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 가운데 가장 많은 미생물을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할 것이다. 미생물은 지구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화산처럼 뜨거운 곳이나 빙하처럼 차가운 곳,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 손, 우리 뱃속까지 어디서나 미생물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수
십 조 개)보다 장 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수백 조 개)이 더 많다.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 중에서는 소화를 돕거나 각질을 먹는
유익한 것들도 있지만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도 있다. 그래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외부 미생물이 침입했을 때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싸움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 면역학이다. 면역학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노벨 생리의학상을 무려 10회 가까이 배출할 정도로 중요하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도 면역학계에서 나왔다. 룩셈부르크 출신인 율레스 호프만(Jules Hoffmann, 1941~) 프랑스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 교수, 미국의 브루스 보이틀러(Bruce Beutler, 1957~) 스크립스 연구소 유전학과 교수, 캐나다의 랠프 슈타인만(Ralph Steinman, 1943~2011) 박사(미국 록펠러 의대 교수였다)다. 호프만 교수는 초파리를 이용해 선천성 면역(innate immune)을 밝혀냈다. 보이틀러 교수는 쥐를 이용해 같은 면역계를 입증했다. 슈타인만 박사는 세균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면역계에 알리는 수지상세포를 발견했다.
면역계 경종 울리는 ‘미생물 단백질 감지기’
면역은 크게 선천성 면역과 후천성 면역(적 응성 면역, adaptive immune)으로 나뉜다. 병원균이 처음 침투했을 때 우리 몸의 선천성 면역계가 즉각 인지하고 반응한다. 하지만 2~3주가 지나거나 동일한 병원균이 다시 침입했을 때 우리 몸은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병원균을 무찌른다. 후천성 면역계가 병원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천성 면역계는 우리 몸속에 이미 존재하면서 외부에서 병원균이 침입할 때를 대비한다. 피부나 점막에서 병원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침이나 위액에 분비물을 내보내 병원균을 죽인다. 대식세포나 호중성구, 수지상세포 같은 먹보 세포들이 출동해 병원균을 감싸 흡수하듯이 잡아먹거나 자연살생세포 같은 킬러가 병원균을 죽인다. 이 세포들은 모두 백혈구다.
먹보 세포들은 어떻게 병원균을 알아 볼까. 이것이 이번 노벨상의 핵심이다. 미생물에는 병원균임을 알리는 단백질이 붙어 있다. 먹보 세포는 바로 이것을 감지한다. 먹보 세포에게는 TLR(톨
유사수용체)이라 불리는 ‘미생물 단백질 감지기’가 있기 때문이다. TLR이 미생물 단백질을 감지하면 선천성 면역계에 병원균이
들어왔다는 경보를 울린다. 1989년 미국 예일대의 유명한 면역학자인 찰스 제인웨이 교수는 선천성 면역이 병원균 감염 초반에
중요할 뿐 아니라 후천성 면역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선천성 면역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초기 방어에 문제가
생기고, 후천성 면역계도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천성 면역계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해
그의 주장은 매력적인 가설로만 머물러 있었다.
이
때 TLR을 발견해 선천성 면역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사람이 호프만 교수다. 그는 인간과 비슷한 선천성 면역계를 가진 초파리에
주목했다(초파리는 후천성 면역계가 없다). 생김새를 결정하는 유전자인 톨(Toll) 수용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초파리는
아스펠로길루스(Aspergillus fumigatus)라는 곰팡이에 감염되면 죽어버렸다. 이 곰팡이에 감염됐을 때 면역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프만 교수는 동료인 브루노 르매트리 박사와 함께 사람의 몸에도 유사한(Toll like) 수용체가
있으며 선천성 면역계가 작동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1년 뒤 보이틀러 교수는 생쥐를 이용해 TLR이 병원균을 직접
인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강력한 면역 반응 부추기는 수지상세포
발
표 사흘 전에 작고한 랠프 슈타인만 박사는 선천성 면역과 후천성 면역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수지상세포를 발견했다. 수지상세포는
나뭇가지가 뻗어 있는 것처럼 생겨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혈액이나 림프, 피부, 조직 등 우리 몸 전체에 퍼져 있다.
슈
타인만 박사는 호프만 교수와 보이틀러 교수가 TLR을 발견한 것(1990년대)에 앞서 1970년대에 이미 수지상세포를 발견했다.
그는 후천성 면역세포, 즉 B세포와 T세포가 어떻게 병원균이 침투했음을 알아내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이들 세포는 감염되자마자 즉각
반응하는 세포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병원균의 침입을 알리고 활성화시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지상세포는 병원균이나 종양을
발견하면 잡아먹고 분해한 뒤 T세포에 이를 알렸다. T세포를 활성화시켜 더 빠르고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올
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서로 다르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던 두 면역계가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기존 면역학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이들의 발견은 면역 활성 단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했다. 과학자들은 면역계 활성
메커니즘이 알려진 뒤 자가면역질환, 알레르기, 천식 같은 면역 질환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해왔다. 선천성 면역이 후천성
면역을 활성화하는 원리를 응용해 감염 질환을 예방하는 백신이나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학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말
작고한 슈타인만 박사도 자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췌장암을 치료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
자는 이번 연구 업적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넘어, 온갖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신문인 르몽드의 기자가 노벨상 수상 발표 직후 율레스 호프만 교수에게 던졌던 질문을
소개하겠다. 기자가 “노벨상 수상에 놀라셨나요?” 하고 묻자 호프만 교수는 “솔직히 말해 초파리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바늘에 균을 묻혀서 파리를 찌르는 연구가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순수 기초 연구가 목표와 경제적 논리를 강조하는 응용 연구보다 더욱 중요한
업적을 낳는다”는 호프만 박사의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 선천성 면역 사람이나 동물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저항력. 병원체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을 인식해 이를 제거한다. 병원균이 침입하면 즉각 작동한다.
- 수지상세포 항원전달세포 중의 하나. 나뭇가지 모양으로 표면적이 넓어 병원균을 만나기에 유리하다. 병원균을 인식하면 화학물질을 분비해 후천성 면역계를 활성화한다.
- 후천성 면역 다양한 수용체로 특정 병원균을 인식해 죽인다. 병원균이 침입한 뒤 2~3주가 지났을 때, 동일한 병원균이 다시 침입했을 때 작용하며 선천성 면역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다.
- TLR 톨 유사수용체의 약자다.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등 백혈구와 B세포, T세포 등 면역세포의 표면에서 병원균(미생물)을 인식한다. 선천성 면역계에 병원균이 들어왔음을 알린다.
- 글 이원재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1994 년 프랑스 파리 VI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6년까지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연세대 의대 조교수,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를 거쳐 올해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선천성 면역과 장내세균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 http://m.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872&category_type=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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