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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ebruary 12, 2012

지구의 문명을 창조한 중국(4대 문명을 연 중국)

- 토템의 세 가지 특징이 있으므로 해서 상고문화 유물을 연구하는 데에는 서로 다른 토템휘명의 외연형식外延形式, 이를테면 문신∙복식∙제사∙음악∙무용∙공예예술∙각부刻符 상형계통 등의 중국 고문자 구성규칙 및 그 핵심과 본질도 하나의 역사적 천연맥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유사성에 따른 등급별 분류
- 수십 년에 걸쳐 전형적인 뜻을 구비한 용봉 토템휘명의 기원과 변천, 그리고 그것에 의탁하고 있는 바의 고대 문화족단의 흥망∙성쇠∙이동∙분화∙취합(동화同化와 이화異化)∙문명∙후예∙생활구역 등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고고문물 중 대대로 내려온 민감풍속의 토템휘명과 토템문화인자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중화민족의 상고시대 열조열종烈祖列宗의 여러 문화족단文化族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고, 소위 <神話신화>라는 겉옷을 벗겨내어 역사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시켰으며, 아울러 중국 상고문명의 특징, 상고사회의 성질과 연변 및 민족 공동의 의식구조와 심미의식의 심층 바탕을 환히 밝혔고 이를 통해 중화인종과 중화문명의 동천東遷∙동도東道∙동점미주東漸美洲 등의 역사적 사실과 미주지역의 올메카Olmeca∙마야Maya∙톨테크Toltec∙아즈텍Aztec∙믹스테카Mixteca∙잉카Inca 등의 문명은, 바로 중화문명이 미주로 동천∙동도∙동점 하여 이룩한 이화異化의 결과임을 확인했다.

아메리카의 <인디언>은 중화민족과 동조동원同祖同源으로 바로 중화인종의 예지裔支임도 알았고, 중국 대지는 현재 지구상 황색인종의 고향이며, 중화의 선조들은 적어도 5,6천년 전에 이미 중화문화를 특색으로 하는 <태평양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화 선조들이 아메리카를 개척, 문화와 문명의 사자 노릇을 한 것은 콜롬부스가 견선이포蜸船利炮로 미주를 정복한 것보다 훨씬 의의 있는 일이다.
중화민족에서 발상한 독특한 성질의 <용봉문화> 형태를 바탕으로 미주의 고대 <인디언문명>이 중화문명과 거의 걸음을 같이한 문화인류학적 사실을 알아내었고, ≪산해경山海經≫∙≪상서尙書≫∙≪예기禮記≫∙≪사기史記≫∙≪양서梁書≫∙≪한무동명기漢武洞冥記≫등 중국 고대사서의 기록을 통해 중국과 미주는 수천 년에 걸쳐 지속적인 문화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전면적∙계통적으로 탐색했다.

- 1987년 5월 하남성 복양ꝝ陽 서수파西水坡 앙소문화 유적지에서 지금으로부터 6천년전의 <용호묘龍虎墓> 삼조방각파소三組蚌殼擺塑 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바로 용∙호랑이∙양∙매미∙새∙구슬∙사람 등이었다.
용은 본체가 용인 고타古鼉(악어의 일종)였으며, 바로 이제까지 고고학에서 발견해왔던 원생문화 토템휘명인 창룡蒼龍.
묘의 주인은 염황炎黃 동이연맹집단의 종주 영수인 전욱顓頊

- 7천여년간에 걸쳐 중국 경내에서 광범위하게 보여오던 팔망태양문八芒太陽紋은 바로 복희伏羲의 상고 태극팔괘도太極八卦圖이며, 이는 일종의 선천팔월태양력도식先天八月太陽曆圖式이다.
≪예기禮記≫에 기록된 <역포구易抱ꜫ>는,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의 문화유적지인 안휘성 함산현含山縣 장강향長崗鄕 능가탄凌家灘 유지에서 출토된 옥구玉Ꜫ의 복갑腹甲과 배갑背甲 사이에 하도낙서河圖洛書 팔망태양문식八芒太陽紋式의 팔괘도가 끼워져 있었는데, 8괘와 64괘는 물론 하락河洛의 상수常數도 나타나 있다.
호남 대계문화 탕가강湯家崗 유지 백도분白陶盆의 8괘도는 수사修蛇와 호족虎族 족휘로서, 그 종족은 숙虪을 토템으로 삼았다.

