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조상은 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대규모 유전자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인간게놈연구회(HUGO) 아시아지역 컨소시엄은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73개 민족의 염색체를 조사해 각 민족들의 이동 경로를 밝혀냈다고 10일 밝혔다. 이 연구는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11일자에 발표됐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 비교나 아시아 민족의 이동 연구가 이번처럼 대규모로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2004년부터 한국 싱가포르 중국 과학자들이 주도해 시작됐으며 일본 필리핀 태국 등 모두 아시아 10개국 90여 명의 과학자가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국립보건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숭실대 등이 참가했다.
● 일본인 주류 한반도에서 왔다
이번 연구는 호모 사피엔스, 즉 10만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현생 인류가 어떻게 아시아의 각 지역으로 퍼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김형래 국립보건원장은 “각 민족의 염색체를 비교한 결과 중국에서 한반도, 다시 일본으로 인류의 이동 경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현생 인류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뒤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다만 일본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과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 사이에서 ‘민족 융합’이 일어났을 수는 있다. 김 원장은 “컨소시엄에 참가한 일본인 과학자들도 이런 사실을 다 인정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당시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염색체 분석을 맡았던 박종화 테라젠 바이오연구소장은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은 다른 민족과 비교했을 때 매우 닮았다”며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차이가 5%라면 일본인과는 4.2%에 불과하며 유럽인과는 58%나 차이난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은 전체 인류 안에서는 형제라고 할 정도로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경기 안성과 안산시 주민 90명의 염색체를 분석했으며, 일본은 도쿄 오키나와 등에 사는 사람들을 조사했다.
●동남아 살던 인류 중국과 한국으로 북상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주제는 아시아 민족이 어떻게 이동하고 분화되었는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는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간다. 대략 5만~6만 년 전 인도 북부에 도착한 이들은 험준한 티베트 고원을 피해 동남아시아로 이동한다.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 정착한 아시아인 중 일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비롯해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동하고, 다른 집단은 북쪽으로 향해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정착했다.
그동안 동아시아 민족의 남쪽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었다. 인도 북부에 정착한 인류가 바로 동아시아로 왔다는 설과 먼저 동남아로 이동한 뒤 다시 동아시아로 이동했다는 가설이다. 김상수 숭실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두 번째 가설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며 “그림만 놓고 보면 인류가 남쪽 해안을 따라 돌면서 한반도까지 온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증거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동아시아 사람들보다 유전적으로 훨씬 다양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만큼 동아시아 사람들이 최근에 분화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북방계 민족의 이동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완의 연구라는 지적도 있다. 컨소시엄에 몽골 등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 연구진들이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다른 연구를 보면 현생 인류 일부가 북쪽으로 이동해 동아시아로 온 것도 맞을 것”이라며 “한국인은 남쪽과 북쪽에서 온 인류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는 말레이시아 북부와 필리핀 등에 아프리카 흑인과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는 흑인 계열의 민족이 있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냈다. 또 언어를 공유하는 민족이 대체적으로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종영 국립보건원 형질연구과장은 “민족 간의 유전자 차이를 알면 특정 민족에게 잘 듣는 신약을 개발하는 등 이번 연구를 맞춤 의약이나 법의학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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