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백미러로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검은 연기와 함께 붉은 불기둥들이 사방에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그 거리에서는 광분한 폭도의 폭력과 약탈, 그리고 방화가 시작된다.
성난 폭도들은 이내 사우스 센트럴 지역을 초토화시킨 뒤, 코리아타운이 있는 북으로, 북으로 물 밀듯 밀어 닥쳐오지만...
공권력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내팽개쳐진, 한인들이 힘들게 가꾸어온 코리아타운은 폭도들의 약탈로 인해 삽시간에 공포의 도시로 변해버리고 만다.
경찰의 지원을 포기한 비통함과 분노에 찬 한인들이 그제서야 스스로 총을 들고 나서 목숨을 건 방어전을 펼치기 시작하고...
LA 출신인 기자는 그 참담했던 당시의 장면들을 좀처럼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약탈과 방화, 폭력이 난무하던 4.29 LA폭동...
그 악몽같은 사흘간에 무려 2200여개의 한인업소가 피해를 입었고, 그 손실은 4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11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기자가 LA폭동을 떠올리면 가슴이 갑갑해지는 이유는 결코 당시 우리가 당했던 물질적, 정신적
피해때문만은 아니다.
그 갑갑함의 원인은 아직도 LA 폭동의 원인과 책임을 한인과 흑인간의 인종갈등의 결과라고 믿고 있는(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미주류사회의 어처구니 없는 태도 때문이다.
백인경찰관들이 작당,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잔인하게 집단구타하고, 또 대부분 백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무죄판결을 내림으로써 야기된 4·29 폭동...
하지만 폭동이 불붙기 무섭게 미주류 언론들은 ‘한·흑 인종갈등’이라는 단어를 앞 다투어 기사의 ‘헤드’로 올렸고, 메이저
방송사들은 1년이나 지난 두순자씨 사건을 끄집어 내 거듭 방영하는 등, 마치 LA폭동의 책임을 전적으로 한·흑간의 문제로 몰고
가려 했다.
(두순자씨 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커보이는 흑인소녀가 두순자씨를 기절할 정도로 폭행하는 상황은 빼버리고, 15세라는 그녀의 나이와 또 그녀가 총격을 당하는 장면만을 부각시킨 점은 그러한 의심에 더욱 굳은 심증을 가게 했다 )
물론, 한인과 흑인간의 갈등은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흑이란 인종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한인이든, 중국인이든, 유태인이든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상인과 그렇지 않은
소비자간의 갈등은 이민사회인 미국에서는 쉽게 피해 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낮선 땅에서 물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이민자 한인 1세들의 처지와 또 그들이 흑인우범지역에까지
들어가 펼쳐야만 했던 피나는 생존의 노력과 방법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선 그 누구도 함부로 ‘한인상인들만이 인종차별적이니,
돈만 밝히느니 어쩌니’ 하고 말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백인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야기된 1965년의 LA 왓츠폭동의 최대피해자가 인근에서 상점을 경영하던 유태인이었던 것처럼,
한인상인도 그저 잘못된 타이밍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기에 최대피해자가 된 것이지 결코 그 원인제공자라서 최대피해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한인들은 사우스 센트럴 지역의 주류판매점과 식품점 610개를 소유하고 있어 ‘거의 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한인점유율이 높았다)
미국 역사책을 대강이라도 한번 훑어본 사람이라면 이제까지 발생했던 흑인들의 폭동은 모두 미국정부와 사회의 흑인들에 대한
오랜 인종차별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피해자인 한인들은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한.흑간에 잠재된 갈등원인을 해소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보이고 있는 반면, 당시 폭동의 불길이 인근 백인주택가로 번지지 않도록
코리아타운을 방화벽 삼아 바리게이트만 치고 있었던 그들은 아직도 그 책임에 관한 솔직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 듯 보인다.
4월 29일은 미국에 사는 모든 한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미국이라는 사회속에서 우리의 정확한 처지와,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이라는 대명제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4월 29일...
그날이 오면 기자는 “너희들이 잘 해주었으면 왜 불 지르고 약탈했겠는냐”고 되묻는 듯 하던 적반하장격의 미주류언론과 불타버린 가게앞에서 딸아이를 끌어 안은 채, 목놓아 통곡하던 어느 가엾은 이민자 모녀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하지만 미주한인 100년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도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코앞에 다가왔건만 어째 북가주 한인사회는 기자의 마음과는 달리 3.1절보다도 더 조용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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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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