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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13, 2011

일본어의 어원은 한국어?

아무리 다르다케도… 일본어는 한국어



“니가 아무리 싫다케도 나는 니가 좋다.”

여기서 ‘∼다케도’는 ‘∼한다고(라고) 해도’를 줄여 발음한 경상도 방언이다. ‘다케도’는 일본어에서도 같은 발음(だけど)과 뜻으로 쓰인다.

김용운(수학) 한양대 명예교수는 현대 일본어가 경상도 전라도의 방언과 비슷하다며 일본어가 한국어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일본어는 한국어다’(가나북스)에서 ‘다케도’처럼 현대 일본어에 남아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 방언들을 소개한다. ‘∼(한다)니까’라는 뜻의 일본어 ‘∼닷케(∼だっけ)’와 ‘말씀드리다’는 뜻의 ‘모―시(申し)’는 전라도 방언의 ‘∼당께’와 ‘마시(말)’에서 각각 유래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7세기 이전까지 고대 한국어 발음이 일본어처럼 받침이 없고 모음이 단순해 형태가 흡사했다고 설명한다. 또 영남과 호남지역에서는 일본의 동해 인접 지역과 왕래하며 서로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언어는 문화”라며 “일본어는 한국문화를 수용한 역사와 함께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경상도에서 흔히 쓰는 방언인 ‘이바구(얘기)’가 일본어의 ‘이와쿠(いわく· 가라사대, 말씀하시기를)’로 변형된 예는 한국인이 쓰는 말을 고급어로 숭상한 그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도쿄 태생인 김 교수는 양국 언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자신이 체득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며 풀이한다. 더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한국 ‘삼국사기지리지’와 일본 ‘고지키(古事記)’ ‘만요슈(萬葉集)’ 등 고대문서의 고어를 참조했다.

김 교수는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사찰을 지어주며 벽에 새긴 이두가 일본 ‘가나’ 문자의 원형이 됐다”며 “일본어는 말과 문자가 모두 고대 한국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어의 ‘∼때문에’가 일본어에서는 ‘∼타메니(∼爲に)’로 변형됐다거나 ‘구르다’와 탈것을 의미하는 ‘마’(‘가마’의 ‘마’)가 일본에 건너가 ‘바퀴 달린 끌 것’을 의미하는 ‘구루마(くるま)’가 됐다는 해석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김 교수는 “지금 보면 전혀 닮지 않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단어들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뿌리의 말이 상당수”라며 “고대 한국인이 일본 사회와 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2006년 8월 25일

: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8250041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언 어학계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한글을 세계의 문자 제1순위에 올려놓고 있다. 또한 각국 언어학자들은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을 한 바 있다. 이처럼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줄 하나의 자료로서, 한글과 세계 언어의 관계를 다뤄보려고 한다. 어떻게 한민족 언어가 전세계 언어의 뿌리가 되었는지, 왜 우리나라 문자가 세계적인 문자로서 손색이 없는지를 살펴본다.
 그 첫 번째로 일본어의 뿌리를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아사히, 히타치, 시미즈 같은 말을 들어보면, 여러분은 어느 나라 말이라고 느껴지는가? 언어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일본말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아사히를 한자로 朝日, 히타치는 日立, 시미즈는 淸水라고 쓴다는 사실은 잘 몰랐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글자들을 조일, 일립, 청수라고 읽지만 일본에서는 아사히, 히타치, 시미즈라고 발음한다. 왜 그럴까?
 
 이 글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전혀 다를 것같은 이 두가지 발음이 사실은 한 가지 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자못 놀라게 될 것이다. 가령 아사히(asahi)는 아침해, 히타치(hitachi)는 해돋이, 시미즈(simizu)는 샘물이라는 한국말이 일본식 발음으로 변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자, 다음을 보자.






 
 이상은 한일간 언어연구 역사 280년 동안의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낸 조선일보 일본특파원 부시영 저, 『일본 또하나의 한국』(1997)이라는 책에서 몇가지 인용한 것이다.
 
