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이동이 많은 필자는 운전할 때 졸음을 쫓으려고 오징어와 껌을 애용한다. 질겅질겅 씹다보면 잠도 달아나고 달달한 맛도 좋다. 하지만 너무 오래 씹으면 턱이 아프다. 이러다 턱 모양까지 변하는 건 아닌가 싶다. 과연 턱은 먹는 음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얼마 전에 필자의 궁금증에 답을 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저널 <피지컬
앤쓰로폴로지> 6월호에 따르면 1600년대까지 같은 곳에 살다가 그 이후 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음식을 섭취해 살아온 두
부족은 턱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형됐다. 알래스카로 이주한 부족은 딱딱하고 건조한 고기류를 많이 먹었다. 반면 미국 다코타
지역의 평야로 이동한 부족은 농사를 지어 먹었다. 두 부족의 턱뼈는 본격적으로 음식을 씹기 전인 유년기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딱딱한 음식을 찢고 씹어온 부족의 턱뼈가 부드러운 음식을 먹은 부족에 비해 훨씬 넓어져 있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기계적인 충격이 턱의 표면과 내부에 변화를 준 것이다. 이처럼 턱은 유전적인 영향보다 섭취하는 음식과 사용방법에
따라 더 크게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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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턱. <출처: (CC)Gregory F. Maxwell at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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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과 먹이 다양성의 상관관계
턱이 분리되지 않아 입을 크게 벌릴 수 없는 상어는 대신 단단한 턱으로 먹이를 덮쳐서 사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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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음식을 먹어 왔기에 지금과 같은 턱을 갖게 된 것일까. 같은 수중 대형동물인데 왜 상어는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을 갖고 수염고래는 이빨대신 긴 수염으로 물고기를 걸러 먹는 것일까.
턱이 없는 인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상은 가정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가정은 척추동물의 진화 방향을 역행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만일 턱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금 모습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은 턱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처럼 다양하게 분화돼 발생할 수 있었다.
턱의 발생 과정은 먹이 섭취 방식과 관계가 깊다. 초기 척추동물에는 턱이 없었다. 유악어류(턱이
있는 어류)가 생겨난 가장 큰 이유는 먹이를 좀 더 빨리, 많이 섭취하기 위해서다. 턱이 없는 어류는 입으로 물을 빨아들인 뒤 이
안에 들어 있는 먹이를 걸러 먹었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다른 무척추동물보다 훨씬 더 빠르면서도 많은 먹이를 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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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턱이 생기면서 동물은 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딱딱한 껍질로 덮인 먹이도 이빨로 깨거나 빻아 먹을 수도 있고, 먹이를 움켜잡고 찢을 수도 있게 됐다. 이때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이 이빨이다.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와 달리 포유류는
새로운 먹이를 섭취하면서 턱에 있는 위치와 하는 일에 따라 이빨이 여러 가지 종류로 분화했다. 이런 형태를 ‘이형치아’라고
한다. 이형치아는 턱 앞쪽에서부터 앞니, 송곳니, 앞어금니, 어금니의 순서로 돼 있다. 육식을 주로 하는 동물은 송곳니가 매우
발달했다. 이와 반대로 초식동물인 말은 송곳니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송곳니가 있던 공간은 턱으로 변했고 대신 풀을
갈아서 잘게 부수는 앞어금니와 어금니가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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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는 새로운 먹이를 섭취하면서 턱에 있는 위치와 하는 일에 따라 이빨이 여러 가지 종류로 분화했다.
고막의 진화, 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턱이 생기면서 나타난 변화는 단지 먹이의 다양화만이 아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번식을 위한 교미, 새끼나 알을 돌보기 위한 행동, 그리고 집을 짓기 위한 재료를 운반할 때에도 턱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조류의 부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조류의 부리는 위턱과 아래턱이 모두 특수하게 변한 형태로 환경에 따라 적응해 왔다. 독수리 같은 육식성 조류는 먹잇감을 사냥하고 살점을 잘 찢어내기 위해 날카롭고 강력한 부리를 갖는다. 뉴질랜드에서 사는 키위는 바닥에 있는 흙과 잎사귀를 뒤적이기에 적합하다. 창과 같은 튼튼한 부리를 가진 왜가리는 물속에 있는 작은 물고기를 잘 잡는다.