- 8괘력은 연변 하여 <10월 태양력太陽曆)이 되었다.

- 마야태양력 瑪야太陽曆은 <선천팔괘태양력先天八卦太陽曆>이다.
이러한 고력古曆은 아즈텍인Aztec人, 톨테크Toltec人, 믹스테카인Mixteca人등에게 계승
되었다.
마야인과 아즈텍인은 한결같이 서쪽을 숭배했다. 그래서 태양력(예로 아즈텍 태양력)은 상동上東∙하서下西∙좌북左北∙우남右南∙으로 되어 있고, 용일龍日을 동북 진위震位에 두고 입춘立春으로 삼아 1년의 시작으로 여겼던 것이다.
호일虎日은 동남 태위兌位에 두고 입하立夏로 하였으며, 홍수일洪水日은 서남 손위巽位에 두고 입추立秋로 하였으며, 토일土日은 서북 간위艮位에 두고 입동立冬으로 하고, 정동正東(위쪽)의 이위離位 즉 일승지위日升之位는 오행의 중앙위로 하여 춘분春分으로, 정서正西(아래쪽)는 일귀감위日歸坎位로 즉 일족日族의 본토위本土位로 하여 추분秋分으로, 정남 건위乾位는 하지夏至이며 신화절新火節로 태양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으며, 이렇게 음양을 둘로 나누어 해가 계속 돌아 새로 시작함을 뜻했던 것이다.
큰 사방四方은 사정사시四正四時를 뜻하며, 작은 사방은 사보사유四輔四維를 뜻하여 이들이 합해서 사시팔절四時八節이 되는 것이다.
5일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 오행을 말하며, 이들은 합해 천제天臍라 한다.
팔방구위八方九位는 순전히 복희의 선천패위先天卦位와 같다.
마야태양력중의 8괘에 대한 비밀번호는, 바로 마야력이 복희의 상원태초태양력上元太初太陽曆의 변체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 미주양곡부상美洲暘谷扶桑은 중미의 멕시코북부에 있다.
이 지역은 바로 <중화화주中華華主∙중화화시中華華市∙중화화촌中華華村>(Chi Hua Hua州∙Chi Hua Hua市∙Chi Hua Hua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곳에는 은복포족殷福捕族(Infubu족)의 은지안殷地安(Indian)들이 살고 있다.

- 미주의 올메카문명은 은문화殷文化가 미주로 동천하여 이룩된 것이다.
올메카문화 라 벤타 유적지에서 출토된 16개의 옥인玉人과 6개의 옥규玉圭 신주위패神主位牌에는 은상殷商 열조열종列朝列宗의 계각문자契刻文子가 명각되어 있다.

- 올메카문명은 대략 B. C.1200~300년 사이에 중미의 베라크루즈Veracruz 이남과 타바스코Tabasco이서의 멕시코연안에서 번성했던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화의 돌발적인 출현은 중국 상문화商文化의 기질 때문이다. 이는 긴 기간 각국의 학자들이 해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일대인 은지안인殷地安人(Indian인, 곧 은인殷人)은, 매일 일어나 식사를 마친 후 서로 마주치면 반드시 <인디언>(Yindian 은지안殷地安 )이라고 인사했다.
이는 곧 현대인의 <헬로우!>(Hello,여보세요, 안녕하세요)와 같으며, 실제로 동쪽 미주 땅으로 건너간 은인殷人들이 은나라 땅의 안양을 곧 이 코판강이 마치 은허殷墟 안양安養의 원하洹河와 같은데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코판을 그들은 빨리 읽을 때 <환>(Huan, 洹)이라고도 한다.
이 코판강의 라 벤타La Venta는 은민족이 미주로 건너와서 세운 도성이며, 그 격식은 순전히 은의 안양安養을 모방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거주지의 강을 여전히 <환>(洹), 즉 코판Copan이라 불렀고 새로운 도시를 <가家>(Venta를 급히 읽으면 Jia, 家가 됨)라 했으며, 다시 이들이 남쪽으로 옮긴 후 그들의 <은가殷家>를 잉카<殷家, 印加, Inca)라고 했는데 그 뜻은 다 같다.
<안양安養>은 그 뜻이 원수洹水의 남쪽이란 것이며, 곧 원남洹南(환남)으로 <洹>과 <安>은 통용될 수 있다. 1942년 콜롬부스가 바하마 군도Bahama Is의 산살바도르San Salvador섬에 상륙했을 때는 이미 은殷의 후예들이 그곳에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스스로 <은지인殷地人>(중국어 발음 Indian)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콜롬부스는 곧 인도印度를 연상, 인디언인(印笰安人)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중국어를 말한 것으로, 은나라의 안양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서 자칭 은인殷人임을 밝혔던 것이다.
중미의 많은 은지안인殷地安人 지명은 모두가 은어印語를 기억하여 전해온 것이다.

