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칠레 출신이 아니다. 본래 이름은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포르투갈어: Edison Arantes do Nascimento). 펠레(Pelé)라는 애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펠레는 어릴때 이별명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네 축구 골키퍼 "빌레 (Bilé)"를 "펠레"로 발음해서 생긴 별명이라는데, 어느날 갑자기 펠레가 살던 골목의 동네친구들이 그를 펠레라고 부르며 놀려대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싸우기도 했으나 결국 펠레란 칭호가 굳어져버렸다. 학교에서도 그를 펠레라 부르기 시작하자 그는 학교에서도 싸웠고(…) 이틀간 징계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급기야 아버지까지 그를 펠레라 부르게 되자 그걸로 게임끝. 펠레는 그냥 펠레다. 후에 스타가 된 후 그는 펠레란 이름을 신이 주신 이름이라며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축구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브라질 정부는 유럽 구단의 펠레 영입을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 그를 국보로 지정할 정도다.
그와 비견될 축구선수인 마라도나가 사생활 문제로 끊임없는 구설수에 오르는 것과 비교하면 은퇴 이후에도 축구 진흥에 계속 힘쓰는 등 모범생의 이미지가 강하다.
브라질의 축구클럽인 산투스에서 17년동안 뛰었다. 그리고 미국의 축구증진을 위하여 뉴욕 코스모스에서 1년간 뛴적이 있었다. 그러나 뉴욕 코스모스는 9년뒤에 망했다. 참고로 펠레는 나중에 간 뉴욕 코스모스를 빼면 산투스 죽돌이였다.
통산 1363경기에 1281골 기록. 정말 전무후무한 기록임엔 틀림없다.
그는 이러한 축구실력으로 명성이 자자하였으나 또한 악명을 떨치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말을 하면 언제나 그것이 반대로 이루어지는 펠레의 저주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저 이건 농담삼아 하는 얘기니 너무 진지하게 펠레를 까는 건 자제하자. 틀린 것이 부각돼서 그렇지 정확하게 예측한 것도 많으니까..
축구사에 길이남을 떡밥인 vs 디에고 마라도나에 서 그를 까는 이야기가 그를 찬양하는 이야기 못지 않게 많으나(그러니 떡밥이 되지...) 누가 낫든 부족하든간에 확실한 것은 펠레는 그 시대에 현대축구에서도 구사하는 사람이 몇 없는 각종 기술을 모두 구사하고 확립한 선수라는 것이다.
최근 생각없는 어린 것들이 커리어 놀이를 하며 모모 선수가 최고다 모모 선수가 최고다 드립을 시전하다 말빨이 딸리면 사용하는 보도 중 하나가 그러면 챔스 경력이 없는 펠레도 최고냐라는 기술을 사용하는데 피식 하고 비웃어 주는 것이 옳다. 펠레 활약 당시는 리그 수준, 연봉 수준에서 브라질이 아쉬울 게 없었고 챔스 자체가 좀 역사도 짧아 권위가 덜했으며 뭣보다 펠레 자신이 산토스와 브라질 국대로 전세계의 클럽팀과 국가대표를 실신시킨 경력의 소유자다. 세계본좌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이 시기 정말 아시아 오지였을 한국에 방한해 한 차례 공연하기도 했다.
바이시클킥을 비롯, 현대축구에서도 묘기라고 찬양받는 여러 기술을 그는 모두 사용했으며, 머리, 가슴, 오른발, 왼발, 엉덩이 등등 손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분을 현대축구의 기준으로 봐도 놀랄 정도로 완벽하게 사용하며 골을 넣었다. 또한 당연하게도, 이 시기의 템들이 오늘날 수준으로 보면 놀랄 정도로 낙후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당연히 필드라 할 수 있는 축구장도 오늘날에 비교하면 영... 잔디부터가 그 질이 다르다.
뿐아니라 그는 그 시대 기준으로 최고의 피지컬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피드가 빨랐고 몸싸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며, 기술적이던 피지컬적이던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의외로 나약할 수 있는 반면 그는 승부근성이 강해 상대의 반칙에도 반칙으로 맞받아치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최고의 주장이었다고도 하는데, 보통 최고 레벨의 선수는 실력만으로도 선수들의 존경심을 얻어 주장이 되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그를 뛰어넘어 말빨도 리더쉽도 최고라는 동료들의 증언이 있다. 노년기의 활발한 언론활동이나 정치활동을 보면 빈 말은 아닌 듯하다.
