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北地域 靑銅器時代 墓制와 住居址
목차
1. 무덤과 주거지의 관계
2. 송국리형주거지와 묘제의 관계
3. 지석묘의 시기문제
金奎正
(전북문화재연구원)
全北地域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크게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으로 구분된다. 지형적인 특징은 서부지역이 낮은 구릉과 너른 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나, 동부 지역의 경우 산지가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징은 유적의 분포양상에서도 차 이를 보이고 있다. 즉 청동기시대 유적의 분포에 있어 서부지역에 유적의 밀집도가 높 게 나타나고 있으며 고창지역을 제외하고는 주로 집자리의 조사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 러나 동부지역은 아직까지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진안 용담댐수몰지역에서 알 수 있듯이 지석묘의 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동부지역의 경우 아직까 지 이렇다 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전북지역에서는 고창지역에 가장 많은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고, 주로 동부지역을 중 심으로 지석묘의 군집양상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서부지역인 익산, 군산, 전주, 완주, 김제지역에서는 지석묘는 밀집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익산지역의 경우 지석묘는 단 1 기도 조사된바 없다. 그러나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는 다수 확인되었다. 이는 지역에 따 라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전북지역 청동기시대 묘제로는 지석묘, 석관묘, 토광묘(석개토광묘 포함), 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고 있다. 특히 지석묘는 지상에 노출되어 있어 지역적인 분포양상 을 파악하기에 용이하고 현재까지 전북지역에서는 고창지역에 최대의 밀집양상을 보이 고 있다. 고고학적인 조사에 있어서도 지역적인 분포양상이 확인되고 고창지역과 진안 용담댐수몰지역의 경우 분포양상과 발굴조사를 통하여 다양한 형식의 지석묘가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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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전북지역 지석묘에 대한 연구는 김선기, 김승옥, 김진 등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고 있
으며 지역적으로 볼 때 고창지역의 지석묘는 주로 김선기에 의해, 진안 용담댐수몰지역 의 지석묘는 김승옥, 김진 등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이들 연구자들은 그 지역 지석묘에 대해 직접 조사를 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그만큼 많은 성과를 이루 었다 할 수 있다. 또한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에 대한 연구는 김승옥에 의해 이루 어졌다. 그는 이들 세가지 형식의 묘제를 송국리형묘제로 설정하고 송국리형주거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송국리형묘제로 파악하고 있는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에 대해 살펴보면 석관묘의 경우 전기부터 사용된 묘제의 한 형식으 로 볼 수 있고, 옹관묘의 경우도 송국리문화 밀접한 관련은 있지만, 옹관으로 사용된 토 기에 있어 전기의 특징적인 직립구연 호형토기가 사용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옹관이 일반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북지역의 고고학적인 조사성과는 묘제에 있어서는 지석묘의 경우 진안 용담댐수몰 지역에서 조사된 지석묘와 고창지역 지석묘의 형식과 분포현황을 통해 이미 밝혀진바 있고,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에 있어서도 청동기 시대 전시기에 걸쳐 다양한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많은 연구 과제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덤과 주거지의 관계 및 지석 묘와 타 무덤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몇 가지 의문된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
1. 무덤과 주거지의 관계
청동기시대 무덤은 지석묘,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 등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주거지도 청동기시대 전시기에 걸쳐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는데 정작 무덤과 주거지를 아우르는 연구는 김승옥에 의해 송국리형주거지와 송국리형묘제로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연구성과가 있을 뿐, 지석묘와 주거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연구성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석묘를 축조한 집단과 주거지를 축조한 집 단 사이에는 동질성 보다는 이질성이 강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지 석묘와 송국리형주거지의 관계를 통해 더욱 명확해 졌는데, 지석묘가 토착적인 묘제로 인식되는데 반하여 송국리형주거지는 외래문화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파악하여 이들 이 질적인 문화요소가 상호간의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하였다.
