아니라면 아무리 봐도 본인 몸상태가 안좋아서 땡깡부리는걸로밖에 안보이는데...;
   


2013-02-14 12:49:29
0

   
   


   

전체댓글수18| 욕설이나 비방 댓글은 누군가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새로고침
ㅋㅋㅋ    
저건 예전에도 들었었던 말같은데... 저런말 자꾸나오는걸 보니까 맛탱이가 가기는 간듯 달아 걍 섭앤발리로 바꿔 그럼 무릎보호 확실하다.|180.68.***.***
        2013.02.14 12:55    
머레기    
절충해서 잔디코트를 많이 만드는게,,,잔디가 품위있고 보기좋고 공속도 괜찮고 푹신푹신하고 ㅋㅋ|125.186.***.***
        2013.02.14 12:57    
ㅁㄴㅇ    
잔디만드는건 좋지만 관리랑 유지비는 어쩌려고 ㅋㅋ 대신 관리해주고 내주는 것도 아니자너|147.46.***.***
        2013.02.14 13:09    
ㅂㅂ    
클레이나 줄여라 무슨 1000이나 500은 죄다 흙임. 흙덕 많이봤으면서 저런말이 나오나|120.136.***.***
        2013.02.14 13:51    
E홋어    
나달새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175.223.***.***
        2013.02.14 13:54    
777    
비단 나달 뿐이 아니야.. 페더러도 메이저대회에서 너무 경기가 늦게 끝나느니, 호크아이 왜 도입하냐느니 원래 힘있고, 인기있는 자들은 주둥이만 동동뜨는것이 순리인거야.||211.40.***.***
        2013.02.14 14:00    
777    
근데 나달은 정도가 좀 심하긴 하다.. 얼마전엔 세계랭킹을 2년단위로 하자고 헛소리를 지껄이질 않나.. 블루클레이도 스페인 홈선수로써 기어코 지랄해서 없애버리고.. 오히려 투어 초반에는 순박, 성실, 묵묵의 아이콘이었는데 나이들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할배짓거리 하고 있네.|211.40.***.***
        2013.02.14 14:01    
테니스    
나달년|223.33.***.***
        2013.02.14 14:04    
ㅋㅋ    
물귀신처럼 꼭 페덜을 끌고 들어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님...ㅋㅋㅋ|14.35.***.***
        2013.02.14 14:24    
TENNIS [proceed43**(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다른 건 필요없고 잔디가 너무 없는 건 사실이다 아웃도어하드 클레이 블루클레이 잔디 인도어 골고루 하면 좋겠다
        2013.02.14 14:38    
댓글돌이    
댓글 10개 돌파!!
           
a    
잔디는 관리가 어려워서 잘 없나?|180.69.***.***
        2013.02.14 15:54    
나달년    
궁금하긴 하네 돈이 얼마나 들길래...전체 예산에 비하면 크지 않을거 같은데|143.248.***.***
        2013.02.14 16:19    
머레기    
ㅁㄴㅇ 돈드는걸 우리가 왜 걱정해 바보냐?|125.186.***.***
        2013.02.14 17:29    
dma.. [chore**(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잔디는 부상 위험이 높아서 선수들이 꺼려하기 때문에 점점 줄어든 이유도 있음다. 그리고 방송 중계할 때 공이 잘 안보여서 방송사에서도 싫어해요
        2013.02.14 20:05    
D    
하드코트 일반인도 몇 시간 치면 하반신 아픈 건 당연하다만, 하필 타이밍이 안 좋음. 나달은 항상 이런 거에 맞물려서 이슈가 되는 것 같음. 블루클레이야 다른 선수들도 말이 많았고. 그리고 가장 설득력이 안되는게 현재 1위인 조코비치는 군소리 없이 투어에 임하고 있음. 조코비치가 놀라운게 환경 탓을 별로 안한다는 거.|124.53.***.***
        2013.02.14 20:34    
ㅇ    
돈드는걸 우리가 걱정하는게 아니고 돈드니까 안만드는거지 그리고 잔디는 한번치면 망가지자나 윔비도 그거 한번할라고 일년내내 잔디관리한다 다른데는 어디 활용할수라도 있지|112.187.***.***
        2013.02.14 21:11    
쪼꼬렛비취 [djokor**(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점점 더 졸렬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라파엘 나달 ㅋㅋㅋㅋㅋㅋㅋㅋ
        2013.02.14 21:16    
박연옥    
비아그라정품(시)알리스▶▷ http://dasgsgrr.codns.com ◁◀정품...후불재[여성흥분재]조루치료제..프릴리지|42.117.***.***
        2013.02.15 08:02    

http://gall.dcinside.com/list.php?id=tennis&no=65352&page=4&bbs=

아베 총리 외할배가 한국인

이 름         루피조회수52
      
제 목         아베 총리 외할배가 한국인
  


외할배 키시노부스케도 총리를 했었고
알고보니 한국인이었다.
성이 키시(岸)는 사실 키(木)+시(子)를 감추고 있으며
나무목과 아들자가 합쳐지면 바로 李가 되는 것이다

키시노부스케는 이씨성의 한국인이며 아베 총리도 결국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쿼터라 할 것이다.