- 서주사西周史의 대가인 조광현趙光賢 교수는 역법曆法과 금문金文∙천상天象 및 ≪국어國語≫등의 사료를 종합하여 무왕武王이 주紂를 멸한 것은 B. C.1045년이라고 확정지었다.
그런데 일출국日出國이 라 벤타를 코판 강가에 건립한 연대가 공교롭게도 B. C.1040년으로 은이 망한 5년후이다. 게다가 무왕이 주를 멸할 때 유후攸候 희喜가 10만의 은군殷軍과 15만의 군속軍屬등 은민을 거느린 채 돌연히 실종되고 말았다.

7백년전 페루의 북부 비호족飛虎族에 모체Moche라는 왕이 있었다.
은의 비응족飛膺族의 거주지였던 라 벤타가 두 번째 지진에 의해 파괴되고 그에 안데스산을 넘어 하산한 호시Hosi 의사들은 그를 향해 찬가를 불렀다.
(25족이 형제가 되어 호시를 따라 하늘 끝 서쪽에서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부교를 통해 떠왔네. 도중의 어려움은 잊을 수 없네. 서로 곡식을 내어 서로 친히 살자. 형제들이여 서로를 욕되게 말자. 천국을 재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이하세......!!)
이에 모체왕은 눈물을 흘리며 호시 의사를 영접하고 황금주보를 꺼내 나누어주었다.
그리고는 비응족에게 코판 강가에 일평단국日平旦國을 증건토록 했다.
(일출국은 B. C. 약1백년쯤에 지진으로 무너졌고, 다시 건설된 일승국日升國은 A.D.926년에 역시 지진으로 무너졌다.)
이 일평간국의 건립역사는 멕시코 정부에 의해 전부 기록되었고, 호시의사의 가사는 물론 그 발음조차도 기록되어 있는데, 한어의 발음과 일자일음이 아주 흡사하다.

마야족은 스스로[3천년 전에 천국天國으로부터 체죽주挮竹舟를 타고 하늘의 여러섬 사이 부교浮橋(일본열도를 지칭함)를 건너 코판 강가에 이르러 콩∙보리∙기장∙조 등을 심었다. 우리 조상들은 차례로 일출국日出國∙일승국日升國∙일평단국日平旦國을 건설했는데 모두가 지진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다만 일평단국만이 18명의 월토왕月兎王의 역사가 있어 현재 멕시코 박물관에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마야족의 벽화나 석조石雕 가운데에는 [해 속에 까마귀가 있거나 日中有烏] [달 속에 토끼가 있는 月中有兎] 것이 많다.
이는 곧 제준帝俊 소호씨小昊氏의 아내 희화羲和의 해점(占日), 상희常羲의 달점(占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야족단은 세차례에 걸쳐 안양安養 원수洹水의 은허殷墟를 미주의 코판 강가에 건설하면서 모두가 태양을 숭상, 태양신전太陽神殿을 성전聖殿으로 여겨 중앙에 위치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들은 미주 서해안에서 발견된 23개의 <亞>자 문양과 20여개의 < >자 문양이, 아마도 당시 유후희攸候喜(즉 Hosi)가 은의 군민을 이끌고 바다 건너 미주로 등천한 후, 그들의 생명을 살려준 <배>(舟)나 혹은 <돛>(帆)을 주제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혈맹맹세의 상징이었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 올메카인∙마야인∙아즈텍인∙잉카인 들은 모두 태양∙범∙용∙뱀∙우사羽蛇∙응효應鴞를 숭상했고, 아자형(<亞>字型) 건축∙차자형(<且>字型) 비석∙거석두상巨石頭像∙도철饕餮∙장로방관長艫方冠∙집규執圭∙포자泡子(多子를 말함)등을 중시했고, 기跽∙궤跪등의 동작과 산반散盤이 있으며, 흰색∙검은 색∙붉은 색을 숭상했고, 절정금자탑截頂金字塔∙단대사당 壇臺廟堂∙석용石俑을 지었으며, 옥玉을 숭상했고, 옥조각과 그림 속에는 연미식燕尾式의 인물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모두 그 근원이 은상殷商에 있다.

