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에 실린 침미다례를 다룬 내 글과,『삼한사의 재조명』에 실린 일도안사 님(김상 교수님)의 글을 읽은 사람은 "만약 마한 사람이 제주도로 달아나 침미다례를 점령하고 나라를 세운 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마한 사람의 기록인『청주 한씨 족보』(이하『족보』로 적음)에 '침미다례'나 '탐라국'이나 '제주도'라는 말이 안 나오는 겁니까?"라고 물어볼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다. 만약 내가 마한의 유민이라면 나라가 망한 뒤 제주도로 달아나서 새 나라를 세운 마한 왕족의 이야기도 [족보]에 집어넣어 청주 한씨의 역사가 길고 오래되었음을 강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족보』는 마한의 마지막 세 왕자가 각각 다른 나라로 달아나 세 성씨(한씨, 기씨, 선우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말만 할 뿐, 제주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나는 제주도의 역사서인『왕세기』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왕세기』와 다른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탐라국(침미다례)을 세운 세 사람의 성씨는 고(高)씨, 양(梁)씨 - 양(良)씨라고도 한다 - , 부(夫)씨지 한(韓)씨나 기(箕)씨 - 기록에 따르면, 한韓씨족은 한韓을 점령하기 전에는 기箕라는 성씨를 썼다 - 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마한의 지배층이기는 했지만, 왕족이 아니라 귀족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마한(충청도)에서 살 때는 왕족이 아니었고, 침미다례(제주도)로 달아나 선주민을 정복한 뒤에야 왕이 된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족보』에 침미다례나 탐라국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족보』는 비록 마한의 역사를 다룬 책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왕족인 한韓씨들의 역사를 다룬 책이고, 따라서 다른 성씨(예컨대 귀족이나 백성)들의 역사는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족보』에 제주도 왕실의 역사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그런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임 : 그렇다면『왕세기』에 마한 귀족들의 제주도 도래와 정복이 안 나오는 까닭이 뭐냐고 물어보실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계보 조작'과 '정통성 확보'에서 찾는다. 침미다례의 새로운 왕족이 된 마한 귀족들은『삼국사기』의「백제본기」를 쓴 백제 왕족들이나『가락국기』를 정리한 가야의 후손들,『일본서기』를 쓴 일본 왕족들처럼, 침미다례의 왕통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하나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들의 출신지를 얼버무렸을 것이다.
http://www.histopia.net/zbxe/index.php?mid=neo&page=18&document_srl=1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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