전북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동부지역인 순창 원촌에서 각목 돌대문토기가 출토된 조기의 특징적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고, 전기의 특징적인 주거지 는 서부지역인 익산 영등동, 전주 효자동, 성곡, 장동, 김제 제상리와 동부지역인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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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동에서 조사되었다. 중기 이후의 주거지는 송국리형주거지로 대표되며 전북지역 전 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진안 용담댐수몰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부 터 많은 수의 다양한 형식의 지석묘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정작 무덤과 관련된 주거지 는 진안 여의곡과 농산에서 수기가 확인될 뿐 지석묘에 비해 수적으로 미미하다 할 수 있다.
진안 여의곡의 경우 지석묘가 전기부터 중기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 으나 전기 주거지는 조사된바 없고, 중기로 편년되는 송국리형주거지 7기가 조사되었다. 물론 청동기시대 유적의 분포양상으로 보아 무덤공간과 주거공간이 구분되어 무덤과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주거지가 분포한다고 하지만 주변지역에서도 전기주거지로 볼 수 있 는 주거지는 조사된바 없다. 이러한 양상은 고창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 는데, 고창지역도 다양한 형식의 지석묘가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는데 반하여 주거지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확인된 지석묘의 경우 전기부터 중기까지 지 속적으로 축조되고 있는데 반하여 이와 관련된 주거지는 송국리형주거지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전기의 지석묘와 관련된 주거지가 어떤 형태의 주거지인가 하는 문제와 익산 영등동, 전주 효자동, 성곡, 장동, 김제 제상리 등에서 확인된 전기 주거지와 관련된 무 덤은 어떠한 무덤인가 하는 문제 등 무덤과 주거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2. 송국리형주거지와 묘제의 관계
송국리문화 요소는 송국리형주거지 이외에도 무덤에 있어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 가 송국리문화의 한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송국리형묘제로 인식되고 있는 이들 묘제는 송국리문화 형성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묘제로 지석묘와 함께 전기부터 묘 제의 한 형식으로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국리형주거지와 묘제의 관계를 살펴보면 송국리형주거지는 분포양상으로 보아 전국 적인 분포를 보인다. 이로보아 특정지역에서 발생한 송국리문화가 주변지역으로 일방적 인 전파로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그동안 금강중하류에서 형성된 송 국리문화가 주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주거지의 변화양상이 나타나고 묘제의 결합양상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주거지와 묘제에 있어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에서는 송국리형주거지와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가 결합되지만, 지석묘가 밀집되어 있는 고창지역의 경우 지석묘와 송국리형주거지가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양상 은 전남지역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지석묘를 토착묘제로 본다면 이들 지석묘를 축조했던 집단의 주거지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지석묘를 축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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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 왜 주거지에 있어 송국리형주거지를 받아들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3. 지석묘의 시기문제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후기까지 긴 시간동안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북 지역의 경우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고창지역 지석묘에서 점토대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까지도 지석묘가 무덤의 한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남지역과는 달리 아직까지 지석묘에서 청동유물이 출토된 예는 없다. 진안 용 담댐에서 많은 수의 지석묘가 조사되었지만 청동유물이 출토된 예는 없다. 물론 지석묘 에서 출토된 석검과 석촉을 통해 볼 때 전북지역 지석묘의 시기는 전기부터 후기까지 축조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 지석묘와 연관시킬 수 있 는 주거지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아 무덤으로는 전기의 편년이 가능하지만 이들 지석 묘를 축조한 집단의 주거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이와 아울러 전남지역 지석묘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비파형동검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 에서 그 상징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지석묘의 경우 송국리형주거지를 파 괴하고 축조되고 있고, 지석묘 하부에서 백제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주목된다. 물론 지석 묘 하부에서 백제토기가 출토되는 양상은 후대에 지석묘를 재이용하면서 유물이 매납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지역보다는 전남지역에서만 이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이 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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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dolmen.org/file/pdf/s337-34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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