놀랍게도 턱은 듣는 도구로도 사용됐다. 파충류는 턱을 땅에 대고 땅의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해
자신에게 닥쳐올 위협을 예상했다. 중생대는 공룡의 시대였다. 당시 살았던 포유동물은 아주 작은 크기에 불과해 존재가치를 거의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비했다. 당시의 포유동물들은 주로 야행성이었는데, 육식공룡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느라 항상 불안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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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같은 튼튼한 부리를 가진 왜가리는 물속에 있는 작은 물고기를 잘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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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포유동물은 다른 동물과 다른 방법으로 청각을 발달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턱으로 땅의 흔들림을 감지하던 형태에서 공기로 전달되는 소리를 듣는 방식이다. 이것이 ‘ 고막(tympanic membrane)’이다. 고막의 등장은 턱의 발전과 함께 이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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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이 발달하는 과정.
목뼈가 턱뼈로
무악어류가 유악어류로 진화하는 과정. 인두에 있는 새궁 중 첫 번째 새궁은 두개골의 일부, 두 번째 새궁의 위쪽은 위턱, 아래쪽은 아래턱이 됐다. 세 번째 새궁은 두개골과 아래턱의 일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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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턱은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을까. 역사상 가장 원시적인 척추동물은 무악어류다. 무악어류는 말 그대로 턱이 없는 종류로서 흔히 ‘ 갑주어’라고 부른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후기와 오르도비스기 초기에 걸쳐서 해양에 정착했으며 고생대 데본기에는 북미, 유럽의 담수와 해수에 널리 분포했다. 그러다 데본기 이후 모두 사라져 현재는 원구류라고 불리는 입이 둥근 무악어류만이 남아있다.
칠성장어와 먹장어는 갑주어인 야모이티우스(Jamoytius)의 직계 혈통이다. 칠성장어는 생물체의 유기물 조각이나 죽은 동물을 주로 먹는다. 많은 학자들은 무악어류가 근육성 인대로 물을 빨아들인 뒤 그 안에 들어 있는 먹이를 걸러 먹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과섭식).
턱이 있는 유악어류는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등장했다. 많은 학자들은 원시동물의 여과섭식과 호흡을 담당하던 인두의
새궁이 턱으로 변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새궁은 인두의 양 옆에 한 쌍씩, 9쌍이 있으며 뾰족한 부분이 뒤쪽을 향한 V자
구조로 돼 있다. 이 중 앞에 1, 2, 3번이 변형되고 합쳐지면서 턱으로 변했다. 첫 번째 새궁은 두개골의 일부, 두 번째
새궁의 위쪽은 위턱(palatoquadrate bone), 아래쪽은 아래턱(mandible)이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세 번째
새궁은 두개골과 아래턱의 일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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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단계 화석 발견
많은 학자들이 이런 가설을 지지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추측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이런 변화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점진적인 진화로 이뤄진 것인지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8월 17일 <네이처>에 이를 증명하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실렸다. 중국에서 발견된 한 어류 화석이 무악어류에서
유악어류로 진화하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슈유 제지안겐시스(Shuyu zhejiangensis)라고 이름 붙은 이
4억 년 전 어류는 형태학적으로는 무악어류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두개골 앞쪽에 한 쌍의 후각기관(nasal
organs)이 나 있다. 이는 두개골 가운데에 한 개의 콧구멍(nostil)이 있는 무악어류와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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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있는 동물에게 이 한 쌍의 후각기관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배가 성체가 되는
과정에서 장차 턱으로 발전할 줄기세포가 뇌 뒤쪽에서 앞쪽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 발생 과정에서 두개골 한 가운데에
비공이 한 개 있는 무악어류는 줄기세포가 이 공간에 가로막혀 앞으로 이동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어류화석은 두 개의
후각기관이 있고 둘 사이에 약간의 틈이 나 있다. 이 사이로 줄기세포가 빠져나와 턱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한 쌍의
후각기관과 독립된 뇌하수체관의 구조는 턱을 가진 동물에서만 관찰되는 특징이다. 학자들은 발생학적으로 두 조건을 턱을 만드는 기본
조건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상황이 턱이 최초로 등장하기 수천만 년 전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두개골 안에서
턱이 만들어지는 재조합 과정은 한 번의 사건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에 발견된 어류화석 외에도 더 많은 표본이
발견되면 턱의 진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사실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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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어류에서 유악어류로 진화하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추정되는 슈유 제지안겐시스의 상상도. <출처: 네이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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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생물학이나 어류 진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 인간도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와 특징에 따라 턱의 형태가 서서히 변해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1000년이 지난 뒤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은 인류의 턱뼈는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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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임종덕 /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
- 한국인 최초로 미국 네브라스카대에서 자연사박물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캔자스대에서 척추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며 국내외의 중생대와 신생대 지층에서 공룡을 비롯한
여러 척추동물 화석을 발굴 및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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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042&category_type=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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