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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anuary 19, 2013

중세 유럽 나라들을 내리 까는 전형적인 한국 동양인의 거짓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172919


전근대 유럽이 신분제 사회였던 이유도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세기께부터 시장이 등장한 중국은 18세기까지,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회였 다. 송나라의 신유학(송학)과 그것을 집대성한 주자학, 주자학이 채점기준이 된 과거제와 실력 위주의 관료등용제 확립, 신분제의 해체, 농업과 상공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상품·화폐 경제의 진전이 그것을 대표한다. 그런 상황과 조응하는 사회구조를 미야지마 교수는 ‘소농사회’라고 부른다. 소농사회는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거나 다른 사람 땅을 빌리거나 간에 기본적으로 자신과 그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독립적인 농업경영을 하는, 소농의 존재가 지배적인 농업사회를 가리킨다. 이는 대토지소유제를 토대로 한 유럽 영주계층의 직영지 경영 방식이나 광범위한 농업노동자들이 존재한 동남·서남아시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이런 독특한 소농사회가 중국에서는 송·명대 이후, 한국·일본에선 각기 양상이 좀 다르긴 하지만 17세기 이후 성립됐다. 

이에 비하면 같은 시기의 유럽은 훨씬 후진적인 사회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봉건사회를 기준으로 중국사, 동아시아 역사를 규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고전고대·중세봉건·근대 부르주아라는 단선적인 유럽적 발전사관을 표준으로 삼는 기존 역사인식이나 시대구분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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