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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17, 2010

[이영미 기자의 리얼토크] 한국 리듬체조의 미래 손연재 '박주영과 얽힌 사연'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리듬체조의 요정' '리듬체조의 김연아'로 불리는 손연재(16· 세종고)를 만나러 태릉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기자와 그의 나이 차이를 가늠해 봤다. 산수 결과 '헉' 소리가 절로 날 정도의 엄청난 숫자였다. 지금까지 인터뷰한 선수들 중 최연소인 어린 소녀를 앞에 두고 어떤 질문을 해야 눈높이에 맞는 인터뷰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나 정작 손연재를 만난 순간, 모든 걱정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말솜씨가 뛰어났고 솔직함과 당당함까지 보태져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 스타로 불리는 그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체조계에서는 손연재가 너무 예쁜 외모로 인해 오히려 실력이 부각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올 시즌 시니어 데뷔 후 국제 무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손연재를 만나본다.

# 박주영 때문에 생긴 일



지난 8월 31일,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열린 2010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월드컵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손연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는 유명 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월드컵 대회에서 총점 101.375로 개인종합 22위에 오르는 데 만족해야 했던 그는 비행기 착륙 후 짐을 찾아 들고 출입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기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

"국제대회에서 22위 했다고 기자분들이 공항까지 나오시진 않잖아요(웃음). 제가 박주영 선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거든요. 박주영 선수가 다른 출입구로 빠져나가신 걸 모르고 기다리다 제가 나오니까 갑자기 취재 분위기로 바뀌게 된 거예요. 기자분들이 절 보시자마자 던진 질문이, '박주영 선수 보셨어요?'였거든요. 기분 나빴냐고요? 아니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냥 태연한 척하면서 인터뷰에 응했죠 뭐."

#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손연재에게 2010년은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데뷔한 첫 시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키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150㎝도 안 됐던 키가 중3 때 158㎝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164㎝로 훌쩍 컸다. 욕심 같아선 170㎝까지 크길 바라지만 지금 상태로도 만족한다고.

"시니어 데뷔 후 가장 힘든 부분이 표현력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체조를 배울 때 무조건 웃는 표정만 지었거든요. 지금은 연기와 음악에 맞춰 심오한 표정을 연출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하루 아침에 변화할 수는 없잖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더 노력해야죠."

손연재는 시니어 데뷔 후 첫 출전한 그리스 칼라마타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 리듬체조 월드컵시리즈에서 개인종합 98.450을 받았다. 참가 선수 27명 중 12위에 올랐고 이어 열린 월드컵시리즈 중 최고 권위인 콜베이 대회에서는 개인종합 11위를 차지했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이었지만 '1등' '우승'이란 단어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국에선 손연재의 성적이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 가능성을 확인한 국제대회
"리듬체조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 출신 선수들이 상위권에 모두 들어가 있어요. 그 사이에 동양인, 그것도 한국 선수가 이름을 알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많아요. 그래도 손연재의 연기를 보고 나면 심사위원들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대단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말하더라고요. 나이가 어려서 더더욱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손연재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IB스포츠 문대훈 씨의 설명이다.
손연재는 이번 이탈리아대회를 통해 새삼 깨달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 처음에 이탈리아 시합을 준비하면서 규모가 그리 크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막상 대회를 가보니까 너무나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출전한 거예요. 은근히 긴장이 되더라고요. 긴장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오는 19일 러시아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한 경험이라고 위안 삼으니까 견딜 만했어요. 힘들었던 건 이탈리아대회보다 귀국해서 곧바로 출전했던 국내대회였죠."

손연재는 8월 31일 귀국하자마자 곧장 충북 제천으로 내려가 9월 2일과 3일 전국리듬체조대회에 출전했다. 시차 적응을 할 새도 없이 치료와 훈련, 대회 참가를 강행했는데 리듬체조계의 라이벌이자 막강 선배로 꼽히는 신수지를 제치고 정상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최악의 컨디션이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절대 출전할 수 없다고 했는데 세계선수권대회 앞두고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권유에 결국 참가를 했던 거죠. 시합 전날 시차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러다 시합 들어가기 전부터 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긴장을 느낄 새도 없었어요. 그저 멍한 기분이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왔던 거죠."