그가 축구의 황제라 불리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이야기. 펠레의 플레이를 본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현재 가장 많은 신체를 가장 자유롭게 쓰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펠레가 몇 수 위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야기거리
- 1970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전쟁 당시, 양측 당사자들은 라고스에서 열린 펠레의 시범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 48시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 펠레는 1961년 3월 이른바 역사에 남을 만한 골을 기록했다.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펠레는 상대편 선수 모두를 혼자서 제치고 득점을 기록했다. ‘마라카낭 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극찬을 받은 이 골을 기념하기 위해 상파울루 스포치 신문인 「우 에스포르테」는 기념판을 제작해 마라카낭 스타디움 입구에 걸어 놓았다.
- 펠레는 909경기만에 1000골을 달성했으며 그 대기록은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미국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2000회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라 평했으며, 자국에서는 두 번씩이나 인간이 달에 착륙했던 미국인 조종사 콘라드와 빈의 사진이 펠레의 1000번째 득점 사진과 나란히 실렸다.
- 콜롬비아에서는 펠레가 심판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자 관중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와 주심이 경찰에 보호를 받아야 했고, 부심을 주심으로 임명하여 펠레를 다시 경기에 투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 이란 국왕은 펠레를 만나기 위해 공항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으며 중국의 국경 수비대는 그와 인사를 하기 위해 초소를 버리고 홍콩으로 들어갔다.
- 펠레를 주인공으로 하는 아타리 2600의 게임 Pelé's Soccer는 스포츠 스타를 등장시킨 최초의 게임이다.
- 1962년 펠레가 두 번째로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유럽의 많은 스포츠 클럽은 펠레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으나, 브라질 정부는 펠레를 ‘국보(國寶)’로 선언하고 펠레가 계속 브라질에 남도록 했다. 펠레는 한평생 동안 단 하나의 프로팀에서 활약했는데, 그것은 산투스 팀이었다. (은퇴 후에 미국의 축구 붐 조성을 위해 북아메리카 축구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 2002년 FIFA 월드컵 의 준비요원으로 발탁된 펠레는 그 월드컵의 주제가를 부른 미국의 여가수 아나스타샤와 같이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다. 이때 펠레는 아나스타샤의 가슴을 훔쳐봤다. 2003년 초에 아나스타샤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대수술을 받은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사람들은 이를 펠레의 저주 중 최악의 사건이라 칭하고 있다.
- 은퇴하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펠레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강도를 만났었다. 그런데 택시기사의 돈을 빼앗고 펠레의 돈도 뺏으려고 뒷문을 열었을때 놀란 얼굴로 있는 펠레를 보자 그 들은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한다. "죄송합니다 펠레씨,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당신의 돈을 빼앗을 수는 없죠." # 하지만 약 10년뒤 또 강도를 만난 모양이다 #
- 펠레가 어렸을 적 이야기다. 친구들과 축구를 한 뒤 으쓱해져 함께 담배를 피웠는데, 이 장면을 아버지에 게 딱 걸리고 만 것. 저녁이 되어 들어온 펠레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 담배 피웠냐?" 펠레는 뜨끔해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야단맞을 줄만 알았던 펠레에게 아버지는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는 축구에 소질이 있으니 장차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벌써 담배를 입에 대다니. 흡연은 몸을 망가뜨려 경기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한다. 나는 아버지로서 네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때는 그것을 막아야 할 책임도 있다. 하지만 네가 좋은 길로 가느냐 나쁜 길로 가느냐는 어디까지나 네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너는 담배를 피우고 싶으냐? 아니면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으냐? 네 스스로 선택하거라." 그리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펠레에게 건네며 "뛰어난 축구 선수가 되길 원치 않고 굳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이 돈도 담배 사는 데 보태거라." 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가버렸다. 펠레는 한바탕 울고 난 뒤 아버지에게 가 돈을 돌려주며 당연히 이렇게 말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겠어요. 그리고 꼭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된 것은 물론이다. 오오 아버지 오오.. 물론 그는 지금도 담배를 피지 않는다.