이걸 숨기려고 오히려 다른 총리보다 더 한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IP Address : 182.249.***.***
2013-02-16 09:23:22
0

Kawachi no Fumi clan (西文氏)은 백제 성씨

百済系の氏族である西文氏(かわちのふみうじ)との関係についても不明である。


http://ja.wikipedia.org/wiki/%E8%A5%BF%E6%BC%A2%E6%B0%8F

아야(漢, 한)씨는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씨

이 름         ㅇㄴㅇㄴ조회수49
       
제 목         신라계 도래인 하타(秦)씨가 O3a1c일 가능성이 높다.
       
   


하타(秦, 진)씨는 아야(漢, 한)씨와 더불어 일본의 한반도 도래 씨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성씨인데 신라계 도래인이다.

하타(秦, 진)가 O3a1c일 것으로 추정되는 첫번째 이유는,

하타(秦, 진)는 진나라의 유민이고 고대 해부족(海部族)으로 항해와 어업에 종사하며 바다와 관계된 일을 하던 신라계 도래인들이다. 중국 진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오기 위해선 부여, 고구려를 지나오기 힘들다. 마땅히 배를 잘 다루었다면 배를 타고 산동반도에서 황해도 쪽으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 이유는 신라계 하타(秦)씨가 사가노(嵯峨野)지역에 정착한 것은 5세기 후반 무렵으로, 볍씨를 가지고 왔다. 하타씨가 일본에 쌀농사를 처음으로 전수한 것이다. 또한 하타씨(秦氏)는 저수지와 수로를 만드는 관개 농업을 시작하였고, 우수한 토목기술을 갖고 토지를 개발하였다.
중국 학자들도 O3a1c는 쌀농사 하플로로 명명하고 있고 배를 잘 탔으며 관개 농업에 달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하타씨는 일본에 건너가 고류지(廣隆寺)라는 사찰을 만들었다.

경상도 지역에 21%로 전국 최고의 비율을 보이는 O3a1c(jst002611)은 하타(秦, 진)일 가능성이 높고 진나라의 유민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5c초반경에 신라에 정착하면서 신라의 우경과 쌀농사를 시작했으며 후반경에는 경북 울진지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하타(秦, 진)씨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IP Address : 211.208.***.***
2012-10-15 23:22:30
0

왜(倭)는 단군조선 때 마한(馬汗)에게 복속하였고

4. 馬韓의 種族
 
 1). 한(韓)
 
한(韓)은 한반도 토착민(土着民)이다.
B.C 194년에 평안도 지방에 살고 있던 한(韓) 무리는 기자조선(箕子朝鮮) 유민(遺民)들에게 일시 공파(攻破)당하였으나, 곧 기자조선 유민들을 한수(漢水) 이남으로 쫓아버리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 사서에는 이 나라 이름이 낙랑(樂浪)으로 적혀 있다.
그 후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주하는 무리가 많아지자 한수(漢水) 이북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지방에 살고 있던 한(韓) 무리는 만주에서 이주한 예(濊) 무리에 정복되었다. 그리고 한수 이남에 살고 있던 한(韓) 무리도 한수 이남으로 남하한 기자조선 유민 또는 만주 눈수(嫩水), 송화강(松花江) 등지에서 이주한 무리에 정복되었다.
이 한(韓) 무리도 만주에서 이주한 예(濊) 무리처럼 해님과 달님을 숭배하였다. 
한 (韓)의 신앙(信仰)을 보면 해, 달, 별 등 천신(天神) 외에 삼신(三神), 토지신(土地神), 산신(山神) 등을 섬겼고, 묘자리 쓸 때, 고기잡이 나갈 때, 길을 떠날 때 날자를 골라 제를 올리는 등 잡신(雜神)도 숭배하였다. 
 
2). 왜(倭)
 
왜(倭)는 서.남해 섬, 대마도, 일본열도 등지에 살던 토착민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고 54국이 있었다. 그 나라의 북쪽에는 낙랑이 있었고, 남쪽은 왜(倭)와 접했다.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後漢書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었다. 변진의 남쪽은 역시 왜(倭)와 접하였다. 弁辰在辰韓之南其南亦與倭接」後漢書 
「또 한 주호(州胡)가 있는데,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있는 큰 섬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작고, 언어는 한(韓)과 같지 않으며, 선비족처럼 머리를 깎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며,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고, 상의는 입지만 하의는 입지 않아 거의 벗은 것과 같았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韓.中과 교역을 한다. 又有州胡 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其人差短小 言語不與韓同 皆髡頭如鮮卑 但衣韋  好養牛及猪 其衣有上無下 略如裸勢 乘船往來 市買韓中.」 三國志
 
서. 남해 섬에 살던 토착민인 왜(倭)는 가축사육(家畜飼育), 어업(漁業), 약탈(掠奪) 등을 생업으로 하였기 때문에 생업상 무력(武力)을 사용할 기회가 많아 강한 무력을 보유(保有)하고 있었다. 이 왜(倭)는 단군조선 때 마한(馬汗)에게 복속하였고, 단군조선이 멸망한 후에는 직산(稷山:洪城?) 금마(金馬) 마한(馬韓), 익산(益山) 금마(金馬) 마한(馬韓), 구태백제(仇台百濟) 순서로 복속하였다.
마한이나 구태백제는 신라 공격 시 무력이 강한 왜(倭)를 군사로 사용하였다. 그 때문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왜(倭)를 군사로 사용한 마한이나 구태백제 군사가 왜(倭)로 적혀 있다.
 
