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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rch 17, 2012

솔직히 한국남자가 日남자보다 잘생겼지만.....

"21세기 한국 남자들, 어떻게 조선시대보다 옷을 못 입나"
일본에서 '레옹'이라 불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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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탈리아 남자는 20대 때이던 1980년대 중반 일본에 왔다. 한 건축가의 자료 수집 일을 돕기 위해서였다. 중국과 일본을 구별 못 해 "일본은 브루스 리의 나라"로 알고 있던 때였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레옹'이란 일본 남성잡지의 11년째 고정 표지모델이다.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이다.

그 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따라 하는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레옹족(族)'이라고 부르고, 그를 '패션모델'이 아니라 '롤 모델'이라고 칭한다. 그 잡지 '레옹'이 3월에 한국판 창간호를 냈고, 역시 이 남자가 표지뿐 아니라 속지 곳곳에 등장한다. "한국 아저씨들의 패션을 바꿔놓겠다"는 이탈리아 사내 지롤라모 판체타(50)를 지난 10일 밤 서울 논현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잡지 한국판에 실릴 화보를 밤샘 촬영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지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서양식 억양이 섞였으나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나는 약간 불량스러운 아저씨'

―'레옹'이라면 영화 '레옹'에서 따온 겁니까.

"그렇죠. '레옹'의 주인공처럼 '약간 나쁜 남자' 이미지와 그 이름을 따왔죠."

그가 말한 '약간 나쁜 남자'는 일본어 '조이 와루오야지(ちょい惡オヤジ)'를 뜻한다. 잡지 '레옹'에서 만들어낸 말로, '약간 불량스러워 보이는 중년남자'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무슨 일을 합니까.

" 패션모델 이외에 책도 쓰고 TV 고정출연도 하고 강의도 합니다. 최근 쓴 책이 '모두 행복해지는 법'이란 건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겁니다. 행복해지면 건강해지고, 건강해지면 일이 잘돼요. 일이 잘되면 돈이 들어오잖아요. 그 돈으로 패션에 신경을 쓰라는 거죠. 하하하."

―어떻게 일본에 오게 됐습니까.

"저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건축회사를 하고 계셔서 자연스레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건축가인 아버지 친구가 일본에 건축 관련 자료를 수집하러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오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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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 감독의 영화‘레옹’./조선일보 DB

―건축을 하던 사람이 어떻게 패션 아이콘이 됐나요.

"아버지 건축 일을 도우면서 홍보 일도 했습니다. 홍보를 하려면 옷차림이 중요하죠.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제가 옷을 무척 좋아했어요. '워모'라는 유명 패션잡지가 카탈로그 시절이던 때부터 그 카탈로그를 보면서 모델들의 포즈를 흉내 냈어요. 거기 나온 옷들은 너무 비싸서 비슷한 스타일과 컬러의 옷을 사입기도 했죠. 대학 때는 밀라노 패션쇼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본 패션모델들은 너무나 멋지고 천사 같아서, 내가 그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패션 일은 일본에서 시작한 겁니까.

"일본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장학금을 받고 일본 대학에 진학하게 됐어요.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그때는 그냥 일본 사회와 사람을 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언제든 고향에 돌아갈 집과 직장이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있었죠. 그래서 생활이 늘 색다르고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어로 '겡키(元氣)'라고 하는데, 늘 에너지와 흥이 넘쳐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NHK 이탈리아어 강좌에 출연하게 된 것이 패션계로 이어졌어요."

―어학 강좌와 패션이 무슨 상관인가요.

"1990년인가 일본어 학교에 다닐 때 NHK 직원이 찾아와서 이탈리아어 강사를 찾더군요. 그때 선택된 사람은 사실 내 이탈리아인 친구였어요. 그런데 구경 삼아 따라갔다가 그 친구는 떨어지고 제가 된 거죠. 그런데 이탈리아어 강좌는 인기가 없어서 제작비가 적었고, 스타일리스트 없이 제가 옷을 사입어야 했어요. 그때 어려서부터 몸에 익어온 제 패션감각이 살아난 거죠. 어학 강좌보다 제 옷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제가 사 입은 옷이 뭐냐며 팔리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우리 옷을 입어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공영방송의 어학강좌는 인기 없는 프로그램인데요.