펠레에 관한 어록
펠레의 헤드라인은 무엇인가? 바로 G-O-D이다
-영국 선데이 타임즈(1970년 브라질의 세번째 월드컵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영국 선데이 타임즈(1970년 브라질의 세번째 월드컵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경기에 임하면서 그도 마찬가지로 피부와 뼈로 된 사람이라고 몇번이고 내 자신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타시니오 부르그니치(1970년 결승전 당시 펠레를 막는 임무를 맡았던 이탈리아 수비수)
-타시니오 부르그니치(1970년 결승전 당시 펠레를 막는 임무를 맡았던 이탈리아 수비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디 스테파뇨이다. 하지만 나는 펠레는 선수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축구에 관한 한 그는 단지 최고의 선수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페렌츠 푸스카스
-페렌츠 푸스카스
나는 제 2의 디 스테파뇨는 될 수 있어도 제 2의 펠레는 될 수 없다. 그의 축구는 우리 모두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크루이프
-요한 크루이프
펠레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그의 움직임은 컴퓨터 게임으로도 재현해 낼 수 없다
-루이즈 펠리페 스콜라리
-루이즈 펠리페 스콜라리
내게 가장 영광스러웠던 때는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때가 아니라 펠레와 함께 뛰었던 때였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프란츠 베켄바우어
피구,히바우도, 지단 같은 선수들 모두 훌륭하지만 그들에게 넘어 설수 없는 벽이 있다. 그건 바로 펠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2002년 월드컵 가이드 북)
-프란츠 베켄바우어(2002년 월드컵 가이드 북)
신은 펠레에게 모든 걸 주셨고, 나머지 찌꺼기를 우리에게 주셨다.
-호베르투 히벨리누
-호베르투 히벨리누
펠레가 있던 시절의 브라질은 007영화에서 나오는 온갖 신기한 장치가 달린 자동차와 같았다. 하지만 펠레가 은퇴하고 난 후의 브라질은 모든 장치를 다 떼고 의자가 튀어나가는 장치만 남은 자동차가 되었다.
-닉 혼비(영국의 소설가)
-닉 혼비(영국의 소설가)
오늘에서야 펠레가 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하마드 알리(펠레의 은퇴식에서 펠레를 향해 관중들이 손수건을 흔드는 것을 보고)
-무하마드 알리(펠레의 은퇴식에서 펠레를 향해 관중들이 손수건을 흔드는 것을 보고)
축구는 잘 모른다. 음... 하지만 펠레는 안다.
-마이클 조던(1994년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릴 당시 축구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마이클 조던(1994년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릴 당시 축구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펠레)라면, 비록 농구의 명예에 흠이 되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기꺼이 농구 황제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이클 조던(IOC 선정 20세기 스포츠 영웅에서 펠레에 이어 2위에 선정된 후)
-마이클 조던(IOC 선정 20세기 스포츠 영웅에서 펠레에 이어 2위에 선정된 후)
저는 펠레가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제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그는 궁극적인 운동선수였고, 피치위의 절대적 존재 였죠. 펠레는 모든 것을 지닌 선수였습니다.
그라운드를 너무나 빠른 속도로 쓸고 다녔고, 무브먼트들은 훌륭하였고, 마크맨들을 너무나 쉽게 따돌리곤 했죠.
폭발적 슈팅의 소유자이었지만 공중볼 처리도 수준급이었고 어떤 포즈에 있던 간에 득점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었죠. 음 통산 1283 골이라는 기록만 보고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펠레는 묶어두기가 무척 힘들었고 (could not be contained) 17살의 나이에 출전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단지 17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브라질 대표로 뛰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최고로 꼽히던 팀들과 대전하면서 날라다닌 것이 반증해 주지 않을까요?
예선에서 저는 잉글랜드 대표로서 브라질과의 경기에 출장했지만 다음 경기에 펠레가 출전했었죠. 브라질과 우린 0-0으로 비기고, 골에 목이 말랐던 브라질은 한 번 펠레에게 기회를 주는 모험을 합니다... 그 뒤로 펠레는 뒤돌아 볼틈 없이 승승장구 했죠.
이번 달 442에서 로마리오는 자신이 펠레 다음으로 축구사의 2번째로 위대한 선수라고 자평하더군요. 네, 로마리오는 뛰어난 선수였지만, 전 그말에 동의할 수 없네요.
플라티니, 찰튼, 베스트, 베켄바우어, 크루이프, 푸스카쓰, 찰스 등등을 꼽자면요. 제가 생각하는 리스트엔 펠레 뒤로 마라도나를 No.2로 꼽을 수 있겠고, 로마리오는 아마 20위 안 쯤에 있을 것 같습니다.(포포투 2005년 8월호)
-바비 롭슨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D%8E%A0%EB%A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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