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Saturday, February 1, 2014

일본 천황가는 백제계이고, 아스카 유물은 백제 유물이고, 소가씨가 정권을 장악했다

일본 천황가는 백제에서 왔는가?

*..역........사..*초록불 2007/06/29 13:00


일본 천황가가 백제에서 왔다는 것의 근거로 드는 것은 [신찬성씨록]이다. 

[신찬성씨록]은 일본 환무(桓武 캄무)천황의 다섯째 아들인 만다친왕(萬多親王)이 지은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 百濟王也.

일반적으로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한다.

대원진인(오오하라노 마히토)은 민달(비다쯔 천황)의 손자 백제왕(족)으로부터 나왔다.

대원진인의 진인(마히토)가 성姓이라고 하는데, 성이 왜 뒤에 와 있는지는 과문한 탓에 잘 모르겠다. 
백제왕이라고 되어 있는데, 백제왕족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다음 기록을 읽어봐야 알 수 있다. 

신찬성씨록의 또 다른 기록이다.

島根眞人, 大原眞人同祖 百濟親王之後也 
도근진인(시마네노 마히토)은 대원진인과 같은 조상인 백제친왕의 후예다.


위 기록을 볼 때, 민달천황의 손자는 백제친왕이었던 모양이다. 친왕이라 함은 왕가의 일원이므로 왕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기록을 놓고 우리나라 쪽에서는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천황의 손자가 백제왕족이라면, 그 할아버지는 당연히 백제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거꾸로 생각해 볼 줄은 모를까?

백제왕족의 할아버지가 일본천황이라면, 백제 왕가는 일본계가 아니겠는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호모 에렉투스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후대의 일로 선대의 혈연을 결정하려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의 민달천황은 572년에서 585년간 재위한 30대 천황이다. 
따라서 백제 무왕은 600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 선대가 사실 불분명하다. [삼국사기]에서는 법왕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용의 아들이라고 나오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고 나온다. 이런 불분명한 백제왕계가 이때 일본계로 바뀐 것이라면? 즉 민달천황의 손자가 바로 백제 무왕이라면?

아아, 거기 성질 내시는 분은 좀 진정하라. 나는 진지하게 위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신찬성씨록]의 기록은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민달 천황의 손자가 백제 왕녀와 결혼하여 친왕의 지위를 획득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라는 생각이 골수에 뻗친 분들은 이쯤에서 여러가지 증거를 떠올릴 것이다.

민달천황이 지었다는 백제대정궁. 일본 정가를 주름잡은 도래인 소가(蘇我)씨라든가, 아스카(飛鳥) 지방의 수많은 백제 관련 유적, 유물. 현 일본의 천황인 아키히토도 인정한 환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점 등등.

(사족이지만, 일본 아스카에 남아있는 그 많은 백제 유적들을 보면, 조선대륙설을 주장하는 바보들은 뭐라 그것을 설명하는지 궁금하다. 그자들의 논리대로 하면 한반도에 날조 유적을 지으면서 일본 땅에다가도 날조 백제 유적까지 만든 것이다. 자기들에게 유리할 것도 하나 없는 유적을 굳이 지은 이유를 그 사람들은 또 뭐라 만들어낼까?)

나는 저런 점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 백제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이 분명한 사실인만큼 한반도로 중국계 유이민이 엄청나게 들어왔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바란다. 전국시대 말기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국계 유이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고대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동으로 서로 움직였으며, 삼국 멸망 후에도 그런 흐름은 이어졌다. 발해 멸망 후 수많은 발해인이 고려로 이동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한반도에는 몽골인의 피가 적잖이 유입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움직였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

천여년 전 일본에 건너갔던 백제인들이 있었다. 이들만이 일본인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위만과 위만이 데려온 연나라 사람들만이 한국인이 되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금나라로 가서 아골타의 조상이 된 신라인(또는 고려인) 김함보가 있으니, 금나라 사람은 모두 신라(또는 고려)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겠는가?

왕가의 혈통으로 그 나라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생각은 좀 접어라. 고려 왕실은 대대로 몽골의 공주와 결혼했는데, 후대로 내려갈수록 그 피는 몽골에 가까워진다. 그럼 고려는 몽골인 것인가? 또한 왕가가 몽골족이므로 우리는 몽골족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도 움직이고, 역사도 움직인다. 그 모든 사람들 - 한반도에 살던 사람,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북방 유목 종족에서 넘어온 사람, 일본에서 또는 저 멀리 동남아와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까지 모두 한반도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아서 오늘날의 우리 한국인이 되었다. 이 일이 우리에게만 일어났겠는가? 일본에서도 일어났고, 중국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일본천황가와 백제 왕가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역사탐험이다. 하지만 그 것을 가지고 동조동근론을 꺼내지는 마라. 그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 짓이다.





[추가]
파랑나리님의 댓글을 추가해 놓습니다.

 파랑나리 2011/01/18 22:23 # 삭제 답글

저 신찬성씨록에 나오는 百濟王이라는 이름의 정체는 이렇습니다.(반드시 읽어주세요.) 백제는 민달의 손자 이름입니다.(쿠다라라고 읽습니다.) 왕은 작위입니다. 저 백제왕은 쿠다라노미코라고 읽고 그 뜻은 백제를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라 이름이 백제(쿠다라)인 종친宗親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찬성씨록을 일본에서 종친의 이름과 작위, 성씨제도를 모르는 것들이 소설을 씁니다. 저걸 "국가가 편찬한 황족과 귀족의 족보"라고 하는데(역사스페셜) 이것도 틀렸습니다. 저것은 족보가 아니라 일본의 성씨목록이고 황족이 나오는게 아니라 황족에서 갈라진 집안이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姓이 왜 뒤에 나와있냐 하는데 가령 大原眞人에서 大原(오호하라. 큰 벌판이라는 뜻입니다.)가 성이고 眞人(마히토. 참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카바네로(姓으로 쓰이지만) 씨족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성과 같이 쓰이는 것입니다. 眞人은 八色之姓(야쿠사네카바네. 여덟가지의 카바네 텐무텐노 떄 정해진 것으로 골품을 나타냄)의 으뜸입니다.


http://orumi.egloos.com/m/3257598

No comments:

Post a Comment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