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국은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바로 성씨 문제이다.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성씨들의 대부분이 신라 성씨이며
고구려계의 성씨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논리이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성씨로만
보면 사실 중국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수 십년전만
해도 우리 나라에는 유교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사실 많은 수의 한국사람들이 유교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요즘 사람 중에 논어 맹자를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유교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리타분하다고 욕먹
을지 모르지만 사실 수 십년전만 해도 족보 따지기 좋아하고 양반 상놈 나누던 사람들이 바로
한국사람이었다. 그러기에 한국인들에 성씨는 비록 가부장적 권위의식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핏줄을 결정짓는 단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성씨는 성씨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본관이라는 것이 있어 비록 한자로 쓰여지는
성씨는 같다고 하더라도 본관이 다르면 그 조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한국의 성씨의 대부분이 신라계 성씨라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는 김(金) 이(李) 박(朴) 삼성이다. 그 밖에 최(崔) 정(鄭) 등도 많다.
김씨의 대표적인 본관은 경주와 김해이다. 경주와 김해는 두 지역 모두 신라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경주는 신라를 김해는 신라에 합병된 가야를 대표한다. 경주 김씨는 신라의
왕족의 성씨이며 김해 김씨는 가야 왕족의 성씨이다. 김씨 중에도 유독 많은 성씨가 김해
김씨이다. 아마 잘은 몰라도 한국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김해 김씨일 것이다. 지하철 좌석에
아마 7명 정도 앉을 것이다. 열 명 중 한 명이 김해 김씨라는 것은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는
일곱 명중에 한 명은 김해 김씨 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2000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의하면 김해 김씨는 사백 십만여명이라고 한다 . 경주 김씨의 경우는 2000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의하면 백 칠십여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주 김씨의 경우 김해 김씨의 경우와는
다른 점이 있다. 지방에 파견된 경주 김씨가 그 곳에 뿌리를 내려 자신들이 터를 잡은 그 곳을
본관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경주 김씨로 나뉘어질 김씨들의 수는 백 칠십여
만명을 훌쩍 뛰어 넘을 것이다.
이씨의 경우 대표적인 본관은 경주와 전주이다. 경주 이씨는 그 본을 신라 육두품에
두고 있다. 육두품은 신라 고급 귀족의 계급이다. 서양의 귀족제로 따지면 공작정도
되는 위치이다. 경주 이씨도 결국 신라 계열인 것이다. 경주 이씨의 경우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백 사십 만여명이라고 한다. 전주 이씨의 경우도 그 시초를 신라에
두고 있다. 시조 이 한은 신라 문성왕때 사공벼슬을 지낸 분이다. 전주 이씨의 경우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이백 육십여만명이라고 한다.
박씨의 경우 대표적 본관이 밀양이다. 비록 본관이 밀양이나 박씨는 박혁거세로 더
유명하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말이다. 그러므로 박씨의 경우는 본관을 논하기
전에 신라 출신이라는 것이 자명하다고 볼 수 있다. 밀양 박씨의 경우는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삼백여만명이라고 한다. 거의 남한 인구의 열 명중 한 명은
밀양 박씨라는 것이다 .
최씨의 경우 대표적인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를 본으로 하는 최씨의 겨우 시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최 치원이다. 최 치원은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의 24세손이다. 돌산 고허촌은
신라 사로 육촌의 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경주 최씨도 신라 계열이라는 것이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 최씨는 구십 칠만여명이라고 한다.
정(鄭)씨의 경우 동래 정씨가 대표적이다. 동래 정씨 시조는 신라의 6부 촌장 가운데 하나인
자산진부 촌장 지백호(智白虎)이다. 그러기에 동래 정씨도 신라 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동래 정씨는 사십사만여명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신라 계열 성씨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러나 비록 본관은 다르다고 해도
그 시조의 시조를 찾아가면 신라계열의 성씨는 더욱 많아진다. 문제는 신라 계열 성씨가
많다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고구려 계열 성씨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마 고구려
계열 성씨에서 유일하게 번성한 성씨는 강(姜)씨가 아닌가 한다. 고구려에는 강씨라도
있지만 백제의 성씨는 거의 없다. 그나마 백제계 성씨 중에는 전(全)씨가 번성하였다.
