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김태식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건물이 들어선 자리에는 원래 토성이 있었다. 야트막한 산을 두른 이 토성은 이것이 있는 장소를 따라 삼성동토성이라 일컬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성벽 은 350m 가량 남아 있었다. 애초 성벽은 그 둘레가 460m 정도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70년대 초반 이곳을 답사했던 윤무병 전 충남대 교수는 이곳에서 한성백제 시대(BC 18~AD 475년) 기 와 몇 조각을 줍기도 했다. 그 동쪽 2㎞ 쯤 떨어진 한강변 풍납토성처럼 성벽을 흙으로 쌓아올렸고 기와조각까지 출토된 것으로 보아 백제 유적임은 분명했고 더구나 기와건물까지 있었음에 미 뤄 백제가 이곳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삼성동토성은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종로구 정독도서관 자리에 있던 경기고 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다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성백제를 깔아뭉갠 곳에서 과연 학생들에 게 '우리 문화를 사랑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지... 어떻든 귀중한 한성백제 유적 1개는 이렇게 해 서 뚝딱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한강 북쪽과 맞닿은 뚝섬 경마장 자리에는 1916년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토루(土壘)의 대부분이 남아 있었고 강동구 암사동 소산 이라는 해발 88m 야트막한 산에도 역시 토루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파편조차 찾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영영 사라진 삼성동토성에 비하면 풍납토성은 나은 편이다.
비록 성벽을 포함해 22만 3천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벌집처럼 빽빽히 들어선 아파트와 연립주택,상가에 짓눌려 신음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숨통은 붙어있기 때문이다. 삼성동토성처럼 아예 사라진 한성백제 유적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물론 백제 멸망 이후 한강 일대를 차지했던 고구려와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유적이 파괴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기 475년 한성백제 멸망 이후 1960년대 서울 강남 일대에 개발 바람이 불기까지 무려 1천 500년 동안 진행된 파괴는 그 이후 40년 동안 있었던 파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한성백제 중심지인 송파구,강동구,강남구 일대는 이미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마천루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그 지하에서 1천500년을 잠자던 백제 유적을 파괴하고 말았다.
이렇게해서 겨우 살아남은 한성백제 유적이라고는 그나마 잘 정비된 몽촌토성과 뼈대만 남은 풍납 토성, 그 맞은편 아차산성, 석촌동고분군 정도 밖에 없다. 이 중 몽촌토성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 일로에 있다.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 신라에도 대단히 중요한 아차산성은 곳곳에서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초기백제 유적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석촌동. 가락동 일대 고분군. 1917년에 나온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석촌동 일대만 해도 돌무덤 66기, 흙무덤 23기의 총 89기 나 되는 백제 고분이 있었다. 이 중 대부분이 사라지고 그나마 기단있는 돌무덤 4기를 가까스로 건져 지금은 이 일대 1만7천평을 사적공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들돌무덤은 장군총이나 태왕릉처럼 전형적인 고구려식 모양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초반에는 이들 무덤 주위에서 기와조각까지 발견돼 백제 당시에는 무덤 위에다가 사당 건물을 세워 제사를 지냈음이 이형구 선문대 교수에 의해 확인됨으로써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나머지는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남위례성터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넘어 풍납토성이 왜 꼭 보존되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유적 보존가치를 꼭 희소성이라는 경제학 원리로 따 질 수만은 없겠지만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 여부를 떠나 몇 군데 남아있지 않은 귀중한 초기백제 유적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보존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2000/05/26
그러나
초기백제 유적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석촌동. 가락동 일대 고분군. 1917년에 나온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석촌동 일대만 해도 돌무덤 66기, 흙무덤 23기의 총 89기 나 되는 백제 고분이 있었다. 이 중 대부분이 사라지고 그나마 기단있는 돌무덤 4기를 가까스로 건져 지금은 이 일대 1만7천평을 사적공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풍납토성.
이것이 사라진 백제의 위례성일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97년 풍납토성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백제 유물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신호탄으로 우리 역사학계 최대 발굴로 비유할만큼 엄청난 양의 백제 유물이 쏟아져 나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학계에서 그동안 출토된 유물을 분석한 결과 풍납토성은 백제사 500년의 미스터리는 물론 우리 고대사 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을 간직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마구잡이식 개발로 뼈대만 남은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 수도 위례성이다. 그러나 이 풍납토성도 현재 개발로 인한 파괴일로에 있다.
지금 한창 발굴 중인 곳은 풍납토성에서 서북쪽 방향 미래마을 연립이 있던 구역이다.
현재 발굴 지역에서 유물이 나오고 있는 곳은 지하 1미터에서 4미터의 지층,
모습을 드러내는 유물들은 거의 원형에 가까웠다.
바로 이것이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백제 돌무지 무덤이다.
형태는 고구려 무덤(장군총)과 같다.
일제 강점기엔 이곳에 고분 80여 기가 흩어져 있었고 그래서 이 마을 이름을 '돌마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개발로 파괴되어 사리지고 3기의 고분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강남엔 이러한 고대 한성백제의 유적이 지천에 깔려 있
었다. 그러나 정권유지를 위해 부동산을 폭등시켜 그
차액을 챙기려던 박정희는 강남개발을 밀어붙이며 강
남 일대에 산재해있던 고대 한성백제의 유적을 철저히
파괴시켜 버린다. 대한민국 고대사 유적 하나하나가 너
무나 소중한 이때에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말해 줄 소
중한 역사 유적은 이렇게 사라져 버렸다.
‘말죽거리 신화’라고 하는 강남지역 땅값 폭등과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린 복덕방과 복부인,
강남지역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밤문화,
8학군의 등장과 아파트 가격상승 및 사교육 열풍의 진앙지인 강남,
그리고 뭉개진 소중한 고대 한성백제의 유적들
삼성동토성처럼 아예 사라진 한성백제 유적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물론 백제 멸망 이후 한강 일대를 차지했던 고구려와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유적이 파괴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기 475년 한성백제 멸망 이후 1960년대 서울 강남 일대에 개발 바람이 불기까지 무려 1천 500년 동안 진행된 파괴는 그 이후 40년 동안 있었던 파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한성백제 중심지인 송파구,강동구,강남구 일대는 이미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마천루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그 지하에서 1천500년을 잠자던 백제 유적을 파괴하고 말았다.
▲ 아파트 숲에 잡겨버린 서초 · 송파 · 강남 일대
물론 백제 멸망 이후 한강 일대를 차지했던 고구려와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유적이 파괴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기 475년 한성백제 멸망 이후 1960년대 서울 강남 일대에 개발 바람이 불기까지 무려 1천 500년 동안 진행된 파괴는 그 이후 40년 동안 있었던 파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한성백제 중심지인 송파구,강동구,강남구 일대는 이미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마천루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그 지하에서 1천500년을 잠자던 백제 유적을 파괴하고 말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