 고구려나 조선시대에 일본에서 한국어를 쓰고 있었다는 것은 얼핏보면 낯설은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의 옛말과 일본어를 비교해보니, 한일간 언어의 유사성이 매우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한국인이 전해준 선물, 일본어



 일본에 박영미(43세, 규슈산업대 한국어 강사)라는 교포 언어학자가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시미즈 키요시(淸水紀佳, 63세)라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와 더불어 한·일 언어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최근 한국어의 비교언어학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이 연구한 것은 한국어와 일본어가 비슷하다는 단순한 어휘비교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언어가 어떻게 음운변천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무려 5000자에 걸친 생활언어의 어근을 비교함으로써, 이들은 한반도에서 쓰이던 한어가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어로 정착하였다는 자명한 사실을 누누이 확인하게 되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아래도표)
 








  여기서 시즈미 키요이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고유어와 일본의 고유어는 어근으로 볼 때 똑같은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토대로, 같은 어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일단 500개 정도가 같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후 1년 정도 지난 후에 5000개 정도의 같은 어근을 찾아냈습니다.
 
 5천개의 공통어근을 찾아낸 결과, 게다가 그 공통어근이 매일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이른바 기초어휘의 범주라는 점을 생각하면, 언어학적으로 두 언어는 같은 언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시미즈 키요시 교수 박 영미 교수가 시미즈 교수를 만난 것은 1994년 일본 구마모토 대학 언어학과에서였다. 시미즈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아프리카 연구소에서 18년간 비교언어학을 하고 귀국했는데, 당시 대학원생으로 있었던 박영미 교수를 만나면서, 일본어의 뿌리찾기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시미즈 키요시·박영미 공저 ,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저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한국어의 변천과정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로‘반도한어’와‘열도한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열도한어



 일본어가 한국어와 많이 닮았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특히 일본말 중에는 제주도 방언과 거의 같은 것이 있고, 일본어의 억양은 한국의 경상도 언어의 억양과 비슷하다고들 말한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한국인이 일본에 건너가 문물을 전해주었다든가, 고대 일본의 지배층이 한국인이었다는 견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들도 일본인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며, 일본어의 뿌리는 바로 한국어라고 말한다. 게다가 인류학자들이 말하기를, 규슈지방의 일본인 유전자는 한국인과 유사하다는 DNA분석 소견도 있다.
 
 이 모든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한반도야말로 일본의 ‘자궁’이었으며 일본이라는 식민지의 ‘모국’이었다는 표현이 가히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시미즈 교수와 박영미 교수는 열도한어는 반도한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반도한어는 아주 오랜 옛날의 대륙한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대륙에서 있었던 언어의 이동경로와 흡사하다. 유럽대륙에 살던 앵글로 색슨족이 게르만어를 가지고 영국으로 들어간 것과 똑같은 일이 이곳 아시아 동쪽끝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일본열도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민족이 언어를 가지고 일본열도로 들어감으로써 오늘날 일본어의 모태가 되었다는 얘기다.
 
 시미즈 박사는, 고대 이집트 언어가 현대 아프리카 언어와 같은 계통이며, 영어가 독일어의 자매어로서 게르만어의 하나인 것처럼,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언어라고 말한다.
  
 농사법의 전파 경로가 곧 언어의 길



 일본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마크 허드슨 박사는 일본어의 원형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농경인의 언어라고 확신한다.(아래사진)
 
마크 허드슨 박사 그는 농사가 퍼져나간 길이 바로 언어의 길이라고 말한다(훗카이도대학 북방문화과 강사, 『정체성의 몰락 일본열도인의 기원』의 저자, (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일본어의 기원은 기본적으로 야요이 문화의 기원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언어라 할 수 있는 신일본어는 야요이인이 가져온 문화와 함께 한반도에서 동시에 도착한 것입니다. 일본어는 바로 그 시기에 한반도에서 도착한 농경집단에서 유래되어 북부, 남부, 오키나와의 순서로 확산되었다고 봅니다.”



 [*참조: 일본의 신석기 시대를 조몬시대라 하는데, 이 다음에 이어진 시대가 야요이 시대(BC400~AD300년)이다. 일본에서는 야요이인이야말로 오늘날 일본들의 직접적인 선조이며, 본격적인 고대국가를 형성한 사람들로 공인되어 있다.]
 
 인류역사의 변화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농경문화의 확대였다. 농경의 중심지가 새로운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기존에 있던 원시적인 수렵채집단계의 사람들을 대체해갔다. 일본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농경민들은 안정된 농사로 인구가 늘자,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자신들의 농사기술과 언어를 가지고 이동했다. 한반도 농경인도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언어를 뿌리내렸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인식은 야요이인*은 조몽인과는 전혀 다른 이주민이었다는 일본의 인류학자 나카하시 다카히로 교수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고대 인골 연구로 명성이 높은 규슈대학에는 5천구에 달하는 고대 인골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들의 유전자가 한국인의 유전자와 거의 같다고 한다.
 
