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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19 19:15
답변공감
답변 내용
고대 로마군은 전적으로 보병 위주였고 기병이나 궁수는
보조 부대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술적 문제였지요.
기병은 발을 딛는 등자가 없어 양 다리로 말 배를 꽉 잡고
타야 했으니 말 위에서 전투를 벌인다는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활 역시 동양의 활처럼 대가 중간에서 한번 꺾인 강궁이 아니라
자기 키보다 크고 밋밋한 활 대에 시위를 맨 것 이상 개발이
안되었습니다. 요새 척도로 한 오십미터 나가는게 고작이었죠.
나중에 카르타고의 한니발 부대에 시달린 뒤로 기병 전술이
발달하긴 했습니다만..
주력은 경무장 보병으로 무기는 짧은 칼과 방패가 전부였습니다.
근접해서 방패로 상대방 칼을 막고 배를 푹 쑤시는 기술이
유일한 전투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일찍부터 도, 검, 창, 극, 모, 부월 등
각종 병장기가 발달했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 대단했습니다.
지휘관은 마상에서 전투를 했고, 기병 하나가 보병 열을 당해낼 정도였습니다.
활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주력 병기 중 하나였구요.
전투만 놓고 보면 절대 유리했을거라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국지전이 아닌 대규모 전쟁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전쟁의 승패는 보급이 좌우하는데 당대의 로마는 이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로마군이 진출한 곳에는 어김 없이 길이 닦여졌답니다.
보급이 대단히 원활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로마군은
전투나 행군 등 모든 전술 행위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매뉴얼대로 행동하기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습니다. 매우 무자비한데다 약탈도 매뉴얼에 따라
조직적으로 행해져서 만일 보급이 끊긴다 해도 현지 조달이 가능했지요.
그러한 고로
아마 로마군이 초반의 열세를 딛고 승리를 거두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조 부대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술적 문제였지요.
기병은 발을 딛는 등자가 없어 양 다리로 말 배를 꽉 잡고
타야 했으니 말 위에서 전투를 벌인다는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활 역시 동양의 활처럼 대가 중간에서 한번 꺾인 강궁이 아니라
자기 키보다 크고 밋밋한 활 대에 시위를 맨 것 이상 개발이
안되었습니다. 요새 척도로 한 오십미터 나가는게 고작이었죠.
나중에 카르타고의 한니발 부대에 시달린 뒤로 기병 전술이
발달하긴 했습니다만..
주력은 경무장 보병으로 무기는 짧은 칼과 방패가 전부였습니다.
근접해서 방패로 상대방 칼을 막고 배를 푹 쑤시는 기술이
유일한 전투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일찍부터 도, 검, 창, 극, 모, 부월 등
각종 병장기가 발달했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 대단했습니다.
지휘관은 마상에서 전투를 했고, 기병 하나가 보병 열을 당해낼 정도였습니다.
활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주력 병기 중 하나였구요.
전투만 놓고 보면 절대 유리했을거라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국지전이 아닌 대규모 전쟁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전쟁의 승패는 보급이 좌우하는데 당대의 로마는 이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로마군이 진출한 곳에는 어김 없이 길이 닦여졌답니다.
보급이 대단히 원활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로마군은
전투나 행군 등 모든 전술 행위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매뉴얼대로 행동하기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습니다. 매우 무자비한데다 약탈도 매뉴얼에 따라
조직적으로 행해져서 만일 보급이 끊긴다 해도 현지 조달이 가능했지요.
그러한 고로
아마 로마군이 초반의 열세를 딛고 승리를 거두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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