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에서 상법을 전문으로 하며 인권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는 데이빗 김 변호사(David
D. Kim, Esq.)는 2012년 새해가 남다르다. 지난 20년 동안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4.29폭동’이 2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당시 4.29폭동의 연기 냄새가 가시지 않던 1992년 5월 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코리아타운을 방문해 한인 지도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인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총 6억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복구 지원책을
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당시 라디오코리아를 방문해 폭동 중에 생방송을 통한 구호활동을 치하했는데 미국의 대통령이 언론사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거의 없었던 이례적인 행적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한인 지도자들과의 역사적인 간담회의 사회를 맡았던
주인공이 바로 1.5세 데이빗 김 변호사였다. 유창한 영어로 그는 한인사회가 당한 폭동의 아픔을 대통령에게 진언했다. 그는 당시
미동부에서 LA로 이주한지 7년차였으며, LA시정부와 협력해 한인 커뮤니티 경제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으며,
라디오코리아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가 폭동을 만나게 됐다.(박스기사 참조)
4.29폭동 20주년을 기해 데이빗 김
변호사는 2008년에 자신이 제작한 4.29폭동 다큐멘타리 <컬러들의 충돌>(Clash of Colors)을 토대로
장편 극영화 제작에 나서면서 국내외 한인사회의 후원과 성원을 바라며 기대하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컬러들의 충돌>은 인종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컬러’(Color)는 인종을
가리킨다. 김 변호사는 언론인, 사회학자, 정치인, 커뮤니티 리더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 4.29폭동의 진상과
한인사회가 집중적으로 당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DDK Production’을 설립해 만든 작품이4.29폭동
다큐멘타리 <컬러들의 충돌>(Clash of Colors)이었다.
김 변호사는 폭동 20주년을 계기로
제작하는 영화를 위해 이미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48 hours> <탐스톤>
<스토운콜드>의 작가•프로듀서인 존 파사노, 니콜스 펠로우십 수상자인 소설가 로니 켈러 등과 다큐멘터리 원본을 토대로
대본을 공동 집필하고 있다. 또 한국과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들이 캐스팅될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빗 김 변호사는 “영화를 통해 그동안
숨겨진 진실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큐멘커리 <컬러들의 충돌>(Clash of
Colors)에서는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들을 관계자들이 폭로하고 있다. 이 다큐멘타리는 그동안 수차례 방영되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들이 많다. 폭동을 앞두고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어떻게 한인 커뮤니티를 왜곡시켰는지, 누가 진짜
가해자인지를 다시 조명해 본다.
“언론이 한흑갈등의 공범”
LA타임스 기자로 활동했던 존 리씨는 “폭동이 발생하기전부터 LA타임스를 포함한 미주류
언론사들은 한인상점들의 고객과 업주간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다”면서 “그러나 만약 고객과 업주가 흑인과 한인으로 구성되지
않았을 경우 그 사건은 기사로 다루어 지지 않았다”고 폭로 했다. 말하자면 한흑갈등 소재를 찾아 다녔다는 것이다.
UCLA
사회학자인 데릴 헌터는 “언론들은 한인사회와 흑인사회간에 진정 서로 돕고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도하는데는 무관심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흑갈등만을 기사화 한 점에서 미디어는 한흑 갈등을 충돌시킨 공범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나 깊이도 없이 그저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접하게 된다”면서 “그렇기때문에 미디어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된다”고 지적했다.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인 레리 엘더는 “한인사회가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려고 흑인사회와 여러차례의 회의를 가진 노력 자체가 한인들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당
시 한인갈등에 대한 주류언론들의 집착은 마치 한인상인들의 문화적 무지가 이 지역문제의 원인인듯 초점을 맞추었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는 “LA타임스는 한인업주들을 무례하고 흑인사회를 착취하는 자들로 묘사한 반면, 뉴욕타임즈는 한인업주들을
모범적인 소수민족으로 묘사했다”면서 “그리고 흑인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알 샤프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하며 그가 흑인사회를
결집하기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LA타임스는 대니 베이크웰을 흑인사회의 새로운 지도자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박
계영 UCLA교수도 “뉴욕타임즈와 달리 LA타임스는 문제의 저변구조를 다루지 못했다”면서 “LA타임스는 한흑갈등을 항상 인종문제로
보도하면서 이를 문화 차이의 탓으로 돌렸다”고 했다. 그는 더 나아가 “당시 언론은 이 두 개의 무지한 인종들간의 분쟁을
보도하면서 마치 이를 즐기는 듯 했다”면서 “백인들만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한인들처럼 새로운 이민자들도 인종차별을 한다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흑인들의 백인에 대한 악감정을 한인들에게 돌려버렸다는 점이다.
민권운
동가인 데이빗 호로위츠는 “60년대부터 과격파들의 영향력이 LA타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면서 “그들은 한인들이 매일 18시간씩
일하고 모든 가족들이 동원되어 상점 일을 돌보지만 한인들은 선택받은 그룹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LA타임스의 언론 관계자들이
한인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1992년 3월 3일 비디오로 녹화된 사건 장면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LA사회를 분열시켰다. 그 중 전세계가 보았던 비디오 장면이 ‘로드니 킹 사건’이었다
흑
인들을 분노케 한 사건은 로드니 킹 사건뿐만 아니라 2주간 간격으로 발생한 한인업주 가게에서 발생한 흑인소녀 피살사건이었다.