3). 예(濊)
 
삼국지 예전에 적혀 있는 예(濊)는 넓은 의미로는 부여(夫餘) 무리를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부여(夫餘) 무리 중 농어업족을 가리킨다. 
고대에 만주에 살던 부여(夫餘) 무리는 단군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소규모로 한반도, 대마도, 일본열도로 이주하다가 B.C 194년경부터는 본격적으로 한반도, 대마도,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토착민(土着民)인 한(韓), 왜(倭)를 정복하고 수십개의 소국을 세웠다.





 http://home.megapass.co.kr/~hsg1000/a70d.htm





Gaya was called Nippon-Fu (Japan-Domination) people

basically u r correct. Gaya was called Nippon-Fu (Japan-Domination) people were Japanese. Older Sillagi built Kudara. Sillagi was imigrant from Japan Kushu to peninsula. Sillagi was cultivated to enjoy life, but Kudara was effected by Chinese military custom to erode and rob Sillagi teritory. Nippon-Fu fed up attacking wars to allow Shillagi to beat Kudara to exterminate. Nippon-Fu withdrew from Gaya together with Kudara refugees around AD670. It was the beginnging of Southern Korean history.
· 응답 대상: kazuko hotta (댓글 표시)
  • kazuko hotta
    There was no Gaya kingdom, it was ancient Japanese local territory.
    Iron was exported from Japan to Gaya.
    Funny, this footage chart is showing "Dokdo" which was not known in such old time,
    it was nest of sea lion of Japanese fishermen hunting.
    Totaly this footage is fake, and narration was stolen from Japan.
    It is shame of Korea to make such fake work on internet.


    http://www.youtube.com/watch?v=FCqnrhVZP1k
    ·

Wednesday, February 13, 2013

진하게 생긴 외모 희미하게 생긴 외모

제 목 : 남자들은 진하게 생긴 여자들 별로 안 좋아하나요?
웃어요 | 조회수 : 8,226
작성일 : 2011-09-09 14:53:01

사실 제가 약간 혼혈? 일본?러시아삘?  난다 그러기도 하고 외국인 처럼 코높고 쌍커풀 있고 진하게 생겼거든요

어제 아는 남동생을 만났는데 수수하고 희미하게 생긴 여자들이 인기가 훨 많다 그러네요

소녀시대 태연이나 아이유를 봐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보면 희미하게 생긴 여인네들이 인기 훨씬 많은거같아요

남자들은 진하게 생긴 여자들 별로 안 좋아하나요?

솔직히..과에서나 직장에서 제일 이쁘다..는 소리는 듣는데요~ 소리만 들어요

정작  남자친구는 안 생기고 실속이 없어서 짜증나네요

실속은 흐리게 생긴 여인네들이 더 챙깁디다


IP : 112.214.xxx.237

    대한민국 평균 플라이데이

    대한민국 평균키 쇼핑몰, 옷 잘입는 남자들이 모이는 쇼핑몰, 바로 여기!
    www.flyday.co.kr
    배간지

    리플달면 옷이 공짜, 신상품 무조건 10%할인, 멋을아는 진짜남자들
    www.beganji.com
    맨스스토어

    7년째 운영중인 맨스스토어가 잘되는 이유.
    www.mensstore.co.kr

3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짧은 댓글일수록 예의를 갖춰 신중하게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친 표현, 욕설 등으로 타인을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
    '11.9.9 2:54 PM (110.14.xxx.164)

    사람 나름이죠 그러니까 다 애인이 있는거고요
    ...
    '11.9.9 2:56 PM (58.85.xxx.19)

    진하게 생긴것도 다 각양각색이여서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들처럼 진하게 생기면 인기 짱많겠죠..
    하지만 이쁜것도 아닌데 진하기만 하면,,,인기 없을거에요.
        정답
        '11.9.9 2:58 PM (203.251.xxx.40)

        사실 진하다 아니다가 아니라 즉 이목구비가 아니라 얼굴형에서 결판납니다^^ 얼굴 갸름하면 희미하든 진하든 나름의 인기가 있음
    검정고무신
    '11.9.9 2:58 PM (218.55.xxx.198)

    진하게 생겼다고 표현하셔서 전 원글님이 눈썹이 숭숭 나고
    동남아시아 여인네들처럼 생겼다고 하신 줄 알았어요

    진하게 생겼다는 표현보다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좀 서구적으로 생겼다고
    표현하시는게 맞지 않나요?
    희미하게 생겼다는 표현도 넘 웃겼어요..ㅋㅋ
    수수하고 평범한데 청순하게 생긴 여인들 말하시는 듯...

    남자들이 연애할땐 화려하게 생긴여자 대체로 좋아하는데..
    결혼 할땐 좀 수수하고 성격이 순할거 같은 인상의 여인을
    택한다는 말 같은데요...?
        결정적순간엔
        '11.9.9 3:36 PM (211.207.xxx.10)

        선하게 생긴, 혹은 답답해보이기도하는 스타일이 의외로.
    나름
    '11.9.9 2:59 PM (119.192.xxx.21)

    사람 나름 아닐까요?