강(姜)씨에 대해서 알아보면 강씨의 대표적인 본관은 진주이다. 진주 강씨의 시조는
고구려에서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이다.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익히 보았던 강이식
대장군이 진주 강씨의 시조인 것이다. 진주 강씨의 경우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구십 육만여명이다.
전(全)씨의 대표적인 본관은 정선이다. 정선 전씨의 시조는 전섭이다. 전섭은 백제의
개국공신이다. 그는 고구려 동명성왕의 셋째 아들 온조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오간 을음 등과 함께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 중의 한 사람이다. 정선 전씨의
경우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십사만여명이다.
분명 성씨만을 놓고 보면 현재 대한민국에는 고구려의 성씨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허점이 있다. 그건 바로 고구려인들이 성씨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을지문덕을 보자.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장수였다. 역사서에
위지문덕으로도 나오는 장수로서 성씨의 유래로 선비족 출신으로도 본다. 을지문덕의 성은
을지씨인가? 확인된 바는 없다. 온달의 경우를 보자. 온달은 봉성 온씨의 시조로도 불린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온달의 성씨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온달에 이르러서야
온씨 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고구려의 유민으로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경우 아버지의 이름이 대중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자칫 잘못 알면 대조영의
성씨가 대씨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대중상은 걸걸중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성씨가 있다. 그러기에 성씨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성씨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조상이 귀족 출신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씨라는 것은 주로 왕에게
하사받는 것이다. 왕에게 성씨를 하사 받는다는 것은 그 만한 공을 세웠다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그러기에 성씨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재미난 성씨들이 꽤 많다. 전중(田中)이니 고교(高橋)니 하는 성씨를
보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경우는 굉장히 많은 성씨를 가지고 있다. 100여년 전만 해도
일본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성씨가 없었다. 국민을 관리하는 제도의 일환으로 성씨의 사용이
장려되었고 그 과정에 새로운 성씨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근대적인 성씨의 개념의
사용은 백 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터어키도
마찬가지로 성씨라는 개념이 사용된 것은 백 여년이 되지 않는다.
징기스칸의 이름은 테무친이다. 테무친은 몽골의 왕족계급이었다. 그런 그도 성씨는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게이이다. 테씨가 아니었다. 이는 몽골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경우는 아니었다. 중국이나 유럽을 제외하고 그 밖의 국가에서는 오히려
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국의 성씨의 경우 중국의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씨를 표기하는 방법 자체가 한자
이었고 왕에게 성씨를 하사받고 조상을 모시는 방법조차 유교의 그 것을 따랐다.
현대에는 누구나 성씨를 가지고 있다. 고대와 다르게 현대의 성씨는 사회적 계급이나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부계혈통의 정보를 주고 국가가
국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현대의
개념을 가지고 과거의 일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적 특성과 지역적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곳 모든 시기의 사람들이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는 오해를 한다. 계백의 성씨는 계씨가
아닐수 있고 을지문덕의 성이 을씨가 아닐수 있는데 우리는 무심코 성과 이름을 분리하여
생각하려 한다. 이는 잘못이다.
성씨라는 제도가 고구려나 백제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제도가 아니었다면 중국이
주장하는 것은 틀릴 수 있다.
성씨는 기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부계성씨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계의 혈연관계를
알 수 없다. 두 가지 경우를 보자. 할아버지의 성씨가 김씨고 할머니의 성씨가 이씨라고 치자
그럴 경우 아버지의 성씨는 김씨이다. 여기에 어머니의 성씨가 오씨라면 본인은 김씨일
것이다. 다른 경우에 할아버지의 성씨가 오씨고 할머니의 성씨가 김씨면 아버지의 성씨는
오씨일 것이다. 여기에 어머니의 성씨가 이씨라면 본인은 오씨일 것이다. 사실 이 경우
혈연관계로만 따지면 그 차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은 김씨고 한 명은
오씨가 된다.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에 길들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문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혈연으로만 판단하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수 천년동안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내용을 알 수는 없다. 또한 혈연이라는 것이
남녀의 문제이기에 그 사연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성씨는 자신의 혈연을 알려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알려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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