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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pril 28, 2012

백제인이 지켜낸 통일 신라



 역 사 교과서에는 백제가 멸망한 해가 660년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678년이나 존속해 온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할 수는 없다. 660년은 당과 신라 연합군이 백제의 서울인 사비성을 함락하고 의자왕의 항복을 받은 것일 뿐이고, 백제라는 거인이 완전히 쓰러지기 위해서는 시일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660년 이후에도 백제 지역 곳곳에서 저항군이 출몰하여 672년까지 저항이 지속된다.
 당 의 사령관 소정방은 백제의 서울을 점령하고 의자왕과 왕족, 신하, 백성 만여 명을 포로로 데리고 당으로 돌아가서는 고종에게 보고를 마치고 바로 이듬해 고구려 침공에 나선다. 애초부터 백제 공격은 고구려 공격이 여의치 않자 신라의 청을 받아들여 실행한 것이었고, 당의 원래 목적은 고구려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 잔존 세력과의 전쟁은 대부분 신라 몫이 되어 버렸으므로 오히려 백제 서울을 공략할 때보다 신라로서는 더욱 상황이 어려워졌다.

 당 과 신라의 군대가 사비성을 에워싸자 백제 왕실 내부에는 항복할 것이냐 저항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극심했다. 결국 이도저도 결정할 수 없었던 의자왕은 태자 효를 데리고 야밤에 부근의 웅진성으로 도주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왕의 지라가 공석이 되자 왕자 융이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한다. 닷새 후에는 의자왕도 태자를 데리고 와서 항복을 하는데 이로써 일단 백제 왕조는 망하게 된다.
 그 러나 열흘 후에 열린 백제 정복 축하연에서 의자왕과 왕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당과 신라의 장군들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그 순간에 이미 백제 곳곳에서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각지에서 분산적으로 저항이 일어나다가 점차 임존성을 장악한 백제 무왕의 조카 부여복신을 중심으로 하여 본격적인 백제 부흥 전쟁이 시작된다. 복신은 왜국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이 돌아오자 그를 왕으로 옹립하고 각지의 의용군을 받아들여 위세를 떨친다. 웅진에 있던 당나라 군은 서신을 보내 회유하려 하지만, 이미 백제는 거의 다시 선 것이나 다름없는 형세이니 타협할 리 없다. 사실 이 무렵의 백제는 제사까지 다시 지낼 정도로 정상적인 정치 일정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에 있었다.

 하 지만 참된 적은 내부에 있는 법, 처음부터 기미를 보이던 풍과 복신 사이의 알력이 날로 커 간다. 풍은 비록 왕위에 있었지만 실제 군의 지휘관은 복신이었으므로 허울뿐인 왕이었다. 풍의 주변에서는 실제 권력을 잡으라고 권하고, 복신의 주변에서는 왕이 되라고 권하는 상황이다. 주변을 과감하게 뿌리친 복신과는 달리 풍은 간신배들의 말을 받아들여 마침내 음모를 꾸며 복신을 죽이게 된다. 유능한 지휘관이 죽었으니 군은 분열되고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백제 부흥군은 결국 백강 전투에서 대패하여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백제를 멸망케 하는 전투인데, 서사적인 서술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삼국사기>에서도 이 전투의 처절한 광경을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붉게 하고 바닷물도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로써 중심 세력이 무너진 백제 부흥 운동은 이후에 지수신과 흑치상지가 수만의 병력을 모아 다시 일어서지만, 흑치상지는 당이 웅진 도독으로 파견한 왕자 부여융에게 투항해 버리고, 지수신 세력만이 남아 끝까지 항거하다가 진압되고 만다. 정복국의 이전 왕을 도독으로 삼아 보내는 것은 적정을 분열하기 위한 당의 고도한 책략이다. 고구려가 망한 뒤에도 부흥 운동이 일어나자 당은 고구려의 보장왕을 요동주 도독, '조선왕'으로 삼아 고구려에 돌려 보낸 일이 있고, 문무왕이 당의 허락 없이 출병하여 백제의 고지를 점령하자 당 고종은 당에 가 있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봉하여 신라로 보낸 일도 있다(당은 황제를 칭하는 나라였으므로 속국에는 왕이라는 작위를 주었다.).
 그 이후에도 백제 부흥 운동은 백제 각지에서 계속되었지만, 산발적이었고 한덩어리로 뭉치지 못했다. 그리고 672년 신라와 당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신라에 포섭되어 부흥 운동은 완전 소멸하다.