 인도와 유럽으로 퍼진 언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경인들의 언어였으며, 논농사와 함께 한반도 농경인의 언어도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가정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그러므로 농사가 퍼져나간 길이 바로 언어의 길이었다는 것이 허드슨 박사의 결론이다.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대해, 고려대 국문학과 정광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주목할 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고구려의 수사(數詞) 네 개를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찾아냈습니다. 고구려어로 알려진 이 네 개의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합니다. 민족의 언어의 계통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의 위치인데, 고구려와 일본의 수사가 일치한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겁니다.”(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대륙언어라 명명된 고대 한국어란 삼국시대 이전, 북방에 있었던 부여와 고구려어를 말한다. 삼국어의 뿌리도 여기에 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 차이는 서로 다른 나라로 지낸 700년 동안의 기나긴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정리하면, 오랜 옛날 한반도에 한 줄기의 언어가 있었는데, 그 갈래에서 나온 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조화를 이뤄 지금의 한국어를 이룬 반면에, 일본어는 따로 떨어져 저 혼자의 길을 걸어 지금의 일본어가 되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이며, 고대 한국말을 모태로 하여 오늘날의 일본어가 태어났다고 요약된다.





 모든 길은 한반도로 통한다 일본에 대륙문화가 유입되는 네 가지 경로를 연구한 모리 고이치(森 浩一) 교수의 분석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합성했다. 경부고속도로가 꼭 대전을 경유하듯이, 일본으로 가는 모든 루트는 한반도를 경유했다는 것이다. (이런 근거로 일본은 한반도의 강남과 같았다고 부지영 씨는 말한다. 『일본 또하나의 한국』 151~155쪽 참조)






 한국어의 이동경로: 대륙한어->반도한어->열도한어



 대륙한어는 고조선과 부여가 있던 곳에서 출발해 한반도로 내려와 반도한어가 되었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열도한어가 되었다. (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말은 민족을 낳고〉중에서)
 참고자료 ***************



 『아나타는 한국인』 시미즈 기요시·박영미 지음, 정신세계사, 2004년 9월
 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말은 민족을 낳고
 『일본 또하나의 한국』 부지영 지음, 한송, 1997년

Tong

: http://tong.nate.com/skybsang/30196126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학문적 입증



시미즈 기요시 전 교수-박명미 규슈산업대 강사 공동논문 경상도 사투리와 일본어는 발음과 억양이 대단히 비슷하다. 경상도 사투리에는 한국어의 옛 형태가 많이 남아 있다. 옛 한국어와 일본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미즈 기요시(64)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와 박명미(44) 일본 규수산업대 강사(사진)는 그 ‘추측’을 ‘학문’의 지평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두 연구자는 오는 15일 춘천교육대에서 열리는 한말연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어(韓語)사 상대연대학 서설’이라는 공동논문을 발표한다.

3년간 양국 언어 비교연구
어휘 7천개이상 동일 어근 입증

한국어 [m], [b] 등 입술소리 일본어선 [h] 로 변화 현상 분석
‘상대연대’ 측정 도구 활용
“언어전달 방향은 대륙→한반도→일본” 주장
이 논문은 주요 어휘의 음운 비교를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지를 밝히는 ‘상대연대학’의 이론틀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어근이 같은 두 나라 어휘를 비교하면서 [m], [b] 등 한국어의 입술소리가 일본어에서 ‘음의 약화현상’에 따라 [h] 소리로 바뀌는 법칙성을 분석하고, 이런 음운 변화가 두 나라 언어의 ‘상대 연대’ 측정의 기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



