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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25, 2013

일본서기는 조작이다

 <백제와 왜의 관계>에 대해 『삼국사기』가 진술한 내용 전부와 『일본서기』가 진술한 내용 맛보기 3회를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진술한 분량의 많고 적음도 어느 정도라야 수긍을 하지,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신지...

 하지만 제가 문제삼는 것은 단순히 분량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삼국사기』가 진술한 그 정도의 양을 가지고서는 <백제와 왜의 관계>의 진정한 모습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삼국사기』를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 자신이 목격한 내용은 비밀로 한 채 시체를 발견한 사실만 신고한 나무꾼에다 비유한 것도 그런 뉘앙스지요.

 만약 『삼국사기』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에 대해 좀 더 풍부하게 진술하였더라면 광개토왕릉 비문을 둘러싼 지금과 같은 혼란이나, 칠지도 명문을 가지고 헌상설과 하사설로 한일 양국학자들이 대립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 같은 허깨비가 등장할 여지도 없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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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삼국사기』가 그 모양이니 방법이 있습니까? 기년紀年이 조작된 『일본서기』라도 붙들고 씨름할 수밖에요. 그렇지만 연대年代란 문헌사학文獻史學의 생명과 같은 것인데, 『일본서기』의 기년이 조작되었다면 기사의 내용도 가공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학계에서는 『일본서기』제4권에 수록된 8명의 천황(제2대부터 제9대까지)은 실재하지 않은 가공架空의 인물로 보고 있으며[조작된 기사라는 이야기지요], 그들보다 앞서 시조로 기록된 제3권의 진무(神武)천황도 실은 후대의 인물의 행적을 바탕으로 시대를 소급해서 만들어 놓은 반영물로 추측하고 있지요.

 예컨대 하야시야 토모지로(林屋友次郞)는 「천황제天皇制의 역사적 근거」라는 글에서 제1대 진무천황이나 제10대 스진(崇神)천황은 오직 1명의 조국肇國(=開國)천황인 제15대 오우진(應神)천황의 그림자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15대 오우진천황의 사적事蹟의 일부를 이상화하여 진무천황이라는 인격을 만들고, 또 다른 사적의 일부를 이상화하여 제10대 스진천황이라는 인격을 만들었기에, 『일본서기』에서 모두 '하쓰쿠니-시라스'(肇國)천황이라고 기술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 어떤 학자는 제15대 오우진천황과 제16대 닌토쿠(仁德)천황의 사적을 합쳐 진무천황이라는 하나의 인격을 만들었다고 보는 등 학자마다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는데, 그래서 일본의 저명한 대학교수들이 순수한 학자인지 아니면 넌픽션 스토리작가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처럼 학자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납득이 안 되거나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일본서기』의 기사가 있으면 이른바 반영설反映說, 즉 "후대의 어떤 사실의 역사적 근거를 주창할 의도에서 있지도 않았던 사건을 조작하여 소급해서 삽입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방식이 유행한 것도 그 빌미는 기년조작이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조작된 기사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힘들지만 설사設使 기사의 내용은 맞고 연대만 틀린다고 해도, 그럼 진짜 연대는 언제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일본서기』의 해석은 속말로 자기 입맛에 맞추어 견강부회牽强附會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일본천황가의 유래에 대해 한국의 일부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수준인지는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그러한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여건 때문이지요.]

 그러한 연유로 일본고대사가 역사적 사실과 상상의 나래가 뒤범벅이 된 팬터지소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일본학자들이 "일본의 4세기는 수수께끼의 세기"(上田正昭), 또는 "불가사의한 신비의 4세기"(佐伯有淸), "공백(空白)의 4세기"(澤田洋太郞)라고 고백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일본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야마토(大和)조정朝廷이 기내(畿內)지방에 출현한 경위가 문헌상으로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본서기』를 <고대사 왜곡의 온상>이라고 말해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황의 명을 받아 『일본서기』를 편찬한 사관史官들은 무슨 이유로 기년조작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요? 착오로 저지른 일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일본서기』를 편찬한 사관들이 기년조작을 하게 된 연유만 알아낼 수만 있다면 고대사의 미스터리도 풀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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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중반 경에 우리나라 학자들이 고종황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싸고 "그는 무능한 부패군주인가, 근대화를 추진한 개명開明군주인가?" 등의 주제로 교수신문을 통하여 벌였던 논쟁을 <고종황제 역사청문회>(푸른역사 발행)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 적이 있던데,

 

 우리도 『일본서기』를 가상 청문회로 불러내어 어째서 기년조작을 감행하였는지 한번 물어 보면 어떨까요?[물론 제 혼자서 진행하는 가상 청문회라 긴장감은 떨어지겠지만, 일본천황가의 사관이 할 변명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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