 그 런데 한 가지 흥므로운 일은 당과 신라의 태도 변화다. 당은 원래 신라의 청병을 받아들이면서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준다는 밀약을 맺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신라는 당이 백제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자 긴장한다. 더구나 당은 웅진도독부의 초대 도독 왕문도가 병으로 죽자 백제 의자왕의 왕자인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해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부여풍의 세력을 평정하고 나서 2년 후인 665년 당의 칙사 유인궤와 백제측의 부여융, 신라의 문무왕 이렇게 셋은 웅진의 취리산에서 백마를 잡고 제문을 묻어 화친을 맹세하는 의식을 올린다. 이미 망한 나라인 백제를 굳이 하데 끼워 제사를 지내는 데서 당의 의도는 확실해진다. 백제의 옛 땅에는 웅진도독부를 두어 확실히 속국화하고, 신라는 김춘추가 병력을 청한 이후로 속국을 자처했으므로 양국을 병립시켜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이다. 예전에는 백제와 신라가 독립국으로 분열해 있던 것을 이제 당의 휘하에 속한 두 '지방'으로 만들었으니 당의 의도는 관철되었지만, 신라는 물론 불만이다.

 당 장은 고구려 정벌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꾹 참았던 문무왕은 고구려가 멸망하자 이듬해(669)부터 백제의 영토와 백성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고, 그때마다 당은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이 잇따른다. 671년에는 급기야 당과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내 백제 부흥 운동 세력은 당과 신라 양측으로 분열하기 시작한다. 일부 옛 백제의 왕족은 당으로 붙었으나 주요 부분은 신라측과 규합한다. 이윽고 당은 부여융을 웅진 도독 대방군왕이라고 불렀으므로 융을 백제왕으로 봉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무렵에는 이미 백제 유민의 협조를 얻어 신라가 백제 옛 땅을 장악하고 있었다.융은 당에게서는 왕으로 봉해졌으면서도 막상 다스릴 땅은 신라가 장악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고구려의 옛 땅으로 도망 간다. 당의 측천무후는 융의 손자를 보내 이름만의 왕위를 잇게 하는 등 속국 백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만 약 백제 부흥 운동이 없었더라면, 당은 백제의 옛 땅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므로 신라는 '삼국 통일'은 커녕 제 몸 보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통일 신라'가 당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어느 정도 독립적인 속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건 백제 부흥 운동의 덕분이 컸다.

Sunday, April 22, 2012

italians have the highest testosterone level of all races

After applying sampling weights and adjusting for age, percent body fat, alcohol, smoking, and activity, testosterone concentrations were not different between blacks[AFRICAN-AMERICANS] (n = 363; geometric mean, 5.29 ng/ml) and non-latin whites [WHITE AMERICANS](n = 674; 5.11 ng/ml; P > 0.05) but were higher in Italians (n = 376; 5.48 ng/ml; P &lt

일본도가 유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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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어쨰서 일본도는 유명하고 중국의창술은 유명하지않는걸까? 창vs검하면
      
  




창vs검 싸우면 창이 우세하고
역사적인 전투를봐도 창이 거의다 이겼으며
삼국지나 중국의 무협지를봐도 장수들 죄다 창다루던데
중국의 창술은 유명하지않고 무시당한다
반면 일본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함
전설적인 일본의 어떤 무사도 검은 창을 이길수없다라 말했다
좁은공간이 아니고서야 창이 이기지
  


2012-04-23 0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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싴빠..   
너무 우월한 무기라 크게 배울 필요가 없었거든.|211.177.***.***
        2012.04.23 01:05   
ㅋㅋㅋㅋ   
일본의 카타나가 유명한 이유는 첫번째로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무기로 인식되는 무기는 카타나 밖에 없음. 두번째는 카타나를 만드는 장인들은 대장간에서 쇠를 두들기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심 깊은 신자임. 이것도 세계 유일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역시 카타나를 사용하는 사무라이들이지. 죽음앞에 초연한 사무라이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영혼을 가진 카타나... 이런 것만 봐도 카타나가 유명할 수 밖에 없다.|211.104.***.***
        2012.04.23 01:07   
ㅋㅋㅋㅋ   
그리고 창이라고 하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에 사용법도 비슷함. 게다가 칼에 빗대어 우수한건 당연한거고. 그래서 유명세를 거의 못탄다.|211.104.***.***
        2012.04.23 01:08   
ㅂㅂ   
무술은 칼을 들던 창을 들던 잘하는 놈이 이긴다 창이 이긴다 라고 하는 건 바보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집단 전투에서 보병은 창병이 기본 병종이다|112.146.***.***

황인종의 외모 탄생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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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황인종이라 저주스러운가? 황인종의 탄생배경을 알려주겠다
       
   




황인종이 탄생하는곳을 보면 알래스카,러시아 북부 여튼 굉장히 추운곳이다

그 당시 빙하기까지 있어서 연평균기온이 -40도라고 한다

극한의 추위라고 할수있지



황인종들의 특성은 얼굴이 평면적이고 단두형이 많다

기후가 굉장히 추우면 골격은 단두형으로 변한다

이를테면 러시아북부나 북유럽쪽에서도 오지인곳 이런데 사는 원주민들도

백인이지만 단두형이 많다


빙하기에 추운 몽골땅에서 만년동안 추위에 적응하느라
얼굴은 체온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굴곡을 최소화한 평평한 모양으로 변했으며