박 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논문은 “포괄적이기보다는 특정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라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연구자가 난해한 언어학 개념을 빌려 설명하려는 내용은 간단하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3년 가을, 한글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이같은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아나타는 한국인>(정신세계사)이란 단행본도 함께 펴냈다. 이번 논문 발표는 그 연장선상이자 연구의 새로운 도약과 진전을 알리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언어의 유전자는 자음에 새겨져 있다.” 그 유전자 분석의 시료는 음운 비교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두 연구자는 지난 2002년부터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에 뛰어들었다. 이후 3년여 동안, 한·일의 고유어 어휘 7천개(파생어 포함) 이상이 같은 어근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예컨대 다발(a bundle)을 뜻하는 일본어는 ‘다바’다. 둘 다 한자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유어다. 두 어휘는 공통적으로 [d], [b]의 음운을 갖고 있다. 말의 뿌리가 같은 것이다. 박 강사는 “모음은 같은 나라의 방언에서도 서로 차이가 나지만, 자음은 유전자처럼 보존된다”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자음 비교를 통해 두 언어가 ‘체계적으로’ 닮아 있음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문제는 어느 쪽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가다. 박 강사는 “‘삯월세’가 ‘사글세’로 변하듯, 언어는 복잡한 형태에서 간단한 형태로 변화하는데, 같은 어근을 가진 어휘를 비교해보면, 한국어의 여러 자음이 일본어의 첫 자음에만 남는 현상이 무수히 많다”며 “언어학적 측면에서 일본-한반도-대륙이 아니라, 대륙-한반도-일본의 방향으로 언어가 전달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들은 일본어를 아예 ‘열도 한어’로 분류하고, 대륙한어-반도한어-열도한어를 아우르는 ‘한어사(韓語史)’ 연구를 주창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오늘날 쓰이는 일본어의 상당수가 기원전·후부터 7세기 말까지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허재영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본 학자들은 일본어가 알타이어(및 한국어)와는 독립적으로 형성됐으며, 오히려 일본어가 한국어에 영향을 줬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두 연구자는 이를 반박하는 강력한 논증을 하고 있으며, 이번 논문을 통해 그 분석 시스템을 보다 정교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세계가 인정하면 일본도 받아들이겠죠” 연구성과 일본 학계 반발 우려
9월 세계학회에 먼저 발표하기로
두 연구자가 처음 조우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박명미 강사는 일본 구마모토대 언어학과의 대학원생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연구에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시미즈 기요시 전 교수가 이 대학 언어학과에 부임했다. 시미즈 박사는 아프리카어 비교연구로 비엔나대 언어학과에서 18년 동안 재직한,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다.

두 연구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서로 익히며 두 언어의 비교연구 가능성을 모색했다. 결국 시미즈 전 교수는 지난 2002년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어-일본어 비교연구에만 몰입했고, 여기에 박 강사가 힘을 보탰다.


비 교언어학에 대한 탄탄한 방법론을 갖춘 두 연구자의 이런 ‘배경’은 그들의 연구가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박 강사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는 물론 알타이어 전체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비교언어학의 방법론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학문적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일간의 미묘한 관계는 이들의 연구가 결국은 맞닥뜨리게 될 장벽이기도 하다.

두 연구자의 논문은 아직 일본 비교언어학회 등에서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일본 학계의 반응이 조심스런 것이다.

박 강사는 <한겨레>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서는 비교언어학 자체가 활발하지 않다”며 “이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뿌리라는 학설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시미즈 전 교수의 명성과 권위조차 ‘일본어는 알타이어와 별개로 형성된 언어’라는 일본 학자들의 믿음을 쉽게 허물 수 없는 것이다.

두 연구자는 오는 9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국제학회를 통해 지난 3년여의 연구성과를 처음으로 세계 언어학계에 알린다. 박 강사는 “일본의 ‘신념’과 바로 맞서는 것보다는, 먼저 세계를 설득시키는 것이 지름길”이라며 “우리의 연구를 세계가 인정하면 그제서야 일본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계레 2005년 7월 9일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8&article_id=0000118237&section_id=103&menu_id=103


일본어는 한반도에서 사용하던 언어다


가타가나[片假名] 히라가나[平假名]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일본어가 한국어와 너무 비슷함에 놀랜 적이 있을 것이다. 2002년 4월초 일본 공영방송 NHK, 도쿄신문,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 신문 등 일본언론들은 ‘가타가나의 발상, 조선전래?’, ‘8세기 조선에서 가타가나?’, ‘日 가나 한반도 유래 확실’ 이라는 제목 하에 일본 히로시마대학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명예교수, 도야마대학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여 “한 자의 일부를 이용해 만들어진 가타가나는 일본에서 고안됐다고 여겨져 왔으나 한자를 생략한다는 발상이 한반도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자를 읽는 보조수단으로써의 가타가나의 원형이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신라 문헌에서 가타가나와 비슷한 문자가 발견된 것은 귀중한 사실” 이라며 충격적인 보도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KBS 역사스페셜팀은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여 ‘천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2002년 10월 12일 방영하였다.

