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이종욱 총장, 신라가 한국사의 정통... "내물왕 이전 역사 살려야"
서강대 이종욱 총장은 통일신라는 신라+백제+고구려의 총합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내물왕 이전의 신라를 계승했으며, 한국인은 삼국의 후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라인의 후손이라고 한다.
"...(중략) 한국사에서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살려내는 일이 왜 중요할까. 첫째, 그 시기 신라인들이 현재 많은 한국인의 시조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주창한 한국·한국인·한국사회·한국문화에 유산을 남긴 역사를 탐구하는 한국사에서 내물왕 이전의 신라, 즉 경상도 지역의 신라를 한국인의 역사적 고향으로 본다."
근자에 출간된 사론집을 통해 이종욱 교수는 신라정통론의 입장에서 고구려정통론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오늘날 한국인의 성씨에 신라계 성이 주류이고 고구려나 백제계 성이 없는 것이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한국인을 만든 역사의 출발점은 신라이며, 그것도 내물왕 이전 시기의 신라, 즉 경상도 지역의 신라라고 하였다. 고구려는 현재 한국과 한국인을 만드는데 남긴 역사적 유산이 거의 없으며, 발해는 말갈족의 역사일 뿐이고, 민족의 시조 단군은 허구이며, 고조선의 역사유산은 후세에 전해질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민족과 반외세를 강조하는 고구려 정통론적인 역사 인식은 결국 북한의 평양 정권 정통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한민국 성씨 고찰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정복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절대다수의 한국인이 신라인을 시조 중시조로 삼고 있다. 만일 고구려가 삼한을 정복 했다면 한국인은 극씨 중실씨 소실씨 명림씨 을씨 창씨 음씨 등 고구려 지배 세력이 사용한 성을 많이 쓰고 있을 것이다. 한편 백제가 삼한을 정복 했다면 한국인은 부여씨 해씨 사택씨 묘씨 협씨 골씨 등 백제 지배 세력이 사용한 성을 가진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삼한을 정복한 건 바로 신라다. 그렇기에 현재 한국인은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사람이 다수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 후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등 제 분야도 신라에 기원을 두게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적 유산은 한국사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현대의 신라 성씨는 구한말에 족보조작을 통해서 생겨났다' 그러나 고려조선시대에도 고구려백제 성씨를 사용한 지배층은 없었다. 성씨와 족보는 그 역사를 달리한다. 성씨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족보가 만들어졌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일반인들에게 성씨가 보급된 시기를 고려 초로 잡고 있다. 따라서 족보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성씨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
노비가 무조건 무성층이라는 인식도 잘못되었다. 평민도 먹고 살기가 어려우면 스스로 노비가 되기도 했고, 양반도 죄를 지으면 노비가 됐다. 이런 노비들은 성을 가졌다. 한국에서 노비가 많았던것은 폐쇄적인 신분사회 탓인데, 부모중에 한명이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 된다. 장영실은 아버지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공노비였다. 따라서 평민을 늘리는 정책이 없었다면 조선시대는 시간이 갈수록 노비가 많아지는 구조였다. 반면 중국에선 부모가 노비라도 자식은 평민이었다.
통계청의 2000년 인구통계조사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가 5개 있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다.
김해 김씨 412만(신라계)
밀양 박씨 303만(신라계)
전주 이씨 261만(중국계)
경주 김씨 174만(신라계)
경주 이씨 142만(신라계)
위의 자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씨가 대부분 신라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본관이 총 6개가 있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다.
경북 경주 482만
경남 김해 449만
경남 밀양 340만
전북 전주 321만
경남 진주 137만
경북 안동 126만
위의 자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타 중요한 성씨로 최씨,정씨,윤씨,한씨 등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 성씨내에 포섭된다. 이 중 최씨는 경주 최씨와 전주 최씨가 중핵을 차지하는데, 모두 최치원과 최언휘(최치원의 사촌)를 시조로 한다. 정씨는 두 갈래가 있는데, 정丁씨는 중국계이며 정鄭씨는 토종 영남계로써 경주 정씨와 동래 정씨가 핵심이다. 윤씨는 조선씨족통보에 따르면 칠원(경남)윤씨가 최초의 윤씨이며 역사도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아마 칠원에서 모든 윤씨가 분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씨도 이미 신라 문무왕 비문에 나온다(대사 신 한눌유). 요컨대 한국 성관은 신라계가 7-80프로, 중국계가 2-30프로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신라계 성씨와 경상도 지역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민족의 정체성이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역사 속의 한국인은 신라인의 후손으로 채워졌다. 한국인 다수가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성과 본관을 갖고 있는 것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의 결과다.
한국에서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백제계 성씨는 일본에는 다수 발견된다. 신찬성씨록은 광인천황이 명해 편찬한 관찬 씨족 열람서로 1182씨족을 고베쓰(황실의 자손), 신베쓰(일본신의 자손), 쇼반(도래인의 자손)으로 분류해 기술했다. 이 통계를 보면, 전체 1182개 씨족중에서, 30프로가 귀화인이다. 그 중 중국계가 152개로 가장 많고, 백제계가 143개로 2위를 차지한다. 백제계 가운데 10명은 쇼반(도래인)이 아닌 고베쓰(황실 자손)에 분류되었으니,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백제와 일본은 같은 집안이었던 것이다.
일본 신찬성씨록에 나타난 백제계 성씨의 종류와 숫자.
도모왕계(동명왕) 13개 (일본측 사료에는 백제 건국자가 도모왕으로 나온다)
백제왕계 10개
속고왕계(초고왕) 9개
전지왕계 5개
피류왕계 2개, 비유왕계 2개, 비류왕계 1개
명왕계(성왕) 2개
호왕계(무왕) 2개
말다왕계(동성왕) 2개
귀수왕계(구수왕) 1개
사반왕계 1개
근속고왕계(근초고왕) 1개
근귀수왕계(근구수왕) 1개
진사왕계 1개
의자왕계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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