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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 2011

한(漢)이 흉노보다 문화가 훨씬 우월했지만 군사적으로는 밀린 이유

흉노는 사나운 기마민족이었느니라 BC 4세기말부터 AD 1세기말까지 몽골
고원과 동투르키스탄 일대를 지배했던 유목기마민족! 진시황이 흉노가
겁이나 처음 쌓은성이 지금의 만리장성의 시초이다.
한의 황제들은 흉노왕에게 해마다 많은 양의 견직물,술,쌀 등을 공물을 조공한다.
심지어 한 고조는 자기딸을 같다 바치기도 했다.

한이 군사적으로 밀린건
말때문이지. 다시말해 보급이 필요 없는 기동성 때문이지..
몇 만명이 몰려 다녀도 보급품이 필요없이 자급자족이 된다는 건 굉장한거다.
여자들도 기본적으로 말을 탄다.

왜 말 때문이냐고?
앞에서도 말 했듯이 보급품이 필요 없다는거...
말이 죽으면, 재활용 하면 의.식.주가 해결된다.

의-가죽은 의복재료...
식-말 고기는 식량, 양질의 마유(말젖)으로 음료 해결...
주-태생이 유목민이라 온 들판이 아랫목이니라...

말 먹이는 온 들판에 널려있다! 스스로 새끼도 생산하여 기동성 보충...
보급이 필요 없다는 건 얼마나 홀가분 하냐? 진격만 하면 되느니라...
몽고 칭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한 것도 같은 이치 이니라...

그러면 한은 말이 없었느냐? 있었지....

하지만 북방기마민족보다는 잘 다루지 못하였다....


질문:
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얘기를 하는거지? 한 초반에 자리 잡기전에 흉노에게 잠시 위협을 당한 정도지. 실제 한나라가 내부 정비하고 흉노 개털어서 박살내 버리니 흉노 흩어져서 유럽쪽으로 도망간거잖아.

흉노가 한나라를 위협이나마 한 시기는 한나라 전체로 보면 0.5% 정도??? 근데 무슨 흉노가 대단하다고 하는건지?

답:
흉노족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선우[單于]라고 불리는 단일 지도자 밑에서 광범위한 부족연합을 형성한 후부터이다. 즉 흉노는 진의 시황제 때의 장군 몽염(蒙恬)에게 격파당해 세력이 위축되기도 했으나, 두만(頭曼)이라는 선우가 진나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다시 세력을 확보했다. 그뒤 선우의 자리에 오른 모돈(冒頓)은 몽골 전지역을 지배하고, 북중국 일대에 대한 침입을 재개했다. 이에 중국을 재통일한 한(漢)의 고조는 흉노의 정벌에 나섰으나, 도리어 흉노에게 크게 패했다. 그뒤로 한 고조는 흉노의 선우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고, 해마다 많은 양의 견직물·술·쌀 등을 공물로 바치는 동시에 흉노의 선우를 형으로 하는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이후 흉노는 서방경략에 나서 동투르키스탄 일대의 오아시스 국가들을 모두 지배하
에 두고 그 국가들에게 동서교역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로 교역의 이익을 나눠주었다. 이후 흉노는 한과의 화약을 무시하고 몇 번이나 한나라를 침입했으며, 그럴 때마다 한은 굴욕적인 조건으로 화평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한은 무제 때에 이르러 흉노를 무력적으로 격파하기 시작했다. 중앙 아시아에 토벌대를 파견하는 한편, 서역의 여러 나라들과 동맹관계를 맺어 흉노를 동서양방향으로 협공했다. 한나라의 공격을 받은 흉노는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세력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으며, 흉노를 공격했던 한나라는 지나친 군비지출로 인해 국력이 피폐해졌다.
그뒤 BC 60년경 흉노에서는 선우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어나 5명의 선우가 병립했다가, 2명의 선우가 대립하는 등 혼란을 거친 뒤 다시 통일되어 한나라와 화평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한나라가 망하고 왕망(王莽)이 신(新)나라를 세운 뒤 흉노의 선우에 대한 대우를 소홀히 하자, 흉노는 다시 중국을 침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48년 광무제가 중국을 통일하여 후한(後漢)을 세웠는데, 그 직후 흉노에서는 다시 내분이 일어나 남북으로 분열했다. 이에 남흉노는 후한에 귀복하여 중국 북방경계지역인 간쑤[甘肅]·산서[陝西]·산시[山西] 등지로 이주했다가 나중에 5호16국시대에 이르러 전조(前趙)·후조(後趙)·북량(北凉)·하(夏) 등을 세웠다.
반면 북흉노는 선비(鮮卑)·남흉노·후한의 잇달은 공격과, 기근·질병 등으로 세력이 약화되어 점차 몽골 고원의 서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여 2세기 후반 경에는 키르기스 초원지대로 이동함으로써 중국과는 더이상 접촉하지 않게 되었다. 5세기 이후 이들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7세기에 몽골 평원을 지배했던 유목민족인 돌궐족은 스스로 흉노족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또한 흉노족의 많은 풍습이 투르크의 것과 일치하는 것을 근거로 해서 일부역사학자들은 서부지방의 흉노족이 투르크족의 조상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한편 흉노족이 5세기에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훈족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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