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중국을 식민지배한 역사적 사실은 송(420~478)나라 역사서인 <송서>, 양(501~557)나라 역사서인 <양서> 송, 남제, 양, 진 등의 남조 4국의 역사서인 <남서>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백제가 요서군과 진평군을 점령하여 다스렸다는 최초의 기록이 <송서>에 있다.
이 <송서>는 송나라 사람인 심약(441~513)이 송나라를 계승한 남제(478~501) 황제의 지시로 487년에 왕성한 송나라 역사서이다.
그 <송서>에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군의 동쪽 1000여리 되는 곳에 함께 있었다.
그 후에 고구려는 요둥군을 빼앗아서 차지하였고, 백제는 요서군을 빼앗아서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렸던 치소를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이른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 남제(479~501)의 역사서인 <남제서>에
백제가 북위와 여러 차례 전쟁을 하였다. 490년에 북위의 기마군 수십만이 기습공격을 해왔다.
백제 동성왕(479~500)이 사법명 장군, 찬수류 장군, 해례곤 장군, 목간나 장군들을 거느리고 야간에 번개같이
습격하니 북위가 크게 당황하여 무너지는 것이 바닷물로 쓸어버리는 것 같았고, 말을 몰아 패주하는 적을 추적하여
베어 죽이니 그 시체가 드넓은 평원을 붉게 물들이었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 <남제서>에 백제가 중국의 지역인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등에 낙랑군, 조선군, 대방군, 요서군, 서하군, 광양군, 광릉군, 청하군, 성양군, 진평군 등을 설치하여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양(501~557)나라 역사서인 <양서>에도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군의 동쪽에 있었다. 서진(265~316)때에 고구려가 이마 요동군을 빼앗아서 차지하였다.
백제 또한 요서군과 진평군의 2군 땅에 웅거하였다. 그리고 백제는 스스로 요서군, 진평군 등의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중국 남부지방을 영토로 했던 남조 4국 즉, 송(420~478), 남제(478~501), 양(501~557), 진*557~589) 등 4개국 역사를 담은 <남사>에도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군의 동쪽1000리 되는 곳에 함께 있었다. 서진(265~316) 때에 고구려가 이미 요둥군을 빼앗아 차지하였다. 백제 또한 요서군과 2군을 빼앗아서 웅거하였다. 그리고는 백제 스스로 요서군과 진평군에 백제군을 설치했다.
라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 두우가 서기 801년에 편찬한 <통전>에도
진나라 때에 고구려가 이미 요둥군을 침략하여 가졌고, 백제 또한 요서군과 진평군의 2군을 점거하였다. 후위 즉, 북위(386~534) 때에 백제왕이 북위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백제와 고구려의 선조들은 부여에서 나왔습니다." 라고 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최치원(857~?)이 "고구려, 백제는 그 전성기 때에 강한 군대가 100만이나 되었고, 그 군사력으로 지금의 유주, 연, 제, 노, 오, 월 등의 지역을 침략하여 차지하였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중국과 한국의 역사 기록들은 서진(265~316) 말기의 혼란기를 틈타 중국의 동부지역을 지배하면서 북위와는 그 영토를 놓고 전쟁을 하고, 남조 국가인 송, 남제, 양 등과는 우호관게를 맺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 교과서는 역사기록의 근거도 없이
"백제는 근초고왕(347~374) 때에 크게 발전하였고, 백제는 수군을 정비하여 중국의 요서 지방에 진출하였고, 이어서 산동 지방과 일본의 규수 지방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대외 할동을 벌였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백제의 역사를 말살, 축소, 왜곡하고 있다.
진출하였고 대외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무역을 목적으로 요서지방과 산동지역을 진출하여 대외활동을 하였다는 의미로 왜곡된 표현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광복 된지 70여년이 되어가지만 오늘날까지도 일제식민사학을 계승 추종하는 이들의 영향으로 한국의 역사는 광복되지 못하고 있다.
http://m.dcinside.com/view.php?id=history&no=1204944&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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