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아이가 공유하는 시간은 둘한테 똑같이 느껴질까? 노인과 아이가 함께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의 한 장면. |
[한겨레] [사이언스 온]
인생을 길게 느끼며 사는 방법은?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나는 아직 젊지만 간혹 ‘나이 들수록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실감할 때가 있다. 어릴 때엔 방학이 빨리 다가오지 않아 답답했는데, 지금은 번개처럼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이 안타깝다. 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그저 나이가 들수록 조급해지는 마음에서 생기는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가 느끼는 시간’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변화가 오로지 나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 미국 심리학자 피터 맹건 교수는 20대 젊은 사람들과 60대 나이 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3분’의 시간을 마음속으로 세다가 정확히 3분이 지났다고 생각될 때 얘기하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20대는 3초 안팎으로 3분의 시간을 상당히 정확히 알아맞힌 데 비해 60대는 40초 정도가 더 지나서야 3분이 지났다고 얘기했다. 3분 40초를 3분으로 느꼈으니 한마디로 시간을 짧게 느낀 것이다. 이어 맹건 교수는 이런 차이가 나이에 비례해 심해짐을 보여줌으로써 나이가 들면서 우리 뇌에서 뭔가 시간 감각과 관련한 변화가 일어남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의 다른 생체시계
뇌 안에는 시간 감각에 대한 기준 역할을 하는 신경회로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중뇌의 선조체에 있는 돌기신경세포로 이뤄진 신경회로이다. 돌기신경세포라는 이름은 신경세포에 수많은 돌기가 나 있어 붙여진 것인데 이 세포는 수많은 돌기를 통해 다양한 감각신경계에서 오는 입력 신호를 받아 하나의 동일한 사건이나 느낌으로 통합하는 구실을 한다.
우리는 뭔가를 인지할 때 한 가지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으로 정보를 받는다. 테니스 경기에서 상대방이 보낸 공을 치기 위해선 공 자체를 보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이 공을 칠 때 나는 소리, 그리고 공을 맞받아칠 때 내 손의 압력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속도로 뇌에 전해지는 여러 감각 정보를 하나의 일관된 시간 간격에 따라 통합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선조체의 신경회로가 한다. 이 회로의 규칙적 진동이 의식적인 시간 감각에 대한 기준으로 작동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회로가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에게서 다른 속도로 진동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회로는 왜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에서 다르게 움직일까? 선조체 신경회로의 진동수를 조절하는 중요한 입력 신호 중 하나는 중뇌 흑질에 분포한 도파민 신경세포에서 들어오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나 기분 좋은 보상이 주어질 때 분비되는데, 선조체 돌기신경세포의 활성은 이 도파민의 유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도파민이 많을 때에는 활성이 강해져 선조체의 회로가 빠르게 진동하는 반면, 도파민이 적을 때는 활성이 낮아져 천천히 진동한다. 즉, 도파민이 많이 분비될 때에는 시간에 대한 내 안의 기준이 빠르게 돌아가니 상대적으로 바깥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고 반대로 도파민이 적게 분비될 때에는 바깥세상의 모든 것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뇌는 나이가 들면서 도파민을 적게 생산하고 도파민에 반응하는 능력도 줄어든다.
그렇다면 도파민 활성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 실제로 필로폰 같은 약물은 도파민 신경세포를 활성화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반면에 도파민의 작용을 억제하는 할로페리돌 같은 약물은 거꾸로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우리가 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가에 대한 훌륭한 답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도파민의 변화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이론인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
양 많을수록 시간 느리게 느껴
나이 들수록 도파민 분비 주니
시간 더 빨리 가는듯 느껴지고
뇌의 선조체(짙은 부분) 안에 있는 돌기신경세포들로 이뤄진 신경회로는 우리가 의식하는 시간을 지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새롭고 자극적 경험 많이 하면
기억량 많아져 시간 길게 느껴
즐거운 자극으로 도파민 늘리고
다양한 경험으로 기억량 늘리면
좀 더 느리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기억은 시간을 늘어뜨린다
세월의 상대성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은 우리 기억 속에서 출발한다. 우리 뇌는 모든 기억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겪은 온갖 새로운 일들, 강렬한 느낌, 충격적인 기억들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의 조각으로 남는 반면에 나이 들어 겪는 지루하고 일상적인 일들,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을 회상해 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긴 시간처럼 느끼는 반면 나이가 든 지금 느끼는 한 달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우리 뇌에 남게 되는 기억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미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 박사는 사람들이 강렬한 경험 속에서 느끼는 시간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파격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안전장치를 갖춘 놀이공원의 기구를 이용해 사람들을 50m 높이에서 뛰어내리게 한 다음, 자신이 땅에 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추측해 보도록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답했으며, 또 떨어지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이글먼 박사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강렬한 자극에 의한 경험이 일상적인 경험보다 훨씬 촘촘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화의 슬로모션에 쓰는 기법처럼 같은 시간이라도 더 많은 프레임이 기억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된 경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이글먼 박사는 나이 들어 생기는 기억의 양에 비해 어린 시절에 쌓이는 기억의 양이 월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렸을 때 시간이 훨씬 천천히 흘러갔던 것처럼 느낀다고 설명한다. 같은 시간이라도 어렸을 때 겪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새롭고 신기하기 때문에 많은 기억이 남지만 나이가 들어 겪는 익숙한 일상은 기억에 잘 남지 않기 때문에 회상해 보면 어린 시절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도 직장에 처음 출근할 때에는 회사까지 가는 길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매일 같은 길을 출퇴근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 시간이 금세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흥분되는 첫 출근길은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에 주변의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았지만 일상적으로 다니다 보니 더 이상 인상적일 것이 없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 않았나 보다. 이렇듯 흥분되는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이 길었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인생을 길게 느끼며 사는 법은
그렇다면 세월의 흐름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자꾸만 빨라지는 자신의 시계를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까? 자신의 시계가 자꾸만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울해하지만 말고 스스로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도록 해보자.
우리 뇌 안의 시간 감각 회로의 속도를 조절하는 도파민은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받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경험할 때 많이 분비된다. 즉,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을 자주 하는 것은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켜 선조체의 시간 감각 회로를 빠르게 진동시키고 결국 같은 시간도 길게 느껴지게 할 것이다. 이뿐 아니라 많은 새로운 기억의 조각을 남겨 나중에 우리가 오랜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흔히 얘기하는 ‘젊게 살자’라는 말은 단순 유행어가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우리에게 더 많은 인생을 안겨주는 중요한 도움말이라고 생각된다.
홍수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박사과정
http://m.news.naver.com/read.nhn?oid=028&aid=0002225884&sid1=105&backUrl=%2Fmain.nhn%3Fmode%3DLSD%26sid1%3D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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