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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10, 2012

카르타고-페니키아와 로마의 도시

카르타고는 역사상 두 번이나 세계 최대의 도시였는데 매번 서양 세계에서는 위협으로 간주됬다.처음엔 성장하는 로마에, 5세기뒤에는  기번의 잘못된 견해에 따르면 쇠락하는 로마 세계가 가슴에 끌어안은 종교에 위협적이었다.
첫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 티레의 이주민이 창건했다 하므로 로마보다 오래됬다.문화적으론 동부 지중해와 북아프라카 영향을 받았고 주민은 페니키아어를 썼다.
지 중해 동서부의 길목에 위한 덕에 통상 중심지로 떠올라 서쪽 바다의 무역을 관할했다.기원전 3세기에는 성장하는 로마에 위협을 느낀 카르타고는 바르카스 가문의 지휘 아래 에스파냐에 영토를 넓혔고 그곳에서 새로운 카르타고인 카르타 헤나(노바 카르타고)를 기반으로 한니발이 일어나 로마와 패권을 놓고 겨룬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는 패배했고 결국 3차 포에니 전쟁으로 기원전 146년 로마와의 200년 전쟁끝에 카르타고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두 번째 카르타고는 아우구스투스의 명으로 세운 콜로니아 콘코르디아 카르타지나인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4권에 나오는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를 찬양하기위해 창건했다.첫 카르타고 터에 자리 잡았지만 그 카르타고가 파괴된지 한 세기 이상 지났기에 전혀 다른 도시라 할수있는데, 두 도시는 뚜렷한 문화적 연속성을 보였다.
기원후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는 카엘레스티스 숭배가 용인되고 인기를 끄는 것에 분노했다.이는 도시가 겉으로는 로마의 카르타고지만 속으론 전통을 계승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튀니스 만에 산뜻하게 자리 잡은 위치는 논외로 치더라도 두 카르타고는 흥미로운 개념적 유사성을 보여준다.
둘 다 선진적 계획도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시가지는 직사각형 블록의 격자형 구조인데, 페니키아의 카르타고는 비르사언덕의 아크로 폴리스를 중심으로 방사형을 이뤘지만 로마의 계획은 좀더 극단적이다.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도시 전체를 하나의 격자 모양으로 구성했다.
400여년이 지난 후에도 전과 똑같은 블록의 크기와 배열을 고집했고 건물의 줄이 틀리면 바로잡았다.4세기에 편찬된 세계 지리서 아노니미 오르비스 데스크리프티오를 보면 당시 질서정연한 도시계획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수있다.
추 상적 계획에 대한 사랑은 페니키아 도시의 해군 공창에서도 드러난다.이곳은 평탄한 해안을 원형으로 파서 만든 내항으로, 한가운데 섬을 중심으로 동심원적 구조를 이룬다.아이네이스에서도 항구를 찬양하는데, 여기서 비롯된 코톤이란 명칭은, 땅을 파 만든 항구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됬다.
트라야누스황제가 로마제국의 황구 포르투스에 조성한 육갹형 항만도 이곳을 본땄다.
카 르타고인에 관한 우호적인 문헌은 벌려 옶다.푸니카 피데스는 이전 카르타고인의 잔인한 종교도 혐오했다.이렇게 다른 민족의 종교 관습에 격분하는 것은 훗날 그리스도교 작가들이 로마의 후예에 대해 취한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사라진 도시를 처음 발견한 엘 베크리는 11세기에 이렇게 썻다.
"카르타고에 가서 열심히 일상생활을 영위하다 보면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것을 매일 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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