- 여러 가지 연관된 자료를 종합하면 <은인동도동천미주殷人東渡東遷美州>의 대사건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실행되었으리라 재구해 볼 수 있다.

은군殷軍의 통수였던 유후희攸候喜는 유攸에서 은의 군민을 조직, 바다를 건너 부상일출국 扶桑日出國으로 동도동천의 길에 나섰다.
25만의 군민을 25개의 부족으로 삼아 다섯 갈래의 길을 열어 출발했다.
(마야태양력 그림 가운데 오일왕족五日王族과 그 주위를 둘러싼 20개의 해가 있어, 모두 25개의 일족日族 토템 휘지徽識로 조직되어 있다. 또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도문陶文에 20여개의 < > 및 <亞>그림은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그 물증이 되며, 한편 ≪호시Hosi왕 찬가≫의 [25족이 형제이며 호시Hosi를 따라 섬을 다리 삼아(일본열도를 건너)왔네]라는 것도 구비口碑 증거가 되고 있다.)
이들 매 5개 족단은 하나의 왕들에 의해 통솔되었는데, 이 5개 왕족은 바로 비응飛應∙비호 飛虎∙비룡飛龍∙비사飛蛇∙오토烏兎였으며, 모두 오행일족五行日足의 연맹이었다.
이 오일왕족五日王族은 실제로 모두가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와 소호小昊 제준씨帝俊氏의 후예들이다.
이 오일왕족은 당시 동이東夷∙풍이風夷∙양이陽夷∙오이烏夷∙회이淮夷를 대표하고 있다.
회이는 곧 서호방徐虎方이며 동이東夷는 다 묶어 인방人方인데, 이 두 방위는 하나는 남이고 하나는 북쪽으로 행동의 편의를 위해 아마도 서로 나뉘어 하나는 유후희攸候喜에게, 또 하나는 차후 즉 모체왕에게 인솔되어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장사자탄고전국초백서長紗子彈庫戰國楚帛書≫에 [日故⃞ ]라는 글이 있는데, 여기서 $ 는 곧 여왜족女緺族임을 알 수 있고, 이 때문에 <차>는 <女>를 붙여 <@>로도 쓴다. <차>나 <@>는 모두 <강포교사剛暴矯詐>의 뜻을 가지고 있다.
복희씨는 바로 여왜씨 중에 서쪽으로 이동한 한 지파인 호족虎族인데, <희모羲姆> 혹 <희모 羲模>∙<서모西摩>∙<서왕모西王母>라고도 쓰며, 황제黃帝때에는 <모모模母>라고 썼다.
이로 보면 <@>는 호족虎族의 여추장이며, <모차模차>는 곧 <마차摩且>(Moche)이다.
페루 경내의 모체왕摩且王은 틀림없이 복희∙여와의 흑호黑虎∙흑표족黑豹族의 후예일 것이다.
