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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 2011

신라 김춘추의 당나라 외교

김춘추는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할 원군을 요청하러 신라의 사신으로 당에 갔을 때, 당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중국 옷을 입게 해달라”고 요청한 뒤, 중국 옷을 입고 아뢰었고, “신의 자식이 7형제가 있으니, 원컨대 성상(당 태종)의 곁을 시위케 하여 주소서”라며, 자기가 스스로 청해 아들을 중국에 사실상 볼모로 남겨두고 옵니다.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으로 궁지에 몰리게된 신라는 역시 고구려를 쳐서 후환을 없애려는 당니라와 힘을 합쳐 삼국통일을 하게 됩니다.이것이 사대주의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신라의 태도가 논란이 되는것 입니다.


“거룩할사 당나라 큰 업을 개발하여/황가의 정치 경륜 높고도 창성하구료/싸움을 끝맺어 천하를 안정하고/전임금 잇받아 문교를 닦았도다/(…)/산악의 기운받아 재상들 태어나고/임금님은 충량한 신하만을 믿으시네/삼황으로 뭉치어 한 덕이 되니/길이길이 빛나리 우리 당나라” 65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해 승리하자 진덕여왕이 비단에 써 당 태종에게 올린글 입니다.

신라는 법흥왕 때부터 중국과 다른 별도의 연호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진덕여왕 때에 이르러 신라 연호를 버리고, 당나라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두고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자의 나라에 소속된 변방 소국은 사사로 연호를 이름지어 쓸수 없는 것이다. 신라의 경우는 일심으로 중국을 섬기어 사행과 조공이 길에 끊이지 아니하면서도 법흥왕이 연호를 자칭하였으나 의심스러운 일이다. 태종의 꾸지람을 듣고서도 오히려 머뭇거리다가 이제와서야(진덕여왕) 비로소 당의 연호를 시행하였으니 비록 마지못해 한 일이기는 하나 돌이켜 생각하면 허물을 지었지만 능히 고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와 그걸 서술하면서 독자적 연호를 자칭한걸 꾸짖는 고려의 김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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