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과 반체제 논리의 역설
미술계의 레드 헌트
40년대 말 50년대 초 예술에 대한 우익의 공격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첫 단계는 예술 속에 묘사된 특정 부분의 좌경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덕분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졌던 수많은 공공 벽화들이 수난을 겪어야 했다. 둘째 단계는 좌익 활동이나 단체에 연루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의 프로젝트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덕분에 수많은 전시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지어 공산당원인 피카소의 그림 한점이 포함되어 있다 해서 전시회가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레드 헌트의 세 번째 국면이다. 이 반달리즘에 재미를 붙였던지 돈데로는 나아가 모더니즘 미술 자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모더니즘은 ‘파괴’를 일삼는 위험한 반체제 미술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큐비즘은 디자인된 무질서로 파괴하려 하며, 미래주의는 기계의 신화로 파괴하려 하며, 표현주의는 미개인과 정신병자를 흉내냄으로써 파괴하려 하며, 다다이즘은 조롱으로 파괴하려 하며, 추상은 뇌를 비워냄으로써 파괴하려 하며,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부정으로 파괴하려 한다”.
그리하여 그는 “현대예술은 공산주의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왜곡되어 추하며, 아름다운 우리나라, 즐겁게 미소짓는 국민, 우리의 물질적 진보를 찬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찬양하지 않는 예술은 불만족을 낳는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정부에 반대되며, 그것을 지원하는 이들은 우리의 적이다.” 여기서 그의 소박한(?) 예술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방식”으로 국가를 찬양하는 예술. 그런데 그의 예술관은 어딘지 익숙하다. 그를 인터뷰하던 미술평론가 에밀리 게나우어가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것이야말로 바로 ‘공산주의 예술의 특성’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인민 대중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체제를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이 그토록 적대하는 두개의 전체주의 체제, 즉 공산주의와 파시즘 예술의 특성이 아닌가. 이 지적에 돈데로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고 한다. 이 애국적 분노의 결과로 에멜리 게나우어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 해고를 당한다.
이 코미디 같은 일화에는, 공산주의에 남달리 요란하게 반대하는 그들이야말로 실은 공산주의자와 가장 비슷하다는 역설이 담겨 있다. 조지 돈데로가 추진한 반모더니즘 정책은 실은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문화정책이기도 했다. 독일의 파시즘은 현대미술을 “퇴폐예술”로 낙인 찍어 탄압했고, 소련의 공산주의는 현대미술을 “제국주의 부르주아 반동”의 에술로 낙인 찍어 탄압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방식의 탄압이 하필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다.
미술계의 ‘레드 헌트’는 어느 정신 나간 정치인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미술계의 많은 인사들이 협조했다. 돈데로는 어느 편지에서 “의회에서 행한 예술에 침투한 공산주의에 관한 내 연설에 사용된 정보 수집은 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헌신적으로 조사를 해준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한마디로 예술가들이 동료 예술가를 밀고했다는 얘기다. ‘국제예술협회’(IFAC)라는 단체는 “미국 미술에 바친 헌신적 공헌”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그에게 금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이끈 작가들은 실제로 좌익이었다.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마르크 로스코는 사회주의자였다. 추상표현주의를 이끈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 역시 트로츠키주의 좌파였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40~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활약에 말려난 보수적 화가들은 물론 이 추상화가들을 미술계에서 내쫓는 데에 이해관계가 있었다. 애국적 구상회화가 졸지에 ‘미국적’ 예술이 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문제는 그 애국적 구상회화로는 세계무대에 명함을 내밀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당시는 미국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였다.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유럽을 파시즘의 위협에서 구원했고, 경제적으로는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의 부흥을 지원했고, 군사적으로는 유럽을 공산주의의 확산에서 방어하고 있었다. 미국은 그렇게 얻은 영향력을 당연히 문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해야 했다. 미국의 미술에서 그 임무를 수행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 것은 추상표현주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미 국무부와 CIA는 마침 국제적 인정을 얻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를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내세우기로 한다. 냉전시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레토릭은 ‘자유’였다.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 미국은 전세계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사명을 띤 나라라는 것이다. 이 냉전의 레토릭은 공교롭게도 잭슨 폴록이 구사하는 화법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의 화법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로써 추상표현주의는 졸지에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서는 예술적 대항마가 된다.
무제한의 자유
공산주의 국가는 개인에게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같은 국가의 취향을 강요함으로써 예술가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다. 반면 미국은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운 화법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예술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다. 작가들 개개인의 좌익 경력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려 그것은 프로파간다를 위한 유용한 재료가 되었다. ‘체제에 반항하는 좌익의 예술까지도 너그럽게 포용하는 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라고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예술의 공산주의’로 여겨지던 추상표현주의가 졸지에 ‘반공의 예술’이 된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조지 돈데로는 ‘추상’을 공산주의 미술로 낙인 찍었다. 하지만 그 몇년 사이에 상황이 바뀌어 이제 그것은 자유진영의 미술로 여겨지고, 외려 ‘구상’이 공산주의 미술을 연상시키게 됐다. 예술을 재현의 의무에 묶어놓음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미술이라는 것이다(구상의 요구는 인민 대중을 향한 선전의 필요와 관련이 있다). 미술의 레드 헌터는 이 역설을 어떻게 보았을까?
미 국무부와 CIA의 후원으로 추상표현주의는 냉전적 사고를 반영하는 돈데로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조차 추상표현주의는 새로운 냉전 지형에 편입되는 운명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역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어처구니없는 역설은 반체제의 예술이 체제 선전의 도구로 전락한 데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레드 헌팅이 아닐까?
http://www.cine21.com/news/view/group/M551/mag_id/72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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