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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ebruary 19, 2012

연개소문은 모용부의 후손이다

예전부터 광산 김씨의 선조인 연정토(淵淨土)의 형, 연개소문(淵蓋蘇文 : 603~665)의 출신에 관한 설이 두 부분으로 되어있었는데 구당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는 서부대인, 신당서, 자치통감, 삼국사기 개소문열전에서는 동부대인이라고 했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봉성(鳳城) 출신이라는 얘기라 구당서, 고구려본기의 서부대인 설이 유력해졌음을 입증하게 되었다. 그리고 봉성은 사실 상 중국 삼국시대부터 5호16국 시대 말까지 모용부(慕容部)의 영역이었고 후연이 멸망한 뒤에서야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이 당시부터 모용씨 일부가 서부인 소노부(消奴部)에 부속되어 그 중 광(廣)이 연(淵)이라는 성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증손자가 연개소문, 연정토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연 광이 모용씨의 일부라는 증거는 봉성만이 아니었는데 사실 봉성을 포함한 요동(遼東) 지방이 238년부터 모용부의 지배를 받았었고 물론 전연(前燕)이 전진(前秦)에게 멸망되었어도 계속 모용씨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전진이 쇠락될 당시 후연이 들어서 고구려에게 요동을 빼앗길 때까지 계속 모용씨들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이 고구려에게 넘어갔을 때에도 모용씨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일족 중 광이 고구려 조정으로부터 연(淵)이라는 성을 하사받아 재상 급인 막리지에 올라 연자유(淵子遊), 연태조(淵太祚), 연개소문으로 세습되어 연개소문 사후에 자식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고구려가 망할 때까지 그 지위가 지속되어왔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곤 한다.

이후 연정토의 아들 연안승(淵安勝)이 신라 조정으로부터 김(金)씨 성을 하사받아 광산김씨의 원형을 이루었고 필자 역시 광산김씨 출신이나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며 지금에서야 제대로 증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광 이전이 바로 모용씨임을 제대로 시인하는 바이니 이제 더이상 번복하지 않기로 정했다. 어쨌든 고구려 연씨는 모용씨에서 비롯된 가문이자 광산김씨의 원형이지만 일부인 천(泉)씨는 이미 소멸되었고 그 원형인 모용씨는 모(慕)씨, 모용씨 등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광산 김씨의 원형이자 고구려 연씨의 본래 모습이라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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