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Saturday, March 23, 2013

트라키아인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곳에서 선진 문화를 받아들였다.

신라 유물 황금보검이 유럽 켈트 王 것이라고

KIST 이종호 박사 색다른 해석 "그리스·켈트 특유의 무늬 있어"
TV 사극 '선덕여왕'에서 묘사되는 7세기의 신라는 국제무역 중심지다. 대불림(大拂臨·동로마) 말을 쓰는 서역 상인이 서라벌에 온다. 신라 도박업자는 "여헌국(黎軒國·이집트)도 여왕(클레오파트라)이 나라를 다스렸다"고 말한다.

신 라는 통일 전에도 서역과 활발히 교류하던 '실크로드의 종착지'였을까? 신라 말 아라비아 상인들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9세기 헌강왕 때의 처용(處容)이 그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8세기 원성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경주 괘릉의 무인석상, 천마총 등에서 출토된 유리잔 등도 그렇다. 여기서 그 정체가 아주 모호한 유물 하나가 주목된다. 5~6세기 유물로 추정되는 '황금보검(黃金寶劍·사진)'이다.

정식 명칭이 금제감장보검(金製嵌裝寶劍)인 이 칼은 보물 635호로,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유물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장기(長期)전문위원인 이종호(李鍾鎬) 박사기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유럽 켈트 왕(王)의 보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릴까? 황금보검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73년이었다. 경북 경주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는 200여개의 무덤이 있다.

도로 공사를 하면서 배수로를 파고 있을 때 땅속에서 돌무지(적석·積石)가 드러났다. 계림로 14호분이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황금보검과 함께 금귀걸이와 금으로 만든 사자머리 형상의 띠고리(버클) 등도 발견됐다.

무 덤 주인공의 가슴 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은 철제 칼집과 칼은 없어지고 길이 36㎝의 금 장식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놀랐다. 누금(鏤金·금에 무늬를 새김)과 붉은 마노 장식이 돋보이지만 '우리 유물' 같지 않았던 것이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학계에서는 페르시아 같은 서역에서 만들어져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서교역로가 옛 신라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호 박사는 "가운데 태극무늬를 닮은 무늬가 세 개 들어간 것과 표면의 나선무늬를 주목하라"고 했다. 태극무늬 안의 꽃봉오리 장식은 고대 켈트인들이 사용했고 나선무늬는 그리스 특유의 소용돌이 무늬였다는 것이다.

본거지가 유럽 도나우 강 중부였던 켈트인은 이베리아 반도·스코틀랜드·아일랜드와 트라키아(Thracia)에 정착했다. 트라키아는 지금의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일대에 해당한다. 트라키아인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곳에서 선진 문화를 받아들였다.

일본의 고대유물 전문가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는 계림로의 황금보검을 제작한 금세공 기술자는 로마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며, 주문자는 켈트족 출신의 트라키아 왕이라고 보았다. 함께 출토된 사자머리 버클은 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그리스·로마 지역에서 쓰이던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버클은 원래 황금보검을 차기 위한 허리띠에 달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 고구려, 백제나 중국에도 없는 이 유물이 신라에서만 나왔을까? 이런 일급 보물이 상거래 대상이었을 리는 없기 때문에 트라키아 사절이 신라까지 왔거나 신라 사절이 트라키아에서 가져왔을 거라는 게 요시미즈의 추측이다.

중·동부 유럽이 근거지였던 트라키아 왕은 왜 신라에 이런 보물을 보냈을까? 이 박사는 "그곳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던 훈(Hun)족의 근거지여서 여전히 트라키아에 훈족 세력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방 기마민족인 흉노(匈奴)는 중국에 패한 뒤 동서로 갈라졌다. 만일 서쪽으로 간 세력은 훈족이 되고 동쪽으로 간 세력은 신라와 가야의 지배민족이 됐다는 설(說)이 맞는다면 트라키아와 신라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셈이다.

이 박사는 "최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당시 트라키아의 장식류에 쓰이던 석류석의 원산지가 스리랑카와 인도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트라키아에서 스리랑카·인도까지는 어떻게든 무역로가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신라까지 연결되는 해상로가 존재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그건 가야의 수로왕비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이야기를 증명할 루트일지도 모른다. 이 박사는 "KIST와 루브르측의 협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23/2009102301165.html

No comments:

Post a Comment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