" (엄지를 치켜세우며) 맞습니다. 그런데 제 프로그램은 인기 1위 영어 강좌를 제치고 시청률이 25%까지 올라갔어요. 교재도 가장 많이 팔리고요. 도대체 누가 가르치기에 그렇게 됐느냐고 신문·방송에서 인터뷰가 막 들어왔지요. 강좌가 아니라 버라이어티 쇼처럼 진행했거든요. 나중엔 아예 일본 신인 연예인들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함께 NHK에 갔던 이탈리아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서점을 하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머리까지 벗겨졌다네요. 하하하. 나 역시 그때 대충 일본 생활을 접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면 미래가 뻔했죠. 지금쯤 아버지 회사 사장을 하면서 정치인, 마피아들과 어느 정도 커넥션도 있을 것이고…."

―이탈리아어 강좌를 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거군요.

" 그래요. 제가 발견한 재능은 '커뮤니케이션하는 재능'이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내가 말을 하고 있으면 나의 기운이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프로그램은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다 보는 프로그램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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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레옹 한국판 창간호.
―그러다가 '레옹'의 제안을 받았군요.

"NHK에서 시작해 여러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인이 됐습니다. 옷을 잘 입는다고 패션 브랜드에서 좋아하는 인물이 됐죠. 또 제가 이탈리아 사람이니까 페라리나 마세라티 같은 자동차에서도 모델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러다가 '레옹'에서 창간과 함께 1년간 표지 모델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어요. 잡지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저와 잘 맞았어요. 패션, 자동차, 오토바이, 스포츠…."

―어떤 잡지의 표지모델을 11년째 한 사람이 하는 잡지가 또 있습니까.

"없죠. 작년 11월에 10주년 기념호가 나왔을 때 알아보니, 기네스북에 올릴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어학 강사에서 패션 아이콘으로

―남성 잡지 모델로 뭘 가르쳐주려고 했습니까.

" 아저씨들도 멋있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배가 좀 나왔어도 멋져 보이는 옷을 입으면 됩니다. 그런데 일본 아저씨들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오로지 감색 수트에 검은색구두만 고집했죠. 저는 계속 '갈색 구두를 신어도 돼'라고 말했죠. 기본적으로 멋져 보이고 싶은 욕망은 70~80대 노인들에게도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이 다를 뿐이죠."

―멋진 옷이란 것은 유명 디자이너 옷을 뜻합니까.

" 물론 돈이 있는 사람들은 패션잡지에 나오는 멋진 옷을 사 입으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잡지를 보고 응용해서 비슷한 걸 입으면 돼요. 열심히 패션잡지를 보다 보면 그런 센스가 생겨요. 그런 노력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열심히 돈 벌어서 비싼 옷을 사는 수밖에 없겠군요. 하하하."

―한국 아저씨들의 패션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한국에 열 번쯤 왔는데, 한국 남자들은 일본 남자들보다 체격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어요. 그런데 옷은 못 입어요. 한국의 전통 유산을 보면 컬러가 아주 좋아요. 특히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사진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색깔의 대비와 한복의 유려한 선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다들 어깨에 '뽕'이 들어간 재킷을 입고 너풀너풀하게 통이 넓은 바지를 입어요. 역사적으로 물려받은 패션감각이 있는데 그걸 꺼내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이탈리아 남자들은 누구나 다 패션감각이 뛰어납니까.

" 이탈리아에서는 어려서부터 옷을 한 벌씩 사주지 않고 윗도리 따로 바지 따로 사줍니다. 그러면 각각의 옷을 조합해 입는 훈련을 하게 되죠. 게다가 이탈리아는 건물이나 자동차나 밝은 색이 많아요. 확실히 색깔에 대한 감각은 발달한 것 같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다들 '멋쟁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탈리아인의 시각으로 보면 좀 시골사람처럼 보입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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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년남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탈리아 모델 지롤라모 판체타. 그는“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패션 감각이 있으며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그런 패션을‘약간 불량해 보이는 아저씨 패션’이라고 불렀다. /오종찬 기자
―패션에 무감각한 남자들이 가장 손쉽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은 무엇입니까.

