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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21, 2011

백제라는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가 있는겠가?

갤로거 진리자 [wlsfl**(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제 목 동북아 세계대전 백촌강 전투에대해서



660년 7월 13일.. 백제 의자왕 웅진성에서 나당연합군에게 항복..백제멸망

12월..왜국의 제명천왕이 난파궁(難波宮)과 축자(筑紫-쿠슈)에 까지 나아가 무기와 군대를 점검

661년 5월.. 왜국의 제명천왕 조창궁(아사쿠라) 까지 나아가 군선을 점검.

662년 5월.. 왜국의 중대형이 자국에 있던 부여풍을 백제로 귀국시킴 (호위병 5천명, 군선 170척)
부여풍, 복신과 도침에 의해 백제부흥군의 임금으로 추대 됨(풍왕)

663년 8월.. 왜국의 백제 구원병 출발. (병력 2만7천명, 전선 400척)

8월27일..왜국의 2만7천 구원군 백강 진입. 진입과 동시에 백강에 주둔중이던 당의 수군 170척과 교전하였으나 패전.

8월28일..나당연합군, 백강에서 4번 교전을 벌여 왜군을 대파. 왜군-전선 400척 침몰, 전멸에 가까운 대패.

『 유인궤와 별수 두상, 부여융은 수군과 군량을 실은 배를 거느리고 웅진으로 부터 백강으로 가서 육군과 합세해 함께 주류성으로 가다가 백강 어구에서 왜국 군사를 만나 4번 싸워 모두 이겼다. 왜국의 병선 400척이 불타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고 바닷물도 붉어졌다. 』 -삼국사기


일본서기 천지천황2년 『 (663년,9월 7일)..백제의 주류성이 마침내 당에 항복했다. 이때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주류성이 함락됬다. 이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백제라는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가 있는겠가? 』

제명천왕이 백제 무왕의 딸이었다는 설은 정작 일본인학자가 주장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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