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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rch 9, 2010

경상도 사투리

고등학교 동기들의 일화 중 이런 게 있었다.

그 동기들은 대부분 대구 토박이들. 여러 지방 사람이 모이면 좀 덜하지만, 같은 지방 사람끼리 만나면 당연스레 사투리가 나온다. 특히, 또래 친구들이라면 주위 신경쓰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게 보통.

그중 몇명이 한 택시에 탔다. 행선지를 말하고 난 후, 수다가 시작되었단다. 한참을 떠들다가 행선지에 거의 도착할 때쯤 택시 기사가 말하더란다.

"학생들, 한국인이네. 일본인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 사투리로 마구 떠들어대는 걸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저것이 한국어인 지 아리송해질 때가 있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억양만 유심히 들으면 영락없이 일본어로 들릴 정도다. - 언어학적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일본어가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지는 잘 모른다. 특히, 부산 사투리의 경우에는 흡사 일본어처럼 들릴 때가 많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의식될 때가 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냈다. 당연히 경상도 사투리가 몸에 배어 있다. 비록 타지 생활이 상당히 오래되어서 가끔 집에 들른다고 대구에 가면 여기저기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말투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대구와 부산의 사투리는 좀 다른 면이 많은데, 나는 어느쪽이냐면, 부산 사투리가 많이 남아있다. 정작 살아온 기간은 대구에서가 훨씬 긴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미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강원도 사람 따위의 경계는 많이 무너져 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쉽게 들을 수 있고, 서울 말씨를 간지럽게 여기는 경상도 사람도 많이 줄었다. 특히, 여러 지방 사람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이 학교 안에서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말씨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씩 사투리가 들려올 때는 신입생들이거나 지방 출신 동기 모임이거나 할 때가 거의 전부이다.

신입생 때 사투리를 쓰던 사람이라도 점점 사투리를 탈피해 간다. 근본적인 건 바뀌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특히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른 건 여자들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는 우습게 여긴다는 소문이라도 도는 건지 그녀들은 순식간에 말씨가 변한다. 그런 그녀들이 어색하게 서울 말씨를 흉내내는 걸 우습다고 손가락질하던 남자들도 어느 새 자신도 그렇게 변했다는 걸 깨닫는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는 타 지방에서 잘 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가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여자를 보면 왠지 '귀엽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같은 지방 출신 사람이라는 동질감 덕분인지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도 불러 일으킨다.

......

잠시 휴게실에 들렀다가 정답게 '정통'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남녀를 보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왠지 그들과 내가 원래 알던 사이로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속으로 많이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정통 사투리 하나로 왠지 모를 그리움을 느꼈다. 그렇게 서로 사투리로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강 시즌, 교내에서 보이는 저 신입생들도 어느새 자기 지방 사투리를 잊어가게 되겠지...

덧.
하지만 나는 지금도 대구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좀 뿌리깊은 원인이 있긴 한데, 언젠가 이 얘기를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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