    저도 원글님 표현대로 진하게 생겼어요. 전 약간 인도삘이 난다고...
    눈 크고, 쌍커풀 진하고, 코도 오똑한데다 약간 매부리코고.. 피부도 고운 편이구요.
    오히려 외국인들이 저보고 한국인은 아니라고 믹스라고 하더군요. 순수 한국인입니다. *^^*
    남자들이 좋아하던걸요. ㅎㅎ

    지금도 우리 남편은 어디 부부동반 모임같은데 가면...
    복받았다고, 어디서 이런분을 찾았냐는 소리 많이 들어요.
    물론 예의상이려니 생각하지만 다른 부인들한테는 그런 말 안하는거 보면
    제가 '진하게 생겨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야해보이는 타입은 또 아니구요.
    제 친구 표현으로는 '소'를 보는 느낌이라던데...ㅋㅋㅋ
        ^^
        '11.9.10 2:51 AM (203.130.xxx.83)

        '소'의 커다랗고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닮아서 일까요~?
        암튼 부럽네요. ^_____^
    ㅎ
    '11.9.9 3:02 PM (58.227.xxx.121)

    남자들은 진하건 희미하건 예쁜 여자 좋아하고요~~
    진하다기 보다는 억세 보이는 스타일 그닥 안좋아하는거 같아요.
    전 여자지만
    '11.9.9 3:07 PM (121.172.xxx.165)

    저도 갠적으로 너무 진하게 또렷하게
    생긴 얼굴은 별로에요.
    ...
    '11.9.9 3:16 PM (119.64.xxx.86)

    흐리게 생겼다기보다... '선이 곱다'는 말이 더 알맞을 듯.
    선이 가늘고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 느낌이면 대개는 좋아하죠.
    jk
    '11.9.9 3:17 PM (115.138.xxx.67)

    외모보다는 성격때문에

    남자의 접근을 막고있지 않은가 의심스러움...

    적당히 내숭을 떨거나 남자들이 관심을 보일만한 틈이 없거나... 등등...
    뭐 가장 이쁘다고 하시니 진하게만 생긴건 아닌거같구요.
    ...
    '11.9.9 3:19 PM (220.73.xxx.251)

    진하게 생겨도 그 나름 아닐까요?
    왜 혼혈인 연예인 이유진인가? 이목구비가 또렷또렷하기는 하고 예쁘기는 한데
    마음이 끌리는 그 무언가가 없잖아요.
    그런데 반해 황신혜 오현경등은 이목구비가 또렷또렷하면서도 예쁘잖아요.
    그냥 사람 나름인듯.
    ...
    '11.9.9 3:20 PM (220.73.xxx.251)

    아..물론 오현경 (특히)황신혜 젊었을 때 얘기입니다.
    황신혜는 나이들수록 별로인듯.
        ^^
        '11.9.9 3:47 PM (218.55.xxx.198)

        저희 남편은 황신혜처럼 매력없는 얼굴 없다고 하네요..
        너무 완벽한 미인이라 그런가...?
        오현경도 눈 수술선이 넘 또렷해 이상해요
        오히려 심은하가 변함없이 전 이쁜듯...
    ...
    '11.9.9 3:24 PM (121.169.xxx.129)

    생긴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못생긴 사람도 애인 있어요.
    진하던 흐리던 결국은 매력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그리고 jk님 말대로 조금 흘리고 다녀보세요. ㅎㅎ 말이 좀 이상한가???
    하여튼 틈이 있고 좀 흘리고 다녀야 남자들이 따릅니다. ㅎㅎ 그냥 새겨들으세요..
    00000
    '11.9.9 3:29 PM (188.99.xxx.176)

    길가다 보면 코끼리 하마같은 몸매와 얼굴로도 연애합디다.. 못생겼다고 연애 못하는건 아님.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
    물론 이쁜 퀸카들은 그들만의 연애하는 리그가 다르지만.
    모카초코럽
    '11.9.9 3:33 PM (222.101.xxx.133)

    혹시 뼈대가 굵거나 얼굴이 큰 타입이신가요? 그럼 남자들이 그닥 안 좋아할거 같아요.
    눈코입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든, 흐리든

    남자들이 일관되게 좋아하는 타입은, 호리호리하고 선이 가늘고 얼굴이 작고 피부가 좋은 타입이더라구요.

    그 반대는 이목구비가 이뻐도 별로 안좋아하구요.
    대표적인 예가 혼혈 여배우 이유진 같은 케이스.
    웃어요
    '11.9.9 3:37 PM (112.214.xxx.237)

    키작고 손,발 다 작고요 얼굴도 작아요~ 눈하고 코만 커요 입은 또 작구요 ㅋㅋ
    피부는 하얀편입니다요~

    아 그리고 내숭 애교 없습니다
    남자들한테 부탁같은거 못하고 밥얻어먹는것도 미안해서 못 합니다 ㅋㅋㅋ
        jk
        '11.9.9 3:40 PM (115.138.xxx.67)

        아니 이거슨

        고도의 자랑질~~~~~ ㅋ
        ...
        '11.9.9 3:41 PM (121.169.xxx.129)

        원글님... 진국인 남자가 언젠가는 채갈것 같아요.
    //
    '11.9.9 3:52 PM (112.153.xxx.33)