서회徐淮∙강절江浙의 호방虎方을 역사적으로 <%>이라 칭했는데, 흥미 있는 일은 이 글자의 <숙儵>자가 忟와 黑의 결합인 점으로 유후攸候가 관할하던 흑호족黑虎族을 지칭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안데스산의 유후희攸候喜 의사가 <호시가Hosi가>를 소리쳐 구성지게 부를 때 잔학했던 모체왕이 감동해 울 수 있었겠는가? 서모호표西摩虎豹는 휘파람을 잘 불었고, 차 차는 포악했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모체왕의 포악함을 일맥상통하며 이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1987년 페루의 모체왕 묘가 발굴되었다. 거기서 황금 黃金∙취옥 翠玉∙도용 陶俑∙주보殶寶등 수만 매가 출토되었다. 금패金牌에 박혀 있는 취옥은 은허殷墟 부호묘婦好墓의 남양옥南陽玉과 흡사했고, 또 청동기靑銅器는 호북湖北 대치大治의 동연산銅緣山에서 출토된 상대 청동기반靑銅器盤과 유사했다.
또 한 폭의 흑백으로 [호랑이 모양의 형틀 앞에는 뱀이 놓여져 범인을 물려하고, 다섯 단계의 작두가 발∙발목∙아랫도리∙가슴∙목을 베고 있는] 모습의 <오행형관참수도五行刑官斬首圖>도 발견되었다.
이 <행형도>를 통해 갑골문의 <王>자는 < >로 되어 있으며, 이는 원래 < > 모습의 청동 모자였음을 알 수 있다. 평상시에는 모체왕이나 행형관行刑官의 머리에 씌워져 있다가 형을 집행할 때는 벗어서 거꾸로 놓아 참수의 권위를 상징하고 중기重器로 쓰여졌던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안휘安鰴∙산동山東에서 식량을 싣고 바다로 나갔을 것이다.
이들 대군은 바다를 건널 때 <동몽범함대艟艨帆艦隊> 및 <체죽주선대涕竹舟船隊>등으로 나누었을 것이고, 5로대군五路大軍은 혼합편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군관∙귀족 및 황금∙옥기∙주보∙식량∙급양물품 등은 동몽艟艨을 이용했고, 군속∙평민 혹은 보통 사병은 체죽주 체죽주涕竹舟를 이용했다.
그러나 인구가 너무 많아 체죽은 거의 바닥이 날 정도였고, 그 죽순까지 모두 캐내어 항해중의 약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최초 항로는 아마도 곧바로 동쪽으로 나가 일본열도의 3천여 섬이 이어진 천로부교 天路浮橋를 따라 묵치국墨齒國(Mexico)에 닿았을 것이다.
이들이 바다에 들어선 후 해류와 해풍 등의 영향으로 다섯 길로 나누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합쳤을 것이다.
즉 동몽함대는 천지부교 天之浮橋를 건너 페루와 중미中米에 닿았고, 비호족飛虎族∙비표족 飛豹族일부는 체죽주를 타고 남쪽의 섬을 건너 동쪽으로 갔고, 일오월토족日烏月兎族 역시 체죽주를 타고 천지부교를 이용, 중미에 닿았다.
한편 비응족飛應族∙비사족飛蛇族은 역시 체죽주를 타고 북쪽으로 일본열도 및 일본 해협∙쿠릴열도∙타타르 해협∙알류우샨 열도∙알래스카를 거쳐 북아메리카에 닿았다가 다시 남하하였고, 나머지 일부는 한반도에 올랐다가 동북이인 숙신肅愼∙험윤玁玧등의 소재지 동북지역을 거쳐 베링 해협∙알래스카를 거쳐 다시 남하했을 것이다.