각필의 대가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나가야마 야스오(長山靖生)는 그의 저술 <사람은 왜 역사를 위조하는가>에서 일본이 역사를 조작한 사실들을 파헤쳐 폭로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前수상이 재임 중에 “일본은 신의 나라다”라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여 세계를 경악하게 했듯이 나가야마씨는 이 책에서 일본이 신국(神國)으로 신앙하는 뿌리는 조작한 역사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역사조작 주범으로
1. 일본의 정사(正史)라는 '일본서기',
2. 저자 미상의 '일본은 고대부터 세계를 재패 했다', '예수는 일본에서 죽었다',
3. 황국사관 날조의 개척자인 4명 중의 대표격인 히라다 아쓰타네(平田篤胤)의 '상기(上記)',
4. 스에마쓰 겐쵸(末松謙澄)의 '칭기스칸은 일본인이었다' 등의 위서(僞書)를 꼽았다.
이중에서 히라다의 '상기'는 역사조작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은 수만 년 전부터 일왕이 통치한 신국이었다. 신(神)시대에 고유 문자가 있었으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일본문자 가나는 한자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神)시대의 문자를 응용한 것이다' 라는 것이 주 골자이다.




▲7세기초 불경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 쓰인 각필 구결문자 및 가타가나와 비교(일본NHK에 방송된 내용)


히라다가 이러한 내용을 발표하자 한반도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고자 간절히 바랬던 당시 정신나간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 역사 이래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국보 제1호'라 며 호들갑을 떨며 흥분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히라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증거를 요구하자 본래 없었던 것을 날조해 놓았으니 증거물을 내놓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궁여지책으로 불에 그을린 철판을 내놓았다고 한다. 학자들이 철판을 검증한 결과 그곳에는 히라다가 제멋대로 새겨 놓은 한문과 비슷한 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가짜임이 들통났다.


그 러나 오늘날 과학의 발달과 양심적인 학자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에 의거 일본어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도쿄대 문리과를 졸업하고 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로서 「각필문헌의 국어학적 연구」, 「각필이 안내하는 세계」 등 많은 저서가 있다. 그는 일본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은사상(恩賜賞)’과 ‘일본학사원상(日本學士院賞)’을 수상했으며 1961년 일본에서 최초로 각필 문헌을 찾아낸 각필연구의 권위자다.
(※ 角筆--옛날 뾰족하게 깎은 대나무나 상아로 만든 필기도구로써 종이를 눌러 쓴 것이기 때문에 肉眼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며 특수 제작된 적외선 스코프 또는 야간 촛불 등에 의거 확인 가능)

고바야시 교수도 연구 초기에는 일본문헌의 원문 한자 옆에 각필로 새겨진 훈점(訓点)이 한자 발음이나 번역 순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이는 일본의 독자적 발명이며, 이것이 점차 가나문자로 발전했다고 주장했었다.



▲성암고서박물관에 보관중인 고려대장경에서 발견된 각필 훈점(KBS역사스페셜)



그러나 그는 2000년 7월 서울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 ·고려 불경에서 일본에서 발견된 것 보다 년대가 앞선 점과 부호 등의 각필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리하여 고바야시 교수는 “일본의 가나가 한국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그리고 2000년 말에는 이러한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의 문헌에 각필로 새겨진 구결(口訣)이 일본 가나의 원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까지 펼치게 되었다. 마침내 일본 공영방송 NHK는 이러한 내용들을 메인 뉴스로 대서 특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자 당시 일본인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다.