    제가 소위 흐리게 생긴 여인네여요 ㅋㅋ
    명세빈 닮았다는 얘기 들었었는데...어떤 스타일인지 아시겠죠
    수수하고 은은한 그런 여자
    좋아하는 남자가 많은건 사실인거 같아요
    제가 이목구비는 절대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참하다 그런얘기 많이 들었었거든요

    제 남편도 그런 스탈 좋아해서
    저 첫눈에 반했다고 ㅋㅋ
    반면에 티비에 눈크고 이목구비 뚜렷한 여자들 나오면
    징그럽다고 질색

    다 지눈에 안경인거죠 ㅋ
    111
    '11.9.9 4:08 PM (211.251.xxx.89)

    옛날에 300원짜리 연습장에 홀로서기 같은 시 써있고 그려진 그림 보면 계란형에 선이 고운 물론 눈은 크지만..
    그게 먹히는 얼굴 같아요.
    얼굴형에 하얀 피부 이목구비 적당..여기에 머리모양만 약간 만져주면..
    연습장 표지 소녀 필 흉내내지요.

    저도 심은하게 제일 예뻐요. 선이 연해서..
        연습장 표지 소녀
        '11.9.10 9:54 AM (180.224.xxx.4)

        우리 열살짜리 딸이 딱 그렇게 생겼는데요,
        허벅지가 튼실해서 탈입니다요.ㅎㅎ
    ..
    '11.9.9 7:30 PM (175.192.xxx.191)

    진하게 생기더라도 얼굴이 작거나 얼굴선이 여성스러우면 인기많죠

    대체로 얼굴이 진하면 남상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것 같아요 선이 굵어도 얼굴은 작아야 여성스러보여요
    푸른연
    '11.9.10 1:54 AM (14.45.xxx.88)

    하나하나의 이목구비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 아우라입니다. 이목구비가 아무리 하나하나 예쁘게 생겨도 전체적인 이미지가 여성스럽고 참하지 않으면 인기없어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건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미지입니다.
    아마
    '11.9.10 3:00 AM (122.37.xxx.23)

    본인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격,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 때문일거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대학때 학과에서 제일 예쁘다고 저랑 말 한번 해보는게 소원이었따는 애들 있었는데..
    정작 저한테 대쉬는 얼마 없었어요. 전 애인이 있었기에 별 상관은 없엇는데..
    들어보면 제가 분위기가 그렇대요. 차 보이고 도도할 거 같고 좀 어렵고 그렇다고..
    근데 친해지면 놀래요. 완전 아줌마라고..;;; 근데 저도 그 말 들었지만, 그렇다해서 일부러 좀 다가오기 쉬운 분위기를 낸다든가;; 좀 흘려본다든가 하는건 잘 안되더라고요. 귀찮고..
    그냥 생긴대로 살다보면 또 인연은 다 만나져요. 아는 오빠 아는 동생 어장관리 대상 열댓명씩 필요하다 그런 거 아니면.. 소소히 연락하는 남자들 영양가도 없고요.
    전 제 애인의 경우는 제가 어느날 수업 듣다가 마음에 들어서 뚜벅뚜벅 걸어가서 밥 한끼 먹자 그랬네요.
    되게 놀라던데.. 암튼 미인이시라면 마음에 드는 남자는 직접 찍으면 되니까 다가오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 마세요.
    실제로 남자는 너무 예쁘고 너무 어렵고 그런 분위기보단.. 적당히 이쁘고 나도 가질 수 있을 거 같고 그런..
    좀 평범한듯 고운 여자분들한테 가장 대시를 많이 해요. 그런데 그 대시하는 사람중에 쓸만한 사람 많지도 않고요.. 다 그냥 그래요. 부러워 하실 거 없어요.
    E~~~very...........
    '11.9.10 3:44 AM (175.210.xxx.212)

    Jack has his Jill~~~~ ㅋㅋ
    짚신도 짝이 있다................미셤니까???

    천하의 황신혜도 싫어한다는 남정네가 있다잔아욧?

    인연은 따로 있어요~
    ...
    '11.9.10 7:08 AM (218.153.xxx.29)

    제가 흐리고 가련한 인상이었고 분위기 있다고 저 좋아하는 남자 많았어요.
    쌍커풀하고 나니 눈을 뺀 나머지 조건과 잘 맞아 이국적인 눈큰여인네로 거듭났어요.
    저도 청순하고 가는눈을 남자들이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답은 '아니다' 입니다.
    미인에 정형화된 공식은 없지만 같은 조건에 눈만 더 커져서 이미지가
    단아함에서 화려함으로 바뀌었는데 남자들의 반응은 비교 불가입니다.
    가히 폭발적입니다.
    연예인들이 전부 실물로 보면 매우매우 화려한 미인인데
    온국민이 이뻐라하는 것 보면 알죠.
    단, 제 아들의 경우 스스로 말하길 자긴 다른 친구들과 달리
    너무 큰 눈이나 이목구비가 싫다고 단아하고 참한 얼굴이 좋다고 그러더군요.
    ././
    '11.9.10 7:32 AM (121.160.xxx.41)

    저는 통뼈인데도 얼굴 갸름하고 피부 하얗고.. 보통 범위 안에서 이쁜 축에 들 정도로 보통인 얼굴이에요.
    그래도 직업도 남자들이 더 많은 직업이고, 집에서는 장녀라서 책임감있는 성격에, 개인주의라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성격인데도 말이나 행동하는 자태의 이미지가 여려보인데요.
    초등학교 동창들을 성인이 되어 만났을때는 이미지상 집에서 소설쓰고 있는 작가나 꽃집 아가씨로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았다나...
    제 이미지 때문에 남자들한테 인기 많았어요. 유순하고, 착할 것 같다고...
    생긴 그 자체 보다는 이미지가 한 몫하는 듯..
    ;;;
    '11.9.10 8:13 AM (124.5.xxx.88)

    원글님이 표현하신 그 진한 것,희미한 것(흐린 것)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자면..

