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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30, 2013

경상도는 흉노족이다

경상도 전체가 흉노족

  경상도에는 중국에서 온 한때 중국 한나라 노비였던 흉노족 후예 김해김씨 후손들과 중국에서 같이 건너온 엄청난 이주민들 그리고  인도와 아라비아 중국남부 일본 등에서 건너온 남방계의 혼합집단이 살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경상북도에는 흉노족 같은 북방계 중국계가 주류이고 경상남도는 남방계중국계와 여러 민족이 섞여 있다.


  얼마 전 kbs에서 신라왕족이었던 경주김씨는  흉노족이었고 중국을 거쳐 왔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경주김씨 시조인 .한나라 관노출신 투후 김일제와  문무왕 비문의 성한왕은 동일인이며 한나라에서 금으로 사람을 만들어 제사지낸 연유로 金씨 성을 하사받고  중국 왕망을 지지했다가 왕망의 몰락과 함게 한반도 경상도로 이주했다고 함) 또한 그 외 지배층들도 대부분 바다 건너 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방영되었다.


  중국사서와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것처럼 경상도 특히 경상북도에 중국 유민들이 대거 이주해 정착했다는 것 또한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방계로 호칭되는 고구려 백제인들과 다른 신라와 가야를 구성했던 지배층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역사 기록과 언어학적 유전학적인 증거들을 보자!


최근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고 북방계와 남방계로 두 계통의 갈래를 갖는다는 이중 기원설이 최근에 유전자기법을 이용해 증명되었다.


단국대 김욱 교수는 한국인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한국 남자의 유전적 계통이 그룹C(RPS4Y), 그룹D(YAP), 그룹O(M175)의 세가지 형태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는 “몽골, 시베리아인의 경우 그룹C가 40~50%를 차지하지만 한민족은 15%에 불과해 몽골 쪽에서 모두 내려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서정선·한림대 김종일 교수팀도 최근 미토콘드리아DNA로 한국인의 기원을 탐색한 결과 가야시대 고분에서 인도인과 비슷한 DNA 염기서열을 찾았다. 김종일 교수는 “우리 민족이 몽골,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길과 동남아 쪽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밝혔다.


역사적 기록들은 어떠한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조 38년에 기술되기를 중국사람들이 진의 난리를 견디지 못해 동쪽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한의 동쪽에 자리잡고 진나라의 유민들의 나라라는 뜻으로 진한이라 나라 이름을 썼다.


진한은 후에 '신라'가 되었음은 주지의 역사적 사실이다. 진한이 후에 점차 번성해지자 마한이 진한을 꺼려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 '기이편' 진한조에 이르기를 진한의 노인들은 자신들은 진나라 망명객들이라고들 말한다고 적고 있다. 이때 대거 이주한 유이민들이 바로 흉노계 중국인들이다.


삼국사기와는 달리 삼국유사에는 신라가 남방계민족들의 연합정권이라는 증거문헌들을 훨씬 더 많이 적고 있는데 이는 고려 신하였던 김부식이 신라 출신이므로 그들이 고구려 백제와는 다른 계통이라는 것을 되도록 감추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김부식은 나아가 그의 모국인 중국을 더 가깝게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고려와 어떻게든 중국과 이으려 했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다.


이런 결과 북방계인 고구려와 백제가 성씨에 대한 개념이 엷은 가운데 남방계인 신라나 가야족속들은 일찍이 한자 성을 가지고 있었음은 여러 이주 경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다수인 중국 유이민들에게는 자신들의 모국에서의 전통인 성씨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기원전 그 당시 한자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더 먼저 한자를 자유 자재로 구사하였다는 사실, '金' 씨는 보석 금을 뜻하는 말로 그들은 이미 한반도로 올때 성씨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들 지배층이 나타난 시기가 바로 진나라 멸망 이후이며 그들 입으로도 진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들 하지 않는가(삼국사기, 삼국유사 참고).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추천 블로그에 있는 자료들과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blog.paran.com/indenews


한편으로 신라는 아라비아에까지 금이 많이 난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아라비아인들이 '金'을 찾아 신라로 들어가는 사람들마다 눌러않아 살았다는 아라비아 측 문헌들을 소개한다.