▲고려대장경에서 발견된 각필로 눌러 찍은 훈점(글씨에 따라 점의 위치가 다르다)

그 동안 일본인들은 ‘역사조작’ 항에서 밝혔듯이 한반도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끝임없이 역사를 조작하여 왔다. 조작된 일본서기에서는 일본이 4세기 때 한반도를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신라.가야.백제 등을 지배했으며, 20세기 초에는 ‘명성황후시해사건’, ‘일한병합’에서 언급했듯이 일제가 한반도를 악랄하게 강제 침탈했음에도 한반도인들이 무지몽매하여 스스로 일본과 병합을 원했다고 주장하여 일본이 한반도보다 항상 우월하다는 역사를 강조하여 왔었다. 이러한 결과로 일본열도는 역사치매에 걸리게 되자 한반도인들을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악우(惡友)’로 비하하여 대리 만족을 느껴왔었다. 한반도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항상 업신여김과 멸시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바야시교수의 주장대로 일본이 이렇게 멸시의 대상이던 한반도로부터 말과 글을 차용했거나, 이 말과 글을 사용하던 한반도인들이 도래하여 일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면 이는 일본의 얼과 혼. 즉 일본의 모든 것이 한반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 그 자체인 것이었다. 즉 일본 우월주의는 일본열도가 침몰하는 것과 같은 깊은 상처를 입는 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둠의 저편에서

: http://blog.daum.net/ichny2000/5869879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옛 한반도 언어

일본어는 고대 야요이시대(BC400~AD300) 한반도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라 고 하와이대학의 허드슨(Mark J.Hudson) 교수는 단호히 말했다. 이에 대해 비교언어학의 권위자인 일본인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전 일본 구마모토(熊本)대학 교수와 한국인 박명미(朴明美)씨는 2003년 한글학회 창림 95돌 기념 연구발표대회에서 ‘한어 비교언어학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논문과 2004년 서울대에서 ‘한·일간 유전학·언어학·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재구성’이라는 논문, 2004년 9월 ‘아나타(당신)는 한국인’(정신세계사)이라는 단행본 발행을 통해 “일본어의 모어(母語) 즉.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고 규정했다.

시 미즈 전 일본 구마모토(熊本)대학 교수는 만주에서 출생했으며, 아프리카 언어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아프리카연구소에서 18년 동안 재직했다. 이후 그는 1994년 구마모토대 언어학과에 부임했다. 시미즈 교수는 일본어 뿌리 찾기에 매료되면서 2002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연구에 몰입했다. 박병미씨는 한.일간 언어비교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서울 출생으로 일본 규슈산업대.시모노세키시립대학 한국어 강사로서 원래 이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박 명미씨와 시미즈교수가 2002년 9월 공동 연구를 시작하며 세운 가설은 “일본어와 한국어는 자매 관계에 있으며, 양 언어가 거의 모두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는 것. 다시 말해 중국에서 차용한 한자어와 서양으로부터의 차용어를 제외한, 한국과 일본의 고유어가 거의 전부 같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들은 비교언어학적 연구결과를 역사학 및 고고학적 연구와 접목시켜 볼 때 한반도인이 청동기시대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고대국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어와 아프리카어가 같은 계통이고, 영어는 앵글로색슨족이 대륙에서 게르만어를 가지고 영국으로 이주한 것처럼 한민족 역시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언어도 고스란히 갖고 갔으며, 두 언어가 서기 500~600년까지 통역 없이도 서로 통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한국어를 반도한어(半島韓語), 일본어를 열도한어(列島韓語)로 각각 규정했다.

이들은 인간의 한 언어는 보통 약5만 어(語) 이상의 어근(語根)을 가지고 있는데, 한·일 두 언어의 음운이 대응하는 일상 생활과 밀접한 기초어휘 약 5,000 어나 찾아냈다면서 그 중 1500 개 어휘를 한글과 일본어를 로마자로 표기한 뒤 어근과 접사를 따로 구분하는 방식을 통해 어근의 유사성을 이 책에서 예로 제시했다.

이 를테면 반도한어의 ‘산길.물길’은 경상도 사투리‘산질.물질’로 발음하듯이 일본에서는 山路를 sanji로, 阿蘇路는 asoji, 淡路는 awaji로 발음한다. ‘이야기’의 사투리 ‘이바구’는 이와쿠(iwaku), 가마솥- 釜(kam―a), 가마-窯(kam-a), 사라지다(sar-)-사루(sar―u), 구두(gud-u)-靴(kut-u), 노루(noru)-노로(noro), 갓(gas)-가사(kas-a), 무리(mur-i)-무레(mur-e), 아가(aga)-아카(aka), 위.우에(ue)-우에(ue), 하나(1.hana)-하나(端 hana), 후리다(hur-I-)-후루(huru), 꾸리다(ggur-i)-야리구리(yari-kuri), 논(non)-노(no), 아가리.아구(ag-)-아고(ag-o), 다물다(dam-u-r)-다마루(dam-a-r-u), 오들오들(떨다)-오도오도(o-do-o-do), 터벅터벅-토보토보(tobo-tobo), 홀리다(hor-ri)-호레루(hor-eru), 시(댁)(si)-시우토(시아버지.si-uto) 시우토메(시어머니,si-uto-me), (버선)볼(bor-)-보로(bor-o), 대두(dai-du)-다이두(dai-du), 나물(na-mur)-나(na),무르다(mur-)-무레루(mur-er-u), 병-비잉(biN), 고리(짝)(gori)-고리(kori), 다발(dab-a-r)-다바(dab-a), 마루(maru)-마루(maru 넓은마당)……