    진한 것===> 강해서 싫다, 5분만 봐도 질린다. 남성삘이 난다. 쎄 보인다 어쩐지 사나워 보인다.

    희미하다(흐린 것)===> 야리 야리하니 부드럽다. 여성스럽고 부드러워 보인다. 순해 보인다.보호 본능 유발.

    남자들의 눈에는 대체로 이렇게 보이니 남자들은 원글님 표현의 그 진한 것은 안 좋아 하고

    그 희미하고 흐린 것을 당연히 좋아하지요.
    윗님 말씀대로..
    '11.9.10 8:30 AM (121.134.xxx.52)

    진한 것====>강해보인다(억세보인다),
    화장을 조금만 진하게 해도 "나가요"필이 난다(예쁜데 진하게 생긴 아는 분이 직접 그렇게 말하 대요,,자기는 화장을 진하게 할 수 없다고..)
    좀 부담스럽다.

    희미하다(흐린 것)======>여리여리해 보인다,여성스럽고 순해 보이고 보호본능 유발,,

    어느 곳에서나 융화가 잘 될 것 같아보인다.


    여자인 제 눈에도 여리여리하게 예쁘게 생긴 사람이 더 예뻐보여요.
    강하게 생긴 사람은 부담스럽구요.

    단,,강하게 생긴(진하게) 예쁜 사람이,
    얼굴과는 달리 말과 행동이 수더분하고, 털털하고,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경우에는(사람 좋은 스타일인 경우),,,
    외적인 강한 이미지가 사그라들고,,예쁜대도 성격까지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사람나름
    '11.9.10 8:41 AM (218.153.xxx.154)

    제가 희미한 얼굴이어서 전 너무 싫은데 또렷한 사람이 이뻐보이거든요 근데 솔직히 따르는 남자(?)들은
    좀 있었지요 참하단 소린 중학교때부터 들었던거 같아요 남편도 제 스타일을 좋아해요
    단 제 성격이 상대방을 좀 이해해주는 편이고 얌전할듯 하면서 또 완전 털털하기도 하고 새침하면서 우스갯소리도 잘하는 반전(?)이 있는 성격이에요 남편은 그 성격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얼굴이 보통만 되면 그다음은 성격인것 같아요
    연지
    '11.9.10 10:28 AM (211.212.xxx.207)

    외모와 관계 없이
    매력있는 성격이 아니라서가 아닐까요?
    외모는 거들뿐,
    진짜는 성격과 화제, 배려 건강한 웃음 이런게 진짜니까요.
    네
    '11.9.10 10:56 AM (58.126.xxx.160)

    전 결혼식때..메이컵하는 분이..
    이태리 풍의 미녀라했는데요.
    눈크고..코크고..
    입 큼..
    결혼하기 무지 힘들었어요.남자들이 기쎄보인다고..
    남편만 좋아함..
    다행히..남편이 전문직이였어요.
    지금 돈도 잘벌고..하지만...다들 다 이쁘다했는데 너무 남자가 안꼬여서..
    음...내가 향기없는 꽃인가 걱정했다는..
    다들 별로 안좋아하더군요.화장전후 별 차이 없다는..눈화장은..꿈도 못꿈..무서워 보일까봐
    저도 진한 얼굴.
    '11.9.10 11:17 AM (183.102.xxx.63)

    그러나 동남아풍.
    왜 하필.. 동남아 --
    ..
    '11.9.10 11:41 AM (211.109.xxx.184)

    남자들 대부분 선이 가늘은 스타일 안 좋아하나요?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
    좀 선하고, 선이 가는 스타일? 좋아하는것같애요
    자뻑아짐
    '11.9.10 12:42 PM (99.147.xxx.196)

    저도 진하게 생겼고, 성깔도 좀 있어 보이는 얼굴(남편 왈 보통 아니게 생겼다고 함)이라고 하는데,
    전철이나 버스에서 따라왔던 남자들도 있었고,
    모임에서도 나름 인기 있었어요.

    저보고 닮았다고 하는 연예인들도 하나같이 다 진하게 생긴 연예인들.
    미스코리아 탤런트 최윤영, 글로리아잎, 김혜수....

    남편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부부동반 모임 가면 자기가 능력남이 된 냥
    남편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군요. ㅋㅋㅋ

    날아오는 돌 피해 빨리 도망갑니다.







http://www.82cook.com/entiz/read.php?num=242838

외모가 진해야 우월하다.

