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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anuary 4, 2014

충청도 송국리 문화의 북규슈 요시노가리 영향

일단 참고할 수 있는 논문과 보고서는 유적지 이름을 치고 찾아보세요(중간에 존댓말 대신 반말로 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1.야요이시대의 양상과 한반도와의 관계



1)주거지



야요이시대의 주거지 양상은 일단 수혈주거지인 것이야 별 차이 없지만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취락의 특성으로 야요이시대에 들어 환호취락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환호 취락은 마을 주변에 호(참호할 때 그 호입니다)를 둘러 방어시설을 갖춘 것으로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왜국의 난리가 났다는 기록과 시기가 일치해 아마 전쟁이 활발히 일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취락구조는 울산-포항을 중심으로 하는 검단리 유형에서 건너 왔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찾아볼만한 논문 및 보고서: 검단리 유적 보고서와 또 관련 논문 최대한 찾아보십시오...아마 보고서밖에 없는 걸로 알지만, 일본쪽 보고서와 논문으로는 찾을 수 있으면 환호취락 관련으로 오사카 이케가미 유적, 요시노가리 유적과 카라코카기유적, 아사히 유적, 오오츠카 유적의 논문과 보고서를 찾아보세요 



2)묘제



야요이시대 묘제는 옹관묘(죠몽시기 토관묘와는 다름), 지석묘(고인돌 주로 큐슈 소재), 석관묘, 목관묘, 방형주구묘(방형 저분구묘라고도 부름) 또는 분구묘(고층분구묘)가 있으며 특히 이중 주구묘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이것이 형식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훗날 야요이 시대와 고분 시대를 나누는 전방후원분으로 발전함, 참고로 이 주구묘는 한국에서 건너온 특이한 묘제이며 아직까지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찾아볼 만한 논문 및 보고서: 일단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주구묘라고 치면 왠만한 논문들이 다 나올 것이며 한반도에 나온 주구묘에 대한 자료를 본 다음 일본측 주구묘 관련 논문을 찾는 것이 좋음 오카야마현 타테츠키 분구묘쪽 논문이나 보고서 찾아보세요, 지석묘의 경우 일본에서 그리 특징적인 묘제가 아니어서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음 옹관묘의 경우는 한반도에서 송국리 문화의 도작문화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토기 



죠몽토기 시대의 화려한 무늬가 있던 토기들은 사라지고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가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게 됨 다만 특이한 것은 야요이 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송국리 문화와는 토기 기형이 좀 다름(송국리 토기는 흔히들 장란형 토기라고 부르지만...이것만 나오는 것은 아님)오히려 한반도 조기 청동기 문화 유형으로 알려진 미사리 유형의 토기와 비슷하다는 말도 있음 하지만 야요이 토기 기형도 다양하고 이는 한반도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특정 문화 유형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는 좀 힘듬(한반도 청동기는 조기는 미사리 유형 전기는 가락동, 역삼동-흔암리 유형 등등이 있고 후기는 송국리 문화가 한강 이남 지역 대부분에 보이고 일부 포항-울산에 검단리 유형이 자리잡고 있음)



4)기타



일단 야요이 문화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여 송국리 문화로 이 문화에서 건너간 도작 문화는 일본의 대변혁을 일으킴 특히 도작문화와 관련해서는 송국리 문화의 석기 농기구와 야요이 시대 석기 농기구가 사실상 똑같아 일본에서도 송국리 문화가 야요이 형성에 큰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음 더 나아가서는 송국리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넘어와서 죠몽인을 대체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임(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검단리 유형도 야요이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있음)



또 더 나아가서 기원전 5세기에는 일본에도 한반도의 청동기가 건너가 청동기를 생산하는데 세형동검, 동모, 동과, 동탁이 넘어감...다만 특이한게 일본에서는 청동기들이 원래 용도보다는 "보는 용도"의 성격이 강해져서 동검, 동모, 동과, 동탁이 모두 광대형, 광폭화되어 버림...특히 동탁은 한반도에서 나온 것은 매우 작은 방울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시기가 흐를 수록 커져서 높이 144cm에 무게 45kg의 방울로 발전함...이를 보통 표현하기를 "듣는 동탁"에서 "보는 동탁"으로 바꼈다고 함 



찾아볼 만한 논문: 일단 부여 송국리와 관련된 보고서와 논문은 모두 찾아보는 것이 좋음...사실 야요이 시대 연구에 송국리는 결코 빠지지 않는 주제임, 이외에 청동기 자료를 알고 싶으면 대전 괴정동, 카모이와쿠라 유적과 코오진다니유적 보고서와 논문이 좋음 

일단 참고할 수 있는 논문과 보고서는 유적지 이름을 치고 찾아보세요(중간에 존댓말 대신 반말로 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1.야요이시대의 양상과 한반도와의 관계



1)주거지



야요이시대의 주거지 양상은 일단 수혈주거지인 것이야 별 차이 없지만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취락의 특성으로 야요이시대에 들어 환호취락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환호 취락은 마을 주변에 호(참호할 때 그 호입니다)를 둘러 방어시설을 갖춘 것으로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왜국의 난리가 났다는 기록과 시기가 일치해 아마 전쟁이 활발히 일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취락구조는 울산-포항을 중심으로 하는 검단리 유형에서 건너 왔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찾아볼만한 논문 및 보고서: 검단리 유적 보고서와 또 관련 논문 최대한 찾아보십시오...아마 보고서밖에 없는 걸로 알지만, 일본쪽 보고서와 논문으로는 찾을 수 있으면 환호취락 관련으로 오사카 이케가미 유적, 요시노가리 유적과 카라코카기유적, 아사히 유적, 오오츠카 유적의 논문과 보고서를 찾아보세요 



