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성기[편집]
이슬람교에서는 음악을 금제(禁制)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종교음악은 끝내 생겨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속음악은 궁정·귀족·부호 등의 보호 아래 교의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행하였다. 무함마드의 한 아내는 가희(歌姬) 출신이었으며, 아랍의 대표적 악기가 된 우드('ud)의 보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옴미아드조에 와서는 사라센 제국이 건설되자 수도를 메디나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겨 페르시아나 비잔틴과 교섭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채택, 그리스의 과학이나 예술이 시리아어(語)나 아랍어로 번역되어 과학적인 음악이론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다른 동양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아랍 음악의 특징이 되었으며, 궁정의 할렘이 융성해지고 가희나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 일종의 계급을 형성하여 귀족 및 부호와 유대를 맺었다. 일찍부터 음악이론서도 저술되고 그리스어에 따라 음악을 무지키(Mus gi)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악리 연구[편집]
아랍인의 악리 연구가 결실을 맺은 것은 코르도바였으며, 그리스적·아랍적인 이론이 여기서 완성을 보아 중세 유럽인은 코르도바로부터 배우는 바가 많았으며 중세 음악에의 영향, 특히 세속음악에의 자극이 컸다. 이론가의 제1인자인 알리 알 이스파하니(Ali al-Isfah ni)를 비롯하여 음악 이론가, 철학자 및 과학자로 유명한 알 파라비(Al-F r bi)의 저서인 <음악의 대서(大書)(Kitab al-Musiqi al-Kabir)>가 현존하여, 최근에 프랑스인 엘랑제르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또한 동양의 다른 여러 나라와 현저하게 다른 점은 과학적인 음악 이론이 그리스로부터 들어와 발전했다는 점이다. 음악이론은 예술로서라기보다 과학적인 음악이론으로서 발달한 점이 중국과 흡사하며 아랍의 우드('ud), 중국의 율관(律管)은 그리스의 모노코드(monochord)와 똑같은 기능을 발휘하였다. 근세 인도의 음악이론, 특히 음계론 및 리듬론의 발달도 이슬람의 영향에 의하는 점이 많았다. 우드를 비롯한 현악기에 음의 수리론(數理論)을 반영하여 척도(尺度)가 새겨져 있다는 점도 진귀하다. 음률은 옛날에는 9율(九律)이었다고 전해지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9율은 4도 음정을 차례로 겹쳐 얻은 음정을 1옥타브 안에 배열시킨 것이다.http://ko.wikipedia.org/wiki/%EC%95%84%EB%9E%8D_%EC%9D%8C%EC%9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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