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Tuesday, October 4, 2011

단풍 든 나뭇잎의 붉은 색소(안토시아닌), 해충 잡는 비밀 무기

"열매를 지켜라" - 진딧물, 노란색에 6배 더 몰려… 열매 맺는 가을에 색소 대량 생성
"다른 수종 허락 못해" - 붉은 색소가 독소로 작용, 주변에 다른 나무 생장 억제

가을 단풍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붉은색이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는 산행(山行)이란 시에서 '서리 맞은 단풍잎이 이월 봄꽃보다 더 붉다(霜葉紅於二月花)'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늘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는 법. 단풍이 든 가을 나뭇잎의 붉은색에는 천적은 물론, 이웃까지 해치는 무서운 비밀이 담겨 있다. 유럽과 미국의 가을 풍경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 것도 붉은색 때문이었다.

붉은색은 해충 물리치는 무기

나 뭇잎에는 광합성을 담당하는 초록색 엽록소(葉綠素·chlorophyll)와 함께, 노란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와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 등의 색소(色素)가 있다. 엽록소는 햇빛과 물로 탄수화물을 만드는 광합성의 주역이다. 나무가 한창 자랄 때는 엽록소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해 나뭇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성주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기온이 떨어지면 잎자루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 잎에서 만든 영양분인 탄수화물이 줄기로 가지 못한다"며 "탄수화물이 쌓이면 잎이 산성화되면서 엽록소가 파괴된다"고 말했다.

순창의 ‘강천산’. 단풍 빛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강천사 계곡. /허재성 기자
카로티노이드는 엽록소가 잘 흡수하지 못하는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보조 색소다. 보통 엽록소와 함께 봄부터 잎에서 만들어진다. 나무가 왕성하게 자랄 때는 엽록소에 가려 눈에 띄지 않지만, 가을이 돼 엽록소가 줄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우리 눈에 드러난다. 나뭇잎에 노란 단풍이 드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은 늦여름부터 새로 만들어진다. 열매와 꽃이 붉은 것도 대부분 안토시아닌 덕분이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가능한 한 힘을 비축해야 하는데 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굳이 안토시아닌을 만들까.

먼 저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서다. 2008년 영국 임페리얼대 연구진은 진딧물이 붉은색보다 노란색에 6배나 많이 몰려드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연구진은 열매를 맺는 가을에 해충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힘들여 붉은색 색소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유럽과 미국의 가을 색도 다르게 해

곤충과의 싸움에서 태어난 안토시아닌은 미국과 유럽의 가을 색도 다르게 만들었다. 대서양을 두고 마주 보고 있지만, 유럽의 가을 단풍은 노란색이 대부분이고, 미국은 붉은색이 주류다. 지난 2009년 이스라엘핀란드 공동 연구진은 그 이유를 두 지역의 상이한 지질 변동에서 찾았다.

연 구진에 따르면 식물은 약 3500만년 전부터 곤충을 물리치기 위해 안토시아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이 빙하기를 수차례 거치면서 유럽과 북미 대륙의 운명이 달라졌다. 북미 대륙은 유럽과 달리 아래위로 길게 뻗어 있어 빙하기가 닥쳐도 식물과 곤충이 얼음을 피해 이동할 여지가 있었다. 이에 비해 유럽은 얼음에 갇혀 식물을 먹는 곤충의 많은 수가 사라져버렸다.

결국 북미대륙엔 여전히 식물과 곤충의 먹고 먹히는 전쟁이 계속됐고, 안토시아닌도 계속 제 역할을 하면서 온 산을 붉게 물들여왔다. 하지만 유럽은 곤충이라는 적이 사라지자 무기인 안토시아닌도 내려놓아 노란색 단풍이 우세해졌다는 말이다.

햇빛 막고, 다른 식물 물리치는 역할도

안 토시아닌은 식물의 자외선 차단제이기도 하다. 미국 몬태나주립대 연구진은 2003년 안토시아닌 생산을 억제하면 나뭇잎이 자외선에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잎에서 영양분이 줄기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해 겨울을 나기 어려워진다. 결국 안토시아닌은 마지막 한 방울의 영양분까지 줄기로 보낼 수 있게 보호하는 호위 부대인 셈이다.

사정이 급하면 같은 식물도 공격 대상이 된다. 2005년 미국 콜게이트대 연구진은 안토시아닌이 주변에 다른 종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독소(毒素)로도 쓰인다고 밝혔다.

연 구진은 각각 다른 색의 잎을 상추 씨앗 위에 두고 싹이 트는 수를 확인했다. 그러자 단풍나무의 붉은 잎 아래 둔 상추씨에서 가장 적게 싹이 텄다. 연구진은 붉은색 잎이 떨어지면 안토시아닌 성분이 땅속에 스며들어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다고 추정했다.

식 물이 화학물질로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他感·Allelopathy) 작용이라고 한다. 한때 미국 애팔래치아산맥을 뒤덮었던 아메리칸 밤나무는 타감 작용을 하는 대표적 식물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아시아에서 새로운 병충해가 들어오자 다양성이 없는 밤나무 숲은 그대로 몰락하고 말았다. 자연에서도 혼자만 잘살자고 하면 망하는 법이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03/2011100301360.html

No comments:

Post a Comment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