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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anuary 14, 2012

基臨尼今紀(기림니금기)4년,AD367년 新羅(신라)로 復號(복호)하였다.

基臨尼今紀(기림니금기) 4년, AD367년. 四年 赤兎 正月 訖解伊伐飡 蝶皇稟主 4년 赤兎(적토, 丁卯, AD367년) 1월, 訖解(흘해)를 伊伐飡(이벌찬)으로, 蝶皇(접황)을 稟主(품주)로 삼았다. *이 부분부터는 訖解尼今紀(흘해니금기)에 다시 나온다. 二月 行赤兎祭 翌日 儒禮先今崩 2월, 赤兎祭(적토제)를 행하였는데, 다음날 儒禮先今(유례선금)이 崩(붕)하였다. *儒禮(유례)의 사망= AD367년 2월. 三月 至四月 旱 訖解自責請免 不許 皇弟好臨公薨 公美而善歌 帝嬖愛 所有珍宝無不與之 公亦溫順 事帝以誠 凡有所命 無不聽之 初末仇公妻休禮宮主與公相愛 而末仇遺命歸其弟大西知 而大西妻禮生又入宮 故帝命公歸休禮于大西知 公心不聽而從之 因而爲心疾 臨薨 欲見休禮 后命往見之 公大悅 遂同寢一夜 而薨 休禮悲泣曰 “好夫常時思我 使人累召我 而不能如意往見 而至此者吾罪也” 乃祭公象 公年才三十五 母阿爾兮后與乞淑嬖臣好山通而生也 好山無骨而美 善媚如婦女 乞淑畜之 出入帶之 及乞淑殉于阿后 時亦從之 及?帝尤愛公 而哀之甚 不食肉作歌而悼之 顔無喜色 神后止之 而不能自己 后自是專寵訖解 帝自知不能事后 而欲退 3월, 4월까지 가물자, 訖解(흘해)가 自責(자책)하며 면직을 청하였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皇(황)의 남동생 好臨公(호림공)이 죽었다. 公(공)은 잘 생기고 노래를 잘 하여, 帝(제)가 嬖愛(폐애)하니, 所有(소유)한 珍宝(진보)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公(공) 또한 溫順(온순)하여, 帝(제)를 성심껏 섬겼는데, 무릇 명령한 바가 있으면 듣지 않는 것이 없었다. 처음에 末仇公(말구공)의 처 休禮宮主(휴례궁주)가 公(공)과 서로 사랑하였으나, 末仇(말구)가 命(명)을 내려 그의 남동생 大西知(대서지)에게 시집가라고 하였다. 大西(대서)의 처 禮生(례생) 또한 入宮(입궁)하게 되자, 그래서 帝(제)는 公(공)에게 명하여 休禮(휴례)를 大西知(대서지)에게 시집가라고 하니, 公(공)의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이를 따랐다.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이 되었다. 죽음에 임하여, 休禮(휴례)를 보고 싶어 하니, 后(후)는 그에게 가서 보라고 명하였다. 公(공)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하룻밤 동침하고 죽었다. 休禮(휴례)가 슬퍼서 울며 말하길 “好夫(호부, 好臨)은 常時(상시) 나를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누차 나를 불렀으나, 뜻대로 가서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의 죄입니다” 라고 하였다. 곧 公(공)의 象(상)에게 제사지냈다. 公(공)의 나이는 겨우 35살이였다. 어머니 阿爾兮后(아이혜후)가 乞淑(걸숙)의 嬖臣(폐신) 好山(호산)과 통하여 낳은 것이다. 好山(호산)은 골품이 없었으나 잘 생겼고, 婦女(부녀)처럼 아첨을 잘 하니, 乞淑(걸숙)이 키우며 출입할 때 데리고 다녔는데, 乞淑(걸숙)이 阿后(아후)를 따라 순장하자, 이 때 好山(호산) 역시 그를 따랐다. 또한 帝(제)도 유달리 公(공)을 아끼니, 그를 애통해 함이 심하여 고기를 먹지 않고, 노래를 만들고 슬퍼하였다. 얼굴에 喜色(희색)이 없으니, 神后(신후, 光明)가 그치게 하였으나,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后(후)는 이때부터 訖解(흘해)를 오로지 총애하였다. 帝(제)는 스스로 后(후)를 다스릴 수 없는 것을 알고, 물러나고자 하였다. *事= (6) 다스리다. 경영함. [예문] 詳事下吏〈戰國策〉 [예문] 事五穀〈呂覽〉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5년, AD302년 五年 春夏旱 5년(302)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AD367년- AD302년= 65년 편차. 時八月 地震 而勇湧 이때 8월, 지진이 일어났고, (샘물이) 솟았다. *삼국사기는 泉湧으로 표현. 九月 又震 壞屋傷人 帝乃請以訖解爲副君 許之 以副君夢見白馬 復號新羅 以康世女千康妻吉湏 急利伊伐飡 素皇稟主 9월, 또 지진이 일어나, 집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상하게 하였다. 帝(제)가 이내 訖解(흘해)를 副君(부군)으로 삼기를 청하자, 이를 허락하였다. 副君(부군)이 꿈에 白馬(백마)를 보고, 新羅(신라)로 復號(복호)하였다. 康世(강세)의 딸 千康(천강)을 吉湏(길수)에게 시집보냈다. 急利(급리)를 伊伐飡(이벌찬)으로, 素皇(소황)을 稟主(품주)로 삼았다.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7년, AD304년 七年 秋八月 地震 泉湧 九月 京都地震 壞民屋有死者 7년(304) 가을 8월에 지진이 일어났고 샘물이 솟았다. 9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민가가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있었다. *AD367년- AD304년= 63년 편차.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10년, AD307년 十年 復國號新羅 10년(307) 나라 이름을 다시 신라(新羅)라 하였다. *AD367년- AD307년= 60년 편차. *新羅(신라)로 復號(복호)한 것은 9월달. *吉湏(길수)는 百濟(백제)의 太子(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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