1992년 3월 16일 흑인 10대소녀 나타샤 할린즈 양이 한인 리쿼스토어 업주 두순자 씨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다. 재판
결과는 과실치사 혐의로 5년 집행유예였다. 흑인사회는 이 판결이 너무나 가볍다고 생각한 것이다.
작가인 루케넌은
“배심원들은 두순자 씨에게 고의적 과실치사로 평결했다. 두씨의 범행이 고의적이라는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판사가 공정한 평결을
무시하고 부당한 선고를 하면서 흑인사회에 불씨를 던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데릴 헌트는 “흑인사회를 뒤흔든 사실은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보다 그 사건 역시 비디오에 포착되었다는 점이다”면서 “두순자 씨가 너무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는 것에
흑인들이 분노했다”고 말했다.
민권운동가인 데이빗 호로위츠는 다른 면에서 이 사건을 보았다. 그는 “두순자 사건 전
약 3년 동안 한인 상점 주인이나 관련자들 37명이 강도들에 의해 살해되었으나 언론들은 단 한 건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흑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이 두순자 총격사건을 이용하여 한인사회와의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흑인을 죽이고도
(한인이)감옥에 가는 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했다.
더군다나 흑인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있던 흑인 목사들의
행동도 문제였다. LA흑인사회 최대 교회의 하나인 AME교회의 메레이 목사는 “두순자 씨는 나타샤 할린즈라는 소녀를 본 것인가
아니면 야만인 집단의 한 일원을 본 것인가”라고 소리쳤다. 레리 어브리는 “흑인들은 할린즈 양이 매정하게 총에 맞아 죽었으나,
두순자씨는 단지 회초리 한대 맞은 것으로 사법처리가 됐다는 점에 분노가 일어났다”면서 “그들의 분노를 사법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한인들을 향해서 나왔다는 점이다”라고 분석했다.
도시문제 이론가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어린 소년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변명할 수 없으나 그 사건으로 한인사회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LA경찰국의 입장도 문제라고 지적을 받고 있다. ‘로드니 킹 사건’ 테입 유출 직후 심한 압박을 받았던 LA경찰국은 두순자 사건이 발생하자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질문을 유발시켰던 것이다.
경찰 기자회견도 의혹
이 사건은 로드니 킹 사건 발생 후 13일 후에 발생했고, 킹을 구타한 4명의 LA경찰이
기소된지 24시간만에 일어났다. 경찰이 왜 서둘러 기자회견을 한 것이 의혹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확실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결과는 그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의 관심이 이 사건으로 집중시킨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기자회견 후
TV보도에서도 15세 할린즈의 죽음은 51세의 두순자씨가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이라며 경찰은 감시 카메라를 분석한 결과 할린즈
양이 오렌지 쥬스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애초 할린즈 양이 오렌지 쥬스를 훔치려 했기에 두 사람간에 다툼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찰이 그 것이 아니라고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흑인들은 한인 두순자가 어린 소녀를 무참하게 살해한 것으로
만들었다.
존 리 기자는 “LA경찰국의 기자회견 시기와 왜 경찰이 서둘러서 이 사건을 기사화했는가에 관한 의문을
던지게 하기에 충분했다”면서 “만약 한인상인이 아닌 흑인상인에 의해 흑인 소녀가 살해 됐다면 아무도 흑인상인에 관한 뉴스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이 이 사건을 두고 교묘히 한흑갈등을 조장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경원
원로기자는 “왜 미국 언론들은 두순자 씨를 말할 때 ‘한국인 두순자 씨’라고 토를 달았는가”라면서 “그녀는 미국시민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헨리 키신저를 이야기할 때 ‘독일인 키신저’라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 언론들은 ‘두순자 씨 사건’을 ‘한인 두순자가
쏘았다’라면서 인종갈등 문제로 보도했던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두순자 사건’을 두고 언론들이 보도한 것도
한흑갈등을 조장하거나 선동하는 쪽으로 언론들이 몰고 갔다. 존 리 기자는 “처음 공개된 ‘두순자 사건’ 테이프에는 사건 당시
상황이 전부 공개 됐다”면서 “그러나 그 후에는 사건을 다룰 때마다 편집된 내용만 나왔다. 할린즈 양이 뒤통수에 총을 맞는 장면만
보여주었던 것이다”고 밝혔다.
데이빗 호로위츠도 “미국 언론들은 총격장면만 보여주었다. 할린즈 양이 처음 두순자씨의 얼굴을 때리는 장면은 삭제됐다”면서 “언론들이 고의적으로 이런 장면을 삭제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데
이빗 호로위츠는 “왜 언론이 그처럼 무책임했던가는 미국 역사와 관련이 있다”면서 “미국은 과거에 흑인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흑인들이 미국의 노예였기에 미국의 오명으로 남겨졌다”면서 “언론을 운영하는 자들도 흑인에게 보상하려는듯이
그들의 범죄를 과잉보호하고 그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했다”고 밝혔다.
흑인 지도자들도 폭동을 선동하는 무책임한
행위를 저질렀다. AME 교회 목사들을 포함해 그들은 여러차례 라디오나 TV에 나타나 LA를 불 태우자고 선동했다. 나중에
시의원이 된 마크 리들리 토마스는 “우리는 그저 누워서 당하지만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TV에서도 한인들이
표적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흑인 상점들은 피해를 면했지만 한인상점들은 모조리 파괴됐다. 인구학자인 리오 에스트라다는
“폭동 당시 모든 상점들은 약탈당하고 타지 않았다”면서 “확실한 것은 한인들 소유의 상점들은 대부분 약탈당하고 방화됐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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