1.이슬람의 저명 역사 지리학자인 알 마스오디(AL Masaud :?~~965) 는 그의 저서 '황금 초원과 보석광' 에서 " 신라에 간 이라크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신라가 살기가 좋아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빼고는 그곳 신라를 떠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2.아람의 저명 지리학자인 이븐 쿠르다지바 (Ibn Khurdadhibah :820~912) 는 그의 저서 '도로 및 왕국 총람' 에서 "중국의 맨끝에 있는 '금(金)'이 많은 신라라는 나라에 들어간 무슬림들은 이 나라가 너무 좋아 절대로 떠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3.'삼국사기 헌강왕조'에도 왕이 나라의 동쪽을 시찰하는데 모양이 해괴하고 옷차림새도 이상한 사람들이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삼국사기)


4. 아랍인의 형상이 뚜렷한 경주 괘릉의 무인석은 이슬람인들이 신라지역에 많이 와 살았다는 또 다른 기록이다.


신라의 6부족인 석탈해 석씨는 이미 일본 측에서 온 사람으로 문헌과 유적 발굴 등으로 확인되고 있다.(북방계인 고구려 백제와 전혀 다른 신라 문화 유적과 관련 참고문헌 로마문화왕국 신라 (씨앗을 뿌리는 사람))


지금까지 밝혀진 결과를 종합하면 신라는 가야가 일본계가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과는 약간 달리하여 중국계가 주류이고 여기에 아라비아계 일본계가 뒤섞인 연합 국가였다는 것이다.


신라 이전의 나라 이름인 ‘서나벌’은 당시 산스크리트어 및 고대 타밀어로 황금을 뜻하는 ‘서나(Sona)’와, 벌판(field)을 의미하는 ‘벌’ 또는 ‘펄(Pol)’이 합쳐져 황금밭(Gold Field)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말에서 ‘벌’의 옛말이나 거센말은 ‘펄’인데 고대 타밀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아울러 ‘서라벌’도 ‘아름다운(nice)’을 뜻하는 ‘서라(Sora)’가 ‘벌(Pol)’과 합쳐져 ‘아름다운 들판’을 뜻해 새 나라의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왕’을 ‘박히야거세(Pakkiyakose)’ 또는 ‘박히야거사이 (Pakkiyakosai)’라고 불렀는데 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 바로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또 박혁거세에게 붙인 ‘왕’의 명칭 거서간(居西干)도 당시 타밀어 ‘거사간(kosagan)’과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같다. 아울러 6촌장들의 이름 또한 당시 타밀인들의 이름과 비슷하다. 박혁거세의 탄생지 근처에 있는 우물 ‘나정’은 타밀어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을 뜻하는 ‘나중(nazung)’과 거의 같다. 박혁거세의 또 다른 이름인 ‘불구내’는 현재 타밀나두주(州) 땅에 있던 당시 타밀인들의 촐라 왕국 바닷가 마을 ‘부르구나이(Purugunai)’와 거의 같다.


현대 타밀어에서도 우리말과 똑같은 말이 속속 찾기고 있다. 다음과 같이 거의 똑같은 낱말과 어구들이 적지 않다.


“아빠(아빠), 암마(엄마), 안니(언니)” “난(나), 니(니)”

”니, 인거 바!(니, 이거 봐!)” ”니, 인거 와!(니, 이리 와!)” ”난, 우람(난, 우람하다)”

”난, 닝갈비다 우람(난, 니보다 우람하다)”

”난, 비루뿜(난, 빌다)” ”바나깜(반갑다)” 난, 서울꾸 완담(난, 서울로 왔다)”

”모땅(몽땅)””빨(이빨), 무크(코), 깐(눈깔), 코풀(배꼽), 궁디(궁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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