동북의 발해∙한반도∙알래스카∙캐나다 등에는 한결같이 모두 24개의 네모난 돌 및 웅응지로雄鷹指路의 표지석 즉 토템기둥이 있는데, 이는 은인 殷人이 자기들이 지나는 길에 비응 飛膺을 표시한 것으로 뒤따라오는 은족殷族의 길 안내 표지라 한다.
이는 이치에 맞는 말이다. 해달인海獺人의 비응飛膺 토템기둥과 마오리인의 토템기둥은 4천5백여년전의 대만 고산족목조토템 조상造像과 같아 모두가 비응지효飛膺指鴞와 몸체 큰 어린이가 규圭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이는 당시 바다로 도망가서 옮겨 살 때 남북으로 흩어져 버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노소가 서로 돕고 군민이 동고동락하며 공동으로 환난을 극복한 것으로 모두가 호시왕이 노래했던 내용과 같다.

각 대군은 앞뒤로 남미∙북미에 다다른 후 점차 중미로 모여들었다. 유후희가 거느리던 주력은 멕시코의 부상일출국扶桑日出國에 이르러 사람을 모아 정착했는데 이에 그곳을 <중화화주中華華主>라 부르며, 은 殷의 도읍 안양安養의 원하洹河를 모방, 제단祭壇을 쌓고 천지에 제사 지내며 봉선封禪을 치웠다.
그리고는 여덟 방향의 바람과 일월성신을 살펴 칠정七政을 맞추고 역법曆法을 만들어 시간을 맞추었다.
그로 인해 라 벤타 신전과 코판 강가 및 <18월 태양력>과 <신화절紳火節>∙<금성력金星曆>등이 있게 된 것이다.
그중 <18월 태양력>은 <8괘>와 <10월 태양력>이 합쳐진 것이다.
그리고 후희後喜(Hosi)가 왕 노릇을 했는데, 그 왕을 <을기>(중국발음 Yichi)라 한 것은 바로 후희(Hosi)의 음이 와전된 것이다.
오족은 오행에 의해 위치가 배정되었으며, 드디어 은지안인 殷地安人(인디언)의 특수한 제사∙예의∙행정구역 등 규칙이 생겨났다.
이로부터 올메카에 상문명尙文明이 재건되어 <일출부상국>이 건설된 것이다.
A.D.100년에 이것이 지진으로 파괴되자 다시 건설했고, 그조차 다시 지진으로 파괴되자 일부 은민殷民은 페루 북부지역으로 옮겨 모체황금왕조를 세웠다. 또 다른 일부는 유후희의 후예들로 칠레의 안데스 산 속으로 가서 잉카제국을 세웠으며, 올메카에 남아 있던 이들은 이동하지 아니하고 제3차의 증건을 꾀했으나 그것조차 제3차 지진에 훼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도리어 상문화尙文和를 널리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은지안인>중에 어째서 <마야>문화가 가장 발달했으며, <마야>란 이름은 어디서 연유된 것인가 라고 묻는다.

당시 유후희의 은군殷軍은 중국에 있을 때 임방林方∙인방人方∙호방虎方∙월방粤方등을 진무했었는데 이들은 10여년만에 은민에 동화되었고, 그들이 중국을 떠날 때 유攸를 출발하여 바다로 나서면서 동이東夷∙공유灨愉∙낭야狼牙의 도이島夷∙양이陽夷등도 당연히 이들을 따라 나섰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야馬雅>는 낭야狼牙의 동이인東夷人이 아니겠는가?
즉 일오월토日烏月兎의 희화羲和∙상희常羲∙중려重黎의 후예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대로 천문역법 天文曆法을 관장해 왔기 때문에 마야인은 천문역산天文曆算에 뛰어났던 것이며, 금성金星을 최고로 높이 보았던 것이다.
희화와 상희는 소호小昊와 연인족단이었고, 소호는 곧 금천씨金天氏였던것과도 관련이 있다.
소호는 사숙四叔 중에 수족修族과 희족熙族이 있었는데, 마야인도 역시 그렇게 칭하고 있다.

유엔이 1954년에 재판한 ≪문명文明≫(Civilization) 상∙하≫ 두책속에 인디언인 殷地安人∙마야족의 <격고일출도擊鼓日出圖>가 있다. 이것은 바로 하夏나라 유궁후예有窮后羿 시대의 부상수扶桑樹위의 아홉 개 해(九日), 하늘 위의 한 개 해(一日), 또 해 속에 까마귀가 있는 (日中有烏) 그림이다.
만약 은인이 등천하지 않았다거나, 그중 마야인이 동이낭야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일중준오부상도日中踆烏父喪圖>가 그곳에 있겠는가? 하물며 이런류의 부상도가 마야문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추측컨대 마야의 조상은 소호동이小昊東荑이거나 황제전욱皇帝鷆頊의 동북이인東北夷人일 것이다.
그러므로 금성金星∙준오踆烏∙토록兎鹿∙저楮∙일日등을 조상숭배 대항을 삼았으며, 마야력에 그들 기원이 B. C.3113년이라는 전설은 허망된 것이 아니다.
진秦나라 때에 이르러 서복徐福이 선약仙藥을 구한다는 구실로 바다로 나아가 도망했는데, 일본을 거쳐 멕시코에 이르러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미 콜롬비아 및 베네수엘라 등지에 채약인採藥人의 후예라는 <파이사노Paisano>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생존하게 되었고, 또 <은복포殷福布<(Infubu)족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출처] 용봉문화설 자료 요약|작성자 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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