2)묘제



야요이시대 묘제는 옹관묘(죠몽시기 토관묘와는 다름), 지석묘(고인돌 주로 큐슈 소재), 석관묘, 목관묘, 방형주구묘(방형 저분구묘라고도 부름) 또는 분구묘(고층분구묘)가 있으며 특히 이중 주구묘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이것이 형식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훗날 야요이 시대와 고분 시대를 나누는 전방후원분으로 발전함, 참고로 이 주구묘는 한국에서 건너온 특이한 묘제이며 아직까지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찾아볼 만한 논문 및 보고서: 일단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주구묘라고 치면 왠만한 논문들이 다 나올 것이며 한반도에 나온 주구묘에 대한 자료를 본 다음 일본측 주구묘 관련 논문을 찾는 것이 좋음 오카야마현 타테츠키 분구묘쪽 논문이나 보고서 찾아보세요, 지석묘의 경우 일본에서 그리 특징적인 묘제가 아니어서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음 옹관묘의 경우는 한반도에서 송국리 문화의 도작문화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토기 



죠몽토기 시대의 화려한 무늬가 있던 토기들은 사라지고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가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게 됨 다만 특이한 것은 야요이 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송국리 문화와는 토기 기형이 좀 다름(송국리 토기는 흔히들 장란형 토기라고 부르지만...이것만 나오는 것은 아님)오히려 한반도 조기 청동기 문화 유형으로 알려진 미사리 유형의 토기와 비슷하다는 말도 있음 하지만 야요이 토기 기형도 다양하고 이는 한반도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특정 문화 유형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는 좀 힘듬(한반도 청동기는 조기는 미사리 유형 전기는 가락동, 역삼동-흔암리 유형 등등이 있고 후기는 송국리 문화가 한강 이남 지역 대부분에 보이고 일부 포항-울산에 검단리 유형이 자리잡고 있음)



4)기타



일단 야요이 문화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여 송국리 문화로 이 문화에서 건너간 도작 문화는 일본의 대변혁을 일으킴 특히 도작문화와 관련해서는 송국리 문화의 석기 농기구와 야요이 시대 석기 농기구가 사실상 똑같아 일본에서도 송국리 문화가 야요이 형성에 큰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음 더 나아가서는 송국리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넘어와서 죠몽인을 대체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임(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검단리 유형도 야요이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있음)



또 더 나아가서 기원전 5세기에는 일본에도 한반도의 청동기가 건너가 청동기를 생산하는데 세형동검, 동모, 동과, 동탁이 넘어감...다만 특이한게 일본에서는 청동기들이 원래 용도보다는 "보는 용도"의 성격이 강해져서 동검, 동모, 동과, 동탁이 모두 광대형, 광폭화되어 버림...특히 동탁은 한반도에서 나온 것은 매우 작은 방울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시기가 흐를 수록 커져서 높이 144cm에 무게 45kg의 방울로 발전함...이를 보통 표현하기를 "듣는 동탁"에서 "보는 동탁"으로 바꼈다고 함 



찾아볼 만한 논문: 일단 부여 송국리와 관련된 보고서와 논문은 모두 찾아보는 것이 좋음...사실 야요이 시대 연구에 송국리는 결코 빠지지 않는 주제임, 이외에 청동기 자료를 알고 싶으면 대전 괴정동, 카모이와쿠라 유적과 코오진다니유적 보고서와 논문이 좋음 





2. 고분시대양상과 한반도의 관계 



1)주거지



환호취락이 갑자기 폐기되어 버림, 즉 기존 환호를 매꾸어버리고 매립지 용도로 사용한 흔적이 나타남 다만 일부 지배층 주거지 주위에 소형의 환호를 설치해 보통 사람들과 구분하는 용도로 바뀜 



2)묘제



대표적인 무덤 형태로 전방후원분이 등장 이는 고분시대라는 시대구분 용어를 사용하게 된 계기임, 보통 3세기 들어서 등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주구묘의 형태가 발전하여 생긴 것으로 보고 있음, 또한 영산강 유역에서는 5세기 말 6세기초에 전방후원분들이 다수 나오고 있어 몇몇 임라일본부 신봉자들에게는 희망을(현재 가야 지역들은 고분 연구 결과 이쪽의 임라일본부는 깨졌음) 한국 고고학자들에게는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있으며, 이 무덤이 반남지역에 아직 마한 세력이 남은 증거라는 주장과 백제와 일본과의 돈독한 외교관계를 볼 수 있는 증거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음 



찾아볼만한 논문: 이쪽은 일본 고고학에 정통한 우재병 교수의 전방후원분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이분이 참고한 일본인들 논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음, 특히 츠데 교수 논문(이분 풀네임을 몰라서...)을 찾아보면 아주 친절하게 주구묘가 어떻게 전방후원분으로 바뀌는지 설명되어 있을 것임 





3)토기



토기는 야요이 시대와 비교해서 기술적인 발전은 있겠지만 큰 변화는 보이지 않음, 다만 전방후원분 주위에 둘러지는 원통형 하니와와 나팔꽃 하니와가 주목 받고 있음, 또 훨씬 후의 일이지만 신라-가야 지역에서는 5세기 이후에 기존 와질토기를 대체한 도질토기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일본에 건너가 스에키 토기를 형성함 





찾아볼 자료: 일단 하니와는 전방후원분에서 곁다리로 나올 것임...스에키 토기는 일단 신라-가야 토기자료 또는 와질토기-도질토기 자료를 찾는게 좋음(보통 도질토기 이전을 와질토기라고 하는데 와질토기가 같이 곁다리로 끼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다만 와질토기는 그 용어 자체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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