지난 2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KBS배 전국리듬체조대회 시범경기에서 손연재가 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연아와 손연재



손연재는 뛰어난 외모와 실력 때문에 '리듬체조계의 김연아'로 불린다. 김연아가 IB스포츠 소속일 때는 김연아의 아이스쇼에 함께 서면서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김연아와 손연재를 비교하는 데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가끔은 저한테 뭐라고 욕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떻게 제가 연아 언니와 비교 대상이 되느냐면서요. 그런데 전 제가 먼저 연아 언니 이름을 꺼낸 적이 없거든요. 기자분들이나 팬들이 '리듬체조의 김연아' 운운하면서 절, 연아 언니와 함께 세웠어요. 저야 너무나 기분 좋고 영광이지만 어떤 분들은 실력도 없으면서 얼굴 예쁘다고 유명세 탔다며 비난을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그 순간에는 좀 마음이 상하지만 제가 국제대회에서 1등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조용히 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적으로 보여드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 부상과의 싸움
피겨스케이팅과 마찬가지로 리듬체조 선수들도 온몸에 부상을 달고 살아야 한다. 손연재도 마찬가지다. 발목과 발등 인대 부상, 허리 통증 등 성한 곳이 없을 정도. 특히 허리 통증은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호전 증세를 보이다가도 잦은 국제대회 출전과 해외전지훈련으로 재발되기 일쑤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체조 선수들도 부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상을 핑계 대는 건 맞지 않아요. 몸의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 종목 선수들이라면 발목과 허리 부상은 어쩔 수가 없거든요. 몸이 아픈 건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지만 가장 힘든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저한테 팬들이 '요정' '엘프녀' 이런 별명을 붙여주시는데 몸은 '요정'이 아니라 '환자' 수준이에요. 하하."

# 손연재의 '예스 or 노우'
손연재에게 스피디한 질문을 시작했다. 드디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질문이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당긴다.

'체조를 안 했어도 공부는 잘했을 것이다?' '엄청 잘하지도, 엄청 못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학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시험 없을 때는 기다려져요. 그런데 시험 보는 날은 정말 힘들어요. 두 달 만에 학교 가서 수학 시험을 치러보세요. 수학은 따로 공부해도 친구들 수준을 따라가기가 힘들거든요. 그래도 위안을 삼는다면 영어나 일어, 러시아어 등 언어에는 좀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은퇴 후 연예인이 되고 싶다?' '노우. 전혀 관심없어요.' '단 한 번이라도 신수지(세종고3년)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있다?' '글쎄요(웃음). 좋은 선배이자 자극을 주는 라이벌이라고 해도 될까요?' '예쁜 외모가 체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절 체조 잘하는 손연재가 아닌 얼굴 예쁜 손연재로 기억하는 분들이 더 많은 건 안타까워요.'

손연재는 앞으로 개인 코치를 영입해 러시아 등 해외전지훈련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계획이다. 올 시즌 가장 큰 목표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던 체조계에서는 손연재한테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손연재는 "저도 내심 욕심을 내고 있어요. 아시안게임에서 색깔 있는 메달을 목에 걸고 싶어요. 그 다음은 2012년 런던올림픽인데 단순히 출전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잖아요. 아무도 예상 못했던 성적을 냈을 때, 그 기쁨이 배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손연재'란 이름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싶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인터뷰한 선수가 열여섯 살의 고등학교 1학년생이 맞나? 19일 러시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당분간 인터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의 근성을 내보였던 그가 진정한 프로다웠다. 기자의 거듭된 부탁 끝에 결국 시간을 내긴 했지만 손연재는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지나자 훈련하러 가야 한다며 조바심을 냈다. 손연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손연재와 김연아가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근성과 강한 정신력으로 똘똘 뭉친 김연아의 이미지가 손연재한테서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riveroflym@ilyo.co.kr

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00917121642132&p=il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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