이 름         4cc조회수90
       
제 목         일본남자 외모라 하면 눈크고 쌍꺼풀 찐하고 날카로운 외모지? 다음 요즘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싸이월드 C로그    
       
   


눈썹도 포함해서 중국남자도 찐한 외모는 많은데
물론 일본도 야요이 계가 있어서 꼭 그렇다고만은 못하고
중국도 북방계 스탈 외모들 많고
한국남자들은 부리부리 스탈 있긴 하지만 대체로
눈작고 눈썹 흐릿한 심심한 외모들이고
그래도 일본남자 얼굴들이 더 특징있게 생긴것 같긴 하다.
집에 일본헤어잡지 있어서 보는데 그냥 거리에서 찍은
일반남자들도 눈크고 부리부리 찐한 외모가 많이 보이고
혼혈스탈도 많고 타고나는건가?
   

IP Address : 128.134.***.***
2013-02-14 03:43:29
1
트위터 보내기페이스북 보내기미투데이 보내기C로그 보내기요즘 보내기
   

    스크랩
    나쁜글?
    음란물 신고

   
   

전체댓글수9| 욕설이나 비방 댓글은 누군가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새로고침
ᆞ    
걔네들 쌍커플 다한다 없으면 테이프붙여서라도 만드는게 일본남자들|211.36.***.***
        2013.02.14 03:45    
ᆞ    
걔네는 남자도 눈크고 진해야 미남으로보니가|211.36.***.***
        2013.02.14 03:46    
ㅇ    
ㄴ 쌍꺼풀 다하긴 개뿔 ... 테이프 붙인다는것도 개소리 ㅡㅡ 걍 타고나는거지|175.114.***.***
        2013.02.14 03:54    
ᆞ    
ㄴ 편할대로 생각해라 난관련학과고 일본 반년거주했고 주위에 일본 친구 있어서 내가 겪은대로 쓰는것뿐|211.36.***.***
        2013.02.14 03:58    
ㅇ    
ㄴ 일본은 여자도 한국보다는 성형적게하는데, 남자가 쌍꺼풀 다한다고??? 말도안되는소리지. 물론 하는사람도있겠지만|175.114.***.***
        2013.02.14 04:01    
ᆞ    
비율로치면 안하는 애가 많겠는데 너희가보는 잡지의 일본남 대부분은 앞뒷트임도 기본 눈큰여자애들은 백퍼 앞뒷트임|211.36.***.***
        2013.02.14 04:03    
김무죽    
수술 안해도 일본이 한국애들 보다 눈이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은 북방계 40프로에 남방계 60프론가 그렇고 한국은 북방계 80프로에 남방계 20프로니까. 남방계는 어쩌피 쌍커풀 있는 애들이니까 유전적으로 일본이 쌍커풀이 더 많을수밖에 없음.|96.255.***.***
        2013.02.14 04:42    
ㅇ    
211. 가수 싸이 닮은 조선련일듯..|61.102.***.***
        2013.02.14 08:14    
ㅇ    
장윤주 닮은 눈은 몽골과 한국이 전세계에서 유일|61.102.***.***
        2013.02.14 08:14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no=822656&page=1&bbs=

Tryols speak German in extreme northern italy

이 댓글은 스팸으로 신고되었습니다. 숨기기스팸 아님
The Venetian dialect has both Celtic and Germanic words in it. You can't speak it without knowing both. Tryols speak German in northern Italy. You show a lot of dark photos of these people to prove some sick point. No one said we are Vikings. That's your sick view. Germans aren't vikings either. They mixed with the Jews a lot, so much so that Hitler had Jews in his army and conveniently decided they weren't Jewish. No one is pure anything, so get off your high horse.
· 재생목록 Italians
 
 
http://www.youtube.com/watch?v=H3eDUf4DgrU&lc=i_EekgDaqDzEQuT3vMKQcy6myVovo5Ys99RFAJjBAy4 

Romans called North Africa White Africa comment

Sure you have been there, you havent been to Tunisia or Algiers and Morocco. Berbers are originally white, look at Zenedine Zidane he's Berber from Algeria IN North Africa, He can be lighter than many typical Italians or Spanairds. The Romans called North Africa "white Africa" just look it up, Although today alot of ve been mixed with Arabs from the Arabian penninsula thats why they are Darker.
· 2 응답 대상: ooIooOOooIoo


 http://www.youtube.com/watch?v=H3eDUf4DgrU&lc=i_EekgDaqDzEQuT3vMKQcy6myVovo5Ys99RFAJjBAy4

Sunday, February 10, 2013

Greeks and Romans are J2 Haplotype comment

Actually the Greeks and Romans are partially the same, both mediterranean, Greeks and Romans were both J2 haplotype. Romans were a mix of Celts and Mediterranean Etruscans. Etruscans and Greeks are the same people genetically. Proto Greeks (Dorians and Myceneans) were R1a northerners probably of Seima-turbino culture. Indigenous minoans and Pelasgians of Greece were Mediterranean like Etruscans. In fact that's how mediterranean J2 got spread around Europe - by the Romans.
· 응답 대상: Luchon20082010 (댓글 표시)
http://www.youtube.com/watch?v=aZAunpOGv8k

