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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 2014

일본의 백제 성씨

일본속의 한국 성씨들 

우리 선조들은 삼국시대에 이미 성씨(姓氏)를 사용하였다. 그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연개소문(淵蓋蘇文), 백제의 흑지상지(黑齒常之), 부여충성(扶餘忠勝)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성씨는 단일(單一) 성씨보다 복수(復數) 성씨가 많았다. 

그러나 일본은 왕실과 귀족들은 한국의 영향으로 오래전부터 성명을 가졌으나 대부분 서민들은 19세기 후반에야 성명을 가진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의 고대사에는 수많은 한국 고관 명사들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일본 역사에서 가장 먼저 복성(復姓)의 이름으로 등장한 것도 백제사람 수수허리(須須許里)이다. 일본의 고대 씨족을 기록한 사서(史書)로 주목되는 것이 815년에 편찬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이다. 이 성씨록에 등장하고 있는 고대 선조들은 신라, 백제, 고구려 왕족과 고관들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 기록된 성씨는 약 300여 개인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백제 왕족의 성씨로는 일본어로 쿠다라(百濟), 이와노(石野), 오오카(大丘), 마쓰다(沙田), 스가노(菅野), 오카야(岡屋), 하루노(春野), 오하라(大原), 나카노(中野), 쿠니모토(國本), 나가다(長田)등의 복성과, 하야시(林), 후미(文)씨 등 단성이 있다. 

신라 성씨들은 야마무라(山村), 미야께(三宅), 우나바라(海原), 오이치(大市), 다께하라(竹原), 야마다(山田), 토요하라(豊原) 등의 복성과 이토시(系) 등 단성이 있다. 

고구려 성씨는 고마(高麗), 나가세(長背), 나니와(難波), 고부(後部), 다카이(高井), 다카다(高田), 쿠와하라(桑原), 아사케(朝明), 요시이(吉井) 등의 복성과 고(高), 오(王), 시마(島)씨 등의 단성이 있다. 

그리고 괄목할 것은 고대 일본의 벼슬한 사람의 관명과 성명을 ‘중부덕솔 목협금돈(中部德率 木傀今敦)’ 등과 같이 백제와 똑같이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즉, 관직 명칭과 성씨와 이름의 3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고대 나라(奈良)시대 직제 등이 일본 조정의 실권을 가진 백제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책 의하면 1603년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명자대도 금(命字帶刀 禁)’이란 법령을 만들어 평민이 성을 갖고 허리에 칼을 차고 무사 귀족 행사를 못하게 하고, 만약 이를 어기면 엄벌을 내렸다.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1870년 9월 19일 일본정부에서 모든 사람이 성씨를 지어서 사용하도록 포고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평민도 묘오지(苗字ㆍ名字)를 지어 쓰도록 허락하노라’ 하였으니 그전까지 일본 평민들은 성명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당시 일본정부는 호적을 확실히 하여 징병목적에 두고 있었으나 오랜 봉건사회에서 지내온 평민들은 성명을 짓지 않고 신고를 기피하였다. 일본정부는 1871년 일본내각의 최고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천민들도 평민으로 신분을 올려주는 ‘태정과포고’라는 ‘신분해방령(身分解放令)’을 내려 사회 계급을 화족(華族), 사족(士族), 졸(卒), 평민(平民)의 4민(四民)으로 분류하였다. 그후 1873년 태정관은 다시 징병령을 내려 만 20세 이상 남자는 3년간 군 복무를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간혹 좋은 성씨를 선호하여 막부관가에 돈을 바쳐 성씨를 사는 자도 있었으나 많은 평민들은 세금과 군대 가기를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에 태정관은 1875년 2월에 “명자필칭의무령(命字必稱義務令)”을 내려 성씨를 짓지 않으면 엄벌하도록 하였다. 

일본 교민들에 의하면 그 당시 한꺼번에 그 많은 창씨를 하려니 갖가지 애피소드가 많았다고 한다. 갑자기 성씨를 짓기 위해 유식자들의 행패로 별개별 성씨가 생겨난 것이다. 예컨데 큰뱀(大蛇), 여우코(狐鼻), 메도키(百目鬼), 히토카베(人首), 우키(浮氣:바람끼), 시나씨(尻無:엉덩이가 없다), 쇼오유(醬酒: 간장), 와쇼쿠(華食), 후로(風呂: 목욕탕), 호즈미(8월1일), 토우지(冬至), 누쿠이(明日), 시토(刺刀: 날카로운 칼), 도께(時計), 이에데(家出), 나나시(名無), 반치(番地) 등이다. 

와타나베 미치오(渡邊三男)교수는 그의 저서 ‘일본의 성자(姓字)’에서 일본성의 28%가 백제ㆍ신라ㆍ고구려인의 기본성이며, 하라지마 레이지(原島 禮二)교수도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성씨 가운데 32%가 한국에서 온 성씨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성씨의 30% 이상이 한국에서 건너간 성이며, 1875년 이후 지어진 대부분 성씨도 한국 고대 성씨를 모방하였다고 보여진다. 

특히 현재 일본의 성씨 가운데 신라에서 건너간 야마다(山田)ㆍ시미즈씨(淸水), 백제에서 건너간 하야시(林)ㆍ야마쿠지(山口) 등은 일본에서 20대 안에 들어가는 대성(大姓)이다. 또한 쿠다라(百濟)ㆍ쿠다라키(久多良木)ㆍ시리기(新羅)ㆍ시라키(白木)ㆍ고마(高麗)ㆍ코마(駒)씨 등의 삼한시대 국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인의 후예들도 아직도 여러 곳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5174&sca=일본&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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