좆이 얼어서 떨어져나가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위해 크기가 축소되어버렸다
눈크기도 마찬가지로 눈알이 얼어붙는것을 막기위해 작아진거고

또한 얼어붙은 고기를 뜯어먹다보니 턱과 광대뼈가 비대해졌지
코는 몸과 바깥체온의 온도차가 클수록 높아져야하지만 이 경우
극심한추위로인해 앨런의 법칙으로 코가 오히려 평평해지고 낮아졌다

그리고 동양인 몸엔 왜 털이없냐면
추우면 털이 많은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황인종이 적응했던 환경에는 오히려 털 많은게 체온유지에 불리하다해서
털이 없어진거라고 한다

   


2012-04-23 0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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싴빠..    
저주 하라는 이야기냐??|211.177.***.***
        2012.04.2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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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지뢰를 밟지말았어야했다
        2012.04.23 00:56    
    

일본이 미국보다 시급이 높다.




10시간 일해서 벌 수 있는 돈, 한국 5만원 일본 15만원 '비교돼'


TV리포트 장민석 기자] 정해진 시간을 기준으로 나라별 시급을 비교한 게시물이 화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10시간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중국 대만 미국 일본 캐나다의 지폐 앞뒷면 사진이 올라왔다.

게 시물에 따르면, 한국은 10시간 일해서 5만 원, 중국은 100위안(1만8000원), 대만은 1000원(3만7000원), 미국은 100달러(11만5000원), 일본은 1만 엔(15만 원), 캐나다는 100달러(11만3000원)를 각각 벌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게시물을 접한 네티즌들은 "일본이 미국과 캐나다보다 시급이 높다니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 4개월 정도 일하면 한국에서 1년 정도 일한 돈을 벌 수 있는 건가?" "한국 시급이 저렇게 낫다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10시간 일해서 벌 수 있는 돈

장민석 뉴스팀
newsteam@tvreport.co.kr



그러하다

Mediterranean Men Have Higher Testosterone Levels

Mediterranean Men Have Higher Testosterone Levels Postby Bruno » Mon Jun 28, 2004 9:57 am Study confirms that Mediterranean men tend to have higher testosterone levels than American (Anglo) Men. "Dr. Demers and his colleagues have found evidence that testosterone levels and androgen precursor steroids may vary among different ethnic populations." "A study of Portuguese, American, and Asian men, for example, revealed that the average testosterone level in the Portuguese subjects was ~ 500, in Americans, ~ 450, and in the Asian population, ~ 400." "Larger differences were observed with the androgen precursor steroids like DHEA. Asian men generally have less facial and body hair than Americans, who generally have less than the Portuguese." http://www.arvadahealth.org/health_dept ... cfm?id=957 Bruno !! http://www.brazzilforum.com/viewtopic.php?t=10329

Sunday, April 15, 2012

고지혈증은 육류나 달걀 노른자, 생선 알과 새우 등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걸릴 수 있습니다.

[앵커멘트]

우리나라 고지혈증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서구화된 식습관에다 남자의 경우는 특히 음주가, 여자의 경우는 밤에 먹는 야식이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김호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고지혈증은 혈액 속에 지방 성분이 높아 혈관벽에 쌓여 염증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킵니다.

일반적으로 총 콜레스테롤이 240mg/㎗을 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60대 여성은 5년 전부터 이런 고지혈증을 앓아왔습니다.

[인터뷰:고석임, 고지혈증 환자]
"처음에 숨이 차면서 가슴이 뻐근해요. 그래서 막 가슴을 제가 두드리죠. 그러면 한 2분 정도면 또 괜찮아져요."

고지혈증은 육류나 달걀 노른자, 생선 알과 새우 등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걸릴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생성된 칼로리가 우리 몸에서 제때 소비되지 않을 경우 발병합니다.

비만이나 유전적 요인, 음주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런 고지혈증 환자가 꾸준히 증가해 이미 전체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2006년 54만 명이었던 진료 환자 수는 2010년 105만 명으로 늘어나 연평균 18.1%씩 증가했습니다.

[인터뷰:박철영,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남자 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 원인이 음주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고요, 여성 같은 경우는 밤시간에 먹는 여러 가지 간식, 과일 같은 것들이 고지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고지혈증은 동맥경화나 뇌졸중, 심장혈관이 막히는 질환 등의 위험한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평소 증세가 없더라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혈액검사를 통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식단을 짜고 적당한 운동으로 체형을 관리하는 것이 좋은 예방법입니다.


http://www.ytn.co.kr/_ln/0105_201204151245410988

Saturday, April 7, 2012

Germanic is not Europe

have to be more intelligent, now we call it europe, but hundreds of years ago it was not known as europe, people didnt even know there were more contin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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