"재킷 윗주머니에 꽂는 손수건과 넥타이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복 두 벌과 넥타이 몇 개, 구두는 있을 겁니다. 넥타이에 변화를 주면 인상이 달라집니다. 재킷에다가 청바지를 입으면 또 달라지고, 거기에 스니커즈를 신으면 많이 달라지죠."

―그것이 당신이 말하는 '약간 나쁜 남자'의 패션인가요.

" 그 말의 뜻은 '약간 나쁜 남자'가 맞지만, '아주 나쁘지 않고 조금만 나쁜 사람'이란 의미도 될 수 있지요. 뭔가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는 사람,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런데 일본에서도 그걸 '약간 나쁜 아저씨'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야쿠자들 사이에서도 이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나쁜 아저씨가 아니라 약간 나쁜 아저씨들'이라고 말이에요. 하하하."

―한국 남자들에게서 받은 또 다른 인상은 무엇입니까.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매력이 있습니다. 그걸 패션에 살리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에 있었다면서요.

" 제가 10대 때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소속 청소년 팀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지금도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팀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리포터를 했었어요. 물론 한국과 이탈리아의 4강전도 중계를 했지요. 그때 나는 한국인들의 열정을 봤습니다. 패션은 볼 게 없었어요. 모든 사람이 빨간색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이탈리아에 지고 있을 때 관중석에서 무슨 진동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저까지 오싹할 정도의 바이브레이션이었어요. 그 진동이 마구 퍼지더니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에게 옮아가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리고는 골! 결국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겼잖아요. 나는 이탈리아 편이었지만 그때 대단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에게도 그런 게 있거든요. 일본에서는 그런 감동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알라딘의 램프가 있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피곤하거나 지쳐 보이지 않네요.

" 물론 저도 우울하거나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뭔가 시커먼 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시커먼 상황에서도 분명히 밝은 곳이 있습니다. 그럴 때 애써서 밝은 곳을 보고 있으면 금방 회복됩니다. 나는 그걸 믿습니다. 게다가 나는 남이 나로 인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그런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그것이 당신의 인생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나는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건축가의 길을 걸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 방식대로 패션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일본 여행 기회가 생겼고, 이탈리아어 강의라는 일을 가졌죠. 거기서 내 안에 있던 꿈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애초 예상할 수 없었던 길로 가게 됐습니다. 누구나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항상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기 쉽죠. 우리에게는 각자 하나씩의 알라딘의 램프가 있습니다. 항상 그 램프를 품에 껴안고 열심히 문지르면 언젠가 지니가 펑, 하고 나타납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예를 들어,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진심으로 돈이 필요하다고 믿고 원하면 어디선가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깁니다. 갑자기 공돈이 생기는 게 아니라 친한 사람이 나타나서 도와준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죠.

"하하. 그럴까요. 내가 어렸을 때 패션 카탈로그를 보면서 일본에서 패션모델로 성공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의 나를 보세요.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이렇게 유명해졌잖아요. 뭔가 처지는 일이 있을 때 우울해하면 더 가라앉게 됩니다. 늘 밝은 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죠. 중요하면서도 쉬운 일은 늘 웃는 것입니다. 약간이라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가 쉬워집니다. 엘리베이터에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 탔을 때도 약간 미소를 지어 보세요. 그런 생활 태도에서 어떤 계기가 생기고, 그 계기를 잡으면 됩니다. 누구나 찬스를 만나지만, 그게 찬스라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그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40세에 잡지 모델이 되어 50세가 됐습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농담으로는 죽을 때까지 하자고 합니다만, 우연히 시작한 거니까 갑자기 끝날 수도 있겠죠."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오래 해온 일을 그만두려면 섭섭하지 않을까요.

" 그럴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잘 나가는 일을 그만두면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패션잡지 편집장 제안도 받고 있는데, 패션모델은 해도 패션잡지 편집장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역 때 잘 못하던 축구선수가 좋은 감독이 될 수도 있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거죠."

인터뷰는 두 시간 반이나 계속됐다. 적어도 겉으로 볼 때 그는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패션감각보다 에너지의 원천을 엿본 듯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16/20120316016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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