Portuguese is descendants of greek

There are letters written by a Roman geographer named Pomponius Mela that mention the city of Lisbon (Ulyssippo in Latin and Olissipo in Greek) Lisbon was founded by Ulysses. The Greeks were there till the Punic wars were over, then the Romans conquered the Peninsula and remain till the Moors invaded in 711. The Greeks continued to influence the Portuguese culture till the times of the discoveries, you can see that clearly on the book "LUSIADAS" an epic poem by Luís Vaz de Camões
· 응답 대상: unfukkme11 (댓글 표시)
 
 
http://www.youtube.com/all_comments?v=zk3-rmKvLbw 

Haplogroup J comments

    • Will you make a video about Italy's higher levels of E1b1b, J1? If Spain can't be considered European for having a combined level of 6% E1b1b and 1% J1, then what about Italy?
      ·
  • samysamy25
    J1 is not jewish !! WTF !! J1 is so Old in Africa before being expanding into europe
    for example nubians are 74% of J1 since the Neolithic
    · 응답 대상: aattitude
  • aattitude
    Well, J1 is common in the middle east. Therefore, a lot of Jewish people whose ancestry would be traced from any part in the middle east would have that gene. I'm not saying it originated there, but that it is very common there and that its frequencies are very high there (for a quite a long time).
    · 응답 대상: samysamy25 (댓글 표시)
  • samysamy25
    its also very commun among Kushitic groups Like Amhara ethiopians and Arsi Ethiopians , Beja , Eritereans and Nubians plus sudanese People ! ! ! frequencies from 36% to 74%
    hence J1 is not really commun among middle easterns J1 among lebanese is only about 11% ! ! !
    J1 is common among arabian peninsulars like Yemenites saudis qataris Omanis Emaratis frequencies from 30% to 65% ! but not Levantines or anatolians plus Iranians
    · 응답 대상: aattitude (댓글 표시)
  • aattitude
    You are simply pointing out the exceptions within the middle east. Overall, it is very common in the mid east.
    But I do agree that it is also common around Sudan/Ethiopia.
    · 응답 대상: samysamy25 (댓글 표시)
  • samysamy25
    east africa is not middle east ! and arabia peninsula is southern middle east !! and not all middle east is the same geography ! nor peoples are the same ... its Irrelvant
    J1 in europe goes back to neolithic not during the historic times ...mainly from north east africa to europe. and J's are not really very common as you think ..Js are commun commong middle eastern indu-europeans kurds northren iranians anatolians etc ...
    · 응답 대상: aattitude (댓글 표시)
  • aattitude
    I didn't say it was the middle east; I said the mid east and ALSO Sudan/Ethiopia.
    Yes, I agree that most of the European J1 is prehistoric.
    But it is mostly common in the areas I mentioned. The Arabian Peninsula is packed with it.
    · 응답 대상: samysamy25 (댓글 표시)
  • samysamy25
    arabia peninsula has received its J1 density from east africa and not from the Levant or mesopotamia. both Levantines does not share the J1 types with arabians In fact Nubians have the ancestral type of J1's arabians. J1 is originally from kurdistan in eastern turkey before 10.000 he expanding into Sinai and then to Nubia. a few time he enriched ethiopia and then to Yemen and all over arabia.
    thats happened between 5000BC to 1500BC! so J1 is not arabian at all nor really midd-eastern
    · 응답 대상: aattitude (댓글 표시)
  • aattitude
    ok, even if the origin is eastern Turkey, it had expanded into the mid east in prehistoric times and much of the mid east population has had that paternal marker since then, which long enough to consider it a "middle eastern" gene.
    · 응답 대상: samysamy25 (댓글 표시)
  • samysamy25
    Not really! J1 is diverged to many clusters that are not founded or even not diverse in such places: for examples ! most of nubians are J1c3d-L147 just like arabians! while J1c3d-L147 is nearly 1% in Lebanon! and we have another example of J1c3d1-I222.2 more frequent and diverse among africans than arabians. total of J1c3d1 at 90% among Sudanese while its only 69% among saudi arabians and Yemenites! THE ORIGIN of haplogroups is RELATIVE and not really linked to its Haplogroup ancestry
    · 응답 대상: aattitude (댓글 표시)
  • aattitude
    Look, J1 has been in Arabia and many other parts of the mid east for THOUSANDS of years. And eastern Turkey isn't that far away from the Middle East anyway.
    Ok, so in the Levant, it is not as common as in other parts of the middle east. That still doesn't refute my point that J1 is "typically" a middle eastern Haplgroup. It is very common in the mid east AND also in some parts of North eastern Africa.
    Spain is mostly R1b, I2 and to a lesser extent, E1b1b.
    · 응답 대상: samysamy25 (댓글 표시)
  • samysamy25
    @aattitude
    @aattitude
    if u said that J1 is typically middle eastern marker then you lumped such african groups with middle easterns Like Nubians Nilo-saharans , Beja, Kushitics and Ethiopians etc ... did u think that Nubians who were slaves of ancient egyptians were the same such as phoenicians and Jews or Like assyrians and Babylonians ?!
    yeah. I know spain is allmost R1b. the second haplotype was E1b1b1 some parts in spain goes back from 25% to 5% except central spain which is nearly Nul !
    · 응답 대상: aattitude (댓글 표시)
  • aattitude
    J1 is old enough to have been present in Africa and the Middle East for thousands of years, so just because two peoples share prehistoric paternal ancestry, it doesn't mean they're the same culture.
    · 응답 대상: samysamy25 (댓글 표시)

    http://www.youtube.com/all_comments?v=te8FU3dVpGQ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