두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성과는 반도한어와 열도한어 사이에는 어근뿐만 아니라, 음운.형태.문법 구조 등 그 무엇을 비교하더라도 조직이 같으며 역사적으로는 열도한어는 반도 고(古)한어의 글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전했다. 이 같은 성과는 한·일 양국의 언어학에 엄청난 혁명으로, 앞으로 양국 언어의 문법체계가 크게 달라질 것임은 물론, 한국어사전과 일본어사전도 영어나 독일어, 불어사전과 마찬가지로 어원이 실리고,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비교언어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두 학자는 주장했다. 이 확인 작업은 5만 어의 어휘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며, 인간의 디옥시리보헥산(DNA) 해독 작업에 시간이 걸렸듯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작업도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언 어를 통한 일본의 비밀을 밝힌 이들은 북규슈 지역에서 발굴되는 야요이인들의 인골 유전자(DNA)는 바로 현대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고대 일본열도는 한반도인들이 건설한 국가였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들의 이야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이들은 밝혔다. 한편 이들은 “이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고문서에서 발견된 각필

일본은 한반도의 후국(侯國)이다


1. 한일고대사를 연구하는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동경대학교 교수는 <한반도를 경유한 아시아대륙인>이라는 저서에서 “인류학적 시작에서 고찰해 보면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족(移住族)들과 일본 원주족(原住族)의 비율은 대략 85%대 15%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이주족들은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2.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절 도요토미가 만들어 놓은‘코무덤(鼻塚)'이 너무나도 잔인한 명칭에 고민하다가 ‘귀무덤(耳塚)'이라 조작 시켰던 당대의 최고의 학자였던 하야시 라산(林羅山)은 '천손(天孫)들은 모두 대륙(한반도)에서 건너 온 인물이다' 라고 주장했으며

3. 前 동경대학교 명예교수였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일 본의 고대국가를 건설한 천황족(天皇族)은 대륙 및 한반도 방면으로부터 4~5세기에 일본 열도로 정복해 들어간 기마민족(騎馬民族)이다. 특히 미마키(美麻紀) 라는 별명을 가진 10대 스진왕(崇神王)은 가야에서 건너 온 황족이 틀림없으며 미마키란 스진왕이 살았던 옛궁성의 이름인데 미마나(任那)를 일본 발음으로 미마키(みまき)라고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에가미 교수는 “일본서기의 강림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들이 일본땅 이즈모와 규슈에 내려와 원주민인 땅의 신들을 무찌르고 지배하였다’에서 하늘의 신들이란 임나(가야)에서 건너온 사람들 즉 임금의 땅에서 건너온 황족사람이다”라고 말했다.

4. 고대 한일관계사의 권위자인 우에다 마사키(上田正昭) 교토대 명예교수의 제자이면서, 2004년 현재 교토시 역사박물관장과 교토산업대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한일관계사의 권위자인 이노우에 미쓰오(井上滿郞)씨는 “2004년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된 금제 귀고리와 장신구 같은 유물들은 일본 나라(奈良)의 후지노키(藤ノ木)고분 출토 유물과 아주 흡사하다. 이것은 교토를 중심으로 한 일본 고대문화의 원천이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들에게서 비롯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교 토가 1천년 동안 일본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반도의 선진 문화에 있었다. 일본고대 문헌에 기록된 하타씨(秦氏)는 도래인들로서 교토 서쪽 가도노가와(葛野川) 일대에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타씨가 씨족사찰로 만든 것이 고류지(廣隆寺)이다”라고 말했다.
(광융사에는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복사판이라는 일본국보 제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이 안내책자에는 ‘재목(材木)은 적송(赤松)이고 제작은 아스카시대이지만 그 시대의 조작 기술로 어떻게 이처럼 인간적이고 또 인간의 순화(純化)된 모습이 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었을까’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외 수많은 일본학자들의 이러한 견해는 ‘역사조작-칠지도’와 ‘일본선조’에서 밝혔듯이 7세기까지 고대 일본열도는 명확한 국가 명칭이 없는, 가야와 백제의 후국이였다. 그러나 백제인들은 663년 나당연합군에 의거 멸망하자 대거 일본열도로 건너갔다. 이들은 670년경 국가 명칭을 ‘일본’으로 개칭하고 통일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문자와 언어는 고대 한국인들이 사용한 문자와 언어였음을 밝히는 중요한 사항들이다.


