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위·대장 등 7개 장기를 이식받고 건강해진 조은서양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주치의 김대연 교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과자는 좀 참았다가 나중에 먹자.”
은서가 투정하자 김 교수가 “밀가루·우유 등은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어 아직은 안 돼요”라고 달랜다. 은서는 “그러면 고기라도 많이 먹을게요”라고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경기도 구리가 집인 은서는 국내 10여 명 밖에 없는 희귀병 환자다. 만성 장폐색증후군이란 병이다. 이 병 때문에 은서는 태어날 때부터 장(腸)이 운동을 하지 않아 음식을 먹는 족족 토했다. 모자라는 영양분은 주사로 보충했다.
김 교수는 “위를 비롯한 장기 대부분이 기능을 잃었고 간까지 손상돼 장기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장기 이식 희망자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적합한 뇌사자가 나오지 않았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혈액형이 같아야 한다.
지난해 10월 천사가 나타났다. 은서보다 한 살 어린 6살 여자아이가 간·췌장·소장·위·십이지장·대장·비장 등 7개의 장기를 주고 떠났다. 그 애는 뇌종양을 앓다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뇌사(腦死)에 빠졌다.
서 울아산병원 김기훈(46·간이식 및 간담도외과) 교수가 장기를 적출(摘出)해 왔고 김대연 교수팀이 9시간 대수술 끝에 7개 장기를 은서에게 이식한 것이다. 장기를 하나씩 떼서 이식한 게 아니라 식도 아래 위에서부터 항문 직전 대장까지 소화계통의 장기를 통째로 떼내 그대로 이식했다. 장기별로 주변의 다른 기관과 혈관을 연결하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혈관이 가장 복잡한 간은 별도로 떼서 이식했다.
수술 후 한 차례 위기가 왔다. 세포가 많이 죽어 기능이 떨어지는 간 부전(不全)이 왔다. 사흘 뒤 은서는 아빠(38·회사원)의 간 일부를 다시 이식받았다. 은서의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간·신장 등 두 개의 장기를 동시에 이식한 적은 더러 있었다. 중국에서 7개를, 미국에서 한인 의사가 6개를 동시 이식한 바 있다. 7개 동시 이식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그래서 김 교수 팀은 수술 전 은서 어머니 김영아(33)씨에게 “성공 확률이 절반 이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린이 장기는 성인보다 작아 수술이 훨씬 어렵고 성공 확률이 낮다. 은서는 장기를 기증한 6세 여아와 많은 부분이 적합했다”고 말했다.
은서는 수술 나흘 후 인공호흡기를 뗐고 한 달 뒤 6년 넘게 맞아온 영양주사에서 해방돼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거의 두 달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이달 말 퇴원할 예정이다.
16일 은서의 아침 메뉴는 밥과 계란찜·무국·시금치·김·김치였다. 밥을 절반 정도 먹었다. 은서는 “이제는 토하지 않게 돼 너무 기뻐요”라고 했다. 어머니 김씨는 “오빠(10세)가 밥 먹는 것을 부러워했는데 은서가 오빠 옆에서 음식을 먹게 되다니 꿈만 같다”며 “올해 학교는 가지 않고 내년에 입학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서가 건강해지려면 이식 거부 반응이 없어야 한다. 가족들은 감기에 걸릴까 봐 마음을 졸인다. 김 교수는 “이식 거부 반응은 초기 1~2개월에 심하게 오는 게 일반적인데 은서는 고비를 넘겼다고 볼 수 있다”며 “건강을 되찾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은서 수술비는 3억2000만원이며 환자 부담금 1억 1120만원 중 8120만원을 가족이, 3000만원은 병원 측이 부담했다.
◆ 만성 장폐색증후군=국내에 환자가 10명 내외에 불과한 희귀 질환이다. 선천적으로 장(腸)의 운동이 이뤄지지 않아 음식을 먹는 대로 다 토해내고 열량의 30%밖에는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머지 70%의 영양은 주사를 통해 보충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1년 생존율은 87%, 4년 생존율은 70%로 유일한 완치법은 장기 이식이다.
◆이식 거부반응=이식된 장기를 받은 수혜자의 몸이 자신의 장기가 아니라고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는 반응.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이식 직후 면역억제약을 써서 거부반응을 줄이는 치료를 병행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