▲일본대반야경에서 발견된 각필 불상과 감옥에서 보낸 비밀문서의 각필


http://blog.daum.net/kimpoli/10088436



1,모찌[もち]의

고어는 =[もちひ]->[もち-い ]의 음운변이

우리말중에 남아 있는 화석어[떡의 어원]

모태 [명사]1 안반에 놓고 한 번에 칠 만한 떡 덩이.
2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안반에
놓고 한 번에 칠 만한 분량의 떡 덩이를
세는 단위.
[몯+히]->[모지히->모지이->모찌]
[몯+히]->[모디히->모티->모태]

평안도 찹쌀의 방언은 [뭇찹쌀]인데 여기서 [뭇]의 어원은 떡의 어원이며, 이는 평안도에 살던 부족이 일본으로

건너간 흔적이다.


2, 대야 [명사]물을 담아서 얼굴이나 손발 따위를

씻을 때 쓰는 둥글넓적한 그릇.

【<다야≪훈민정음(해례본)(1446)≫】


다라이 [(일본어)tarai[盥]] [명사]금속이나 경질 비닐
따위로 만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그릇. ‘대야’, ‘큰 대야’, ‘함지’, ‘함지박’으로
순화.
우리고어 고려초 손목이 지은 계림유사11c에는
[盂曰大耶][대야]로 표기되어 있고 훈민정음 해례용자 에는 [다야]로 표기 훈몽자회에도 [다야]로 표기

일본어는 우리 조어 다라가 건너갔습니다.달의 뜻은 딜[土]입니다. 언어변이를 추정하면 bc 3~4c로 야요이인들이 한반도에서 살다가 북방의 철기문명의 부족들이 내려와 쫒기어 도일할때 말만 건너가 간것이 아니고 사람째 건너갔습니다
강원 지방의 방언 [다래]는 일본어가 아니고 우리고어 입니다

[다라이->다래]<강원방언>

우리말도 연구 안하고 비슷하면 일본어 잔재로 치부

표준국어대사전에 [대야]로 순화한다나?


일본 이와나미 고어사전에는 [데;手]+[아라이;洗]

=>[데아라이->데라이->다라이]어원을 설명했음.


뗑깡(てんかん) : 생떼, 투정

' 뗑깡부리다'라는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 '뗑깡'은 일본어에서 한자로 '전간(てんかん)'이라고 쓰며 간질병, 지랄병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억지부리거나 생떼쓰는 의미로 혹은 어린이가 심하게 투정을 부리는 뜻으로 쓰입니다. 상황에 따라 생떼, 억지,투정, 행패 등 적당한 말로 바꿔써야겠습니다.
활용된 예문

ex. '피곤하니깐, 뗑깡 좀 그만 부려라!'(X) ->

'투정생떼 좀 그만 부려라!'(0)


우리말 생떼, 투정에 해당하는 말

떼 부리다

[명사] =깡다구의 약자.

[떼+깡]->[떼ㄴ깡->뗑깡]의 합성어인데 일본어좀 했다는 사람들이 발음이 비슷한말로 일본어라고 주장한다


[미칠 전;癲]+[경풍 간;癎]을 발음할때 [뗑깡]이다.

사용하는 말부터 틀리고 어원이 다르다.



http://ussu84.tistory.com/entry/%EC%95%84%EB%AC%B4%EB%A6%AC-%EB%8B%A4%EB%A5%B4%EB%8B%A4%EC%BC%80%EB%8F%84%E2%80%A6-%EC%9D%BC%EB%B3%B8%EC%96%B4%EB%8A%94-%ED%95%9